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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년 시행 강사법 벌써부터 개악 비판
26일 교육부와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에 따르면 내년 1월 1일 시행을 목표로 개정(보완)된 강사법은 시간강사에게 ‘교원’ 신분을 부여한 게 골자다. 현행법에서 대학 교원은 교수·부교수·조교수로 구분되는데 개정안은 여기에 ‘강사’를 추가했다.
고등교육법상 교원 지위를 부여받으면 임용기간 중 본인 의사에 반하는 권고사직 등을 당하지 않으며, 부당한 해고처분을 받으면 소청을 청구할 수 있다.
하지만 강사들에게 이같은 ‘교원’ 지위 보장은 계약(임용)기간에만 해당한다. 강사법은 강사의 임용기간을 ‘1년 이상’으로 규정하고, 이 기간이 지나면 자동 퇴직토록 했다. 대학은 계약기간만 채우면 ‘해고 통보’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강사와의 계약을 자동 해지할 수 있다.
강사들은 이를 1년짜리 비정규직 양산을 법적으로 보장한 ‘개악’이라고 비판한다. 임순광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대학은 1~2년짜리 계약직 교원을 뽑아 쓰고 기간이 지나면 해고하면 그만”이라며 “시간강사도 계약기간 만료 후에 재임용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논문대필 강요당한 시간강사 자살이 계기
강사법은 2010년 조선대 시간강사 고 서정민 박사의 죽음을 계기로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해 만들어졌다. 서 박사는 1997년부터 2010년까지 조선대 시간강사로 근무하면서 강요당한 논문 대필 등을 고발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2010년 5월 유서를 통해 자신의 지도교수인 조모 교수가 10여 년간 교수자리를 미끼로 54편의 논문을 대필시켰다고 폭로했다.
당시 서 박사의 죽음이 사회 문제로 비화되자 정부는 사회통합위원회를 꾸려 시간강사 처우개선안을 마련했다. 이를 반영한 게 강사법이다. 2011년 12월 국회에서 의결됐으나 강사들의 반발이 워낙 커 지금까지 시행되지 못하고 세 차례 유예됐다. 2015년 12월에는 국회에서 교육부에 보완을 요구했고 교육부는 지난 1월 지금의 ‘보완 강사법’을 마련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대학구조개혁평가 등 각종 대학평가에서 ‘전임교원 강의담당 비율’을 반영하면서 엇박자를 내고 있다. 전임교원 강의 담당비율은 대학이 개설한 강좌 중 전임교원이 맡은 강좌가 많을수록 점수를 더 받는 지표다. 대학들은 이를 높이려 사실상 비정규직인 강의전담 교수를 대거 채용, 이들에게 주당 12~15시간의 강의를 몰아주고 있다. 현행 고등교육법 시행령은 대학 교원의 주당 강의시간을 ‘9시간’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강제성은 없다. 비정규직 교수를 대거 채용한 뒤 이들에게 강의를 몰아줄 수 있는 구조다.
실제로 박인숙 바른정당 의원이 2013년 12월 공개한 ‘대학별 비정년트랙(계약직) 전임교원 운영 현황’에 따르면 전국 71개 사립대의 계약직 교수 평균 연봉은 3655만원으로 같은 시기 정규직 교수 평균 연봉(7426만원)의 49%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들의 평균 강의시간은 주당 10.57시간이었으며, 주당 12시간을 넘는 곳도 27개교(39.4%)나 됐다.
대학 강의를 계약직 교수들이 채우는 동안 시간강사의 일자리는 감소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 189개 4년제 일반대학(교대·산업대 제외)의 시간강사 수는 2012년 7만5291명에서 2016년 5만3316명으로 2만1975명 감소했다. 교육부가 각종 대학평가에서 계약직 교수들을 전임교수로 인정해주자 대학들은 계약직 교수를 늘리는 대신 시간강사 채용을 줄인 것이다.
시간강사의 처우도 여전히 열악하다. 대학정보공시 사이트인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강사들의 시간당 강의료는 평균 5만5000원이다. 시간강사의 64.3%는 주당 3~6시간의 강의를 맡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적용할 경우 시간강사 평균연봉은 742만5000원에 불과하다. 주당 7~9시간을 강의하는 시간강사(12.8%)도 연봉 1400만원을 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해 강사들에 대한 재정지원 사업인 ‘강의 장려금 사업’ 예산 400억원을 신청했지만 정부 심의과정에서 전액 삭감됐다.
◇ “강의 몰아주기 제한해야 교육의 질도 향상”
비정규교수노조는 대학들의 ‘강의 몰아주기’ 방지를 위해 강사법에 ‘최대 강의시수’를 명시해 달라고 요구한다. 전임교원의 경우 9시간을 넘지 못하게 규제해야 교육의 질도 유지하고 시간강사의 대량해고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임 위원장은 “비정규직인 강의전담 교수라도 무리하게 주당 12~15시간 이상을 강의할 경우 교육의 질은 하락할 수밖에 없다”며 “최대 강의시수를 법적으로 규정해 강의의 질을 유지하는 한편 시간강사들도 강단에 설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전임교원 강의담당비율 지표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전임교원도 강의 부담이 커지면서 연구·학생지도·사회봉사에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나와 관련 지표 삭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교수노조는 현재 국회에 제출된 강사법의 보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법 시행 자체를 저지하겠다는 입장이다. 강사법은 2012년부터 같은 문제로 세 차례나 유예됐지만 아직까지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내년 법 시행이 또 미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김현주 교육부 대학정책과장은 “이해관계자인 강사단체와 대학 간 협의를 통해 강사법의 쟁점사항을 논의하고 이견을 좁혀나가겠다”며 “상호 합의가 되면 국회 심의과정에서 법안 보완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