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가는일 미루지 말것…다빈치가 권한 건강법

조선일보 기자I 2010.01.06 08:56:53

'요리사'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초의 웰빙음식 요리사 젊은시절 식당·술집 열어 혁신적 메뉴 냈으나 실패
"모두가 잠들어 있을때 시대를 앞서 태어난 사내"

▲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선일보 제공]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52~1519)를 두고 그저 '시대를 앞서간 예술인'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과연 한 사람이 그 많은 일을 했을까 의심될 만큼 그의 관심은 깊고도 넓었다. 그는 배경과 인물을 동화시키는 '스푸마토 기법'의 창안자이며 탱크와 비행기의 개념 제공자이자 동시에 요리사였다.

인간의 잠재력이라는 거대한 대륙을 발견한 그는 진정 '르네상스 맨'이었다. 그러나 그의 저작은 많지 않고, 더욱이 그의 발명 노트의 글씨는 거울에 비친 글자처럼 거꾸로 쓰여 있었다. 그는 자신의 아이디어와 발명을 누군가 훔쳐갈까 노심초사했으며, 그의 시대로서는 파격적으로 수염을 기르고 빨간 외투를 입고 다닌 일종의 패션 리더였다.

그의 저작 중 가장 최근에 발견된 책이 하나 있다. 1981년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에서 발견된 '엘 코덱스 로마노프 디 레오나르도 다 빈치'(El Codex Romanoff De Leonardo Da Vinci, 1490년경 추정). 그의 요리비법과 요리 관련 발명품이 수록돼 있는 이 책은 1982년 진품으로 인정받았지만 진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다 빈치의 여러 저작물을 해석한 자료를 바탕으로 다 빈치와의 가상 인터뷰를 꾸몄다.

―젊어서 아주 재미있는 식당에서 일을 시작하셨더군요.

"아 '세 마리 달팽이 식당' 얘기로구먼. 조각·그림·공학 등을 배운 피렌체의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공방의 수업이 끝난 후의 일이야. 피렌체 베키오 다리 근처에 있는 그 식당에서 웨이터로 일을 시작했네. 그런데 1473년 봄, 주방 식구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죽고, 내가 주방을 맡았지. 난 혁신적인 메뉴를 시도했지만, 내 요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어."

―그러다 공방 동창인 보티첼리와 또다시 술집을 차렸던 걸요.

"1478년 '산드로와 레오나르도의 세마리 개구리 깃발'이란 식당을 차렸네. 실내 장식도 멋졌고, 안초비 한 마리와 당근 네 쪽으로 꾸민 근사한 안주도 내놨지. 하지만 그 역시 천박한 대중 입맛 때문에 문을 닫고 말았네."

―그 후에도 선생은 수도원의 그림을 그리게 되지만, 선생이 와인만 축냈다는 비난까지 들었다면서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수도원으로부터 만찬과 요리라는 주제로 그림을 그려달란 주문을 받았네. 나는 1년여 고심 끝에 잘게 썬 당근을 곁들인 삶은 계란, 풋참외꽃으로 치장한 검둥오리 넓적다리, 작은 빵, 무국, 장어요리 같은 음식을 그려넣었지. 인물을 그리는 것도 큰일이었어. 난 그리스도의 얼굴과 닮은 이를 지구상에서 발견하긴 힘들 것 같아 괴로워했고, 유다의 얼굴을 그리기 위해 밀라노 빈민가를 헤매고 다녔네. 2년9개월이나 걸려 1497년 완성했지."

―그래서 그 작품 이름이 뭔데요?

"음, '최후의 만찬'이라고…."

―케네디 국제공항에, LA 포레스트론 공동묘지에도 있던, 그리고 루이 브뉘엘의 영화('비리디아나')에서도 베끼거나, 패러디한 그 '최후의 만찬'이요? 작품 얘기를 하면 한도 없을 테니, 음식 얘길 하지요. 스파게티를 발명했습니까.

"그대가 스파게티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르지. 내 살던 밀라노에는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이미 200여년 전 중국에서 가져온 국수가 알려져 있었어. 당시 국수는 먹을 게 아니라 식탁 장식품이었지. 나폴리 지방에는 빈대떡처럼 생긴 파스타가 있었고. 나는 두 개를 합쳐봤네. 기계를 만들고 반죽을 길게 잡아 늘여 삶아 봤지. 그게 바로 '스파고 만지아빌레', 즉 '먹을 수 있는 끈'(edible string)이었다네. 하지만 요즘 것과는 달랐어. 지금 먹는 스파게티는 나 죽은 후 수십년 후에야 공장에서 생산되기 시작했네."

