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자들, 이중항체 