▲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발명품. 그가 발명했던 당시의 도구 모습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사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스파게티, 냅킨, 포크, 와인 따개, 마늘 다지기. 사진 속 도구들은 각기 발명가가 따로 있으나 그 개념은 다 빈치의 것이다./조선영상미디어

 
―그런데 헝클어진 끈을 나이프로 먹기란 굉장히 곤란했다면서요.

"내가 발명가 아닌가. 그래서 이가 세 개 달린 삼지창(포크의 원형)을 개발했지. 당시 이가 두 개 달린 포크는 주방에서 도구로만 사용됐었지. 하지만 내 발명품의 운명이 그렇듯, 외면받고 말았소."

―선생의 발명품으로는 냅킨도 있지 않습니까?

"귀족들의 연회가 끝난 후 연회장은 난장판이었어. 난 조그만 천 조각을 식탁에 놓으면 어떨까 생각했소. 접는 방법을 그림으로도 남겼지. 벌(蜂)이 움직이는 회전식 냅킨 건조대도 만들고. 그런데 어땠는 줄 아시오? 엉덩이에 깔고 앉는 인간, 코 푸는 인간, 별별 인간들이 다 있더이다."

―선생이 최초의 '웰빙 음식' 요리사이자 채식주의자였다고요?

"젊어서는 나도 다양한 고기와 생선으로 요리를 했지만 나이 들면서는 채식이 좋아집디다. '움직이지 않는 식물만을 먹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명에 가치를 두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생명을 얻을 가치가 없다'는 글도 남겼지."

―요리와 관련한 발명품도 많습니다.

"내 시대, 피렌체에서는 사람이 망치를 들고 마늘을 깨부쉈지. 나는 지렛대 원리를 이용해 마늘 빻는 도구를 만들었어. 이 도구를 '레오나르도'라 부르는 사람도 있더군. 자동 고기구이 기계도 만들었지. 고기를 구워서 생기는 열이 바람개비를 돌리면 그 힘을 다시 아래로 연결해 고기를 꽂은 꼬치를 돌리는 식이지. 후추 가는 기계, 와인 따개도 내 아이디어야. 탱크·헬리콥터·낙하산·자동차·비행기…. 더 얘기해야 하나?"
―선생 작업은 늘 천재적이며, 동시에 언제나 비실용적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컨베이어 벨트를 이용해 장작을 주방으로 자동운반하는 기계는 정말 앞서 가는 기계였지요. 하지만 그걸 작동시키려면 바깥에서 일꾼 네명과 말 8마리가 있어야 하지 않았나요. 주방 바닥을 닦는 자동 회전솔도 역시 소 두 마리가 끌어야 했고, 솔의 지름만 1.5m였습니다."

"그래서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나를 두고 이렇게 말하지 않았나. '모두 잠들어 있는 어둠 속에서 너무 빨리 깨어난 사나이'라고. 정말 나는 너무 빨리 태어났던 것 같아. 너무 빨리. 그대들은,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으니 어서 뭐든 해보시오. 뜻이 있는 것만으론 부족하오. 반드시 하시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선생이 67세로 숨을 거두었을 때, 낡은 궤짝에서 오래된 그림 한 점이 나옵니다. '모나리자'였지요. 대체 '그녀'는 누구였나요, 의뢰받은 그림이었다는데 왜 돌려주질 않은 걸까요?

"마르셀 뒤상은 수염 난 모나리자를, 페르난도 보테로는 뚱뚱한 모나리자를 그렸지. 왜일까. 그건 걸작이기 때문이겠지. 걸작에 뭔 설명이 그리 필요한가. 그냥 즐기게나."

참고문헌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하이덴라이히 지음. 최승규 옮김.
레오나르도 다 빈치, 한 천재의 은밀한 취미, 김현철 옮김.
영혼의 표정을 그린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 토마스 다비트 지음. 노성두 옮김.
Da Vinci's Kitchen, David Dewitt 지음.
Encyclopedia of Pasta, Oretta Zanni De Vita 등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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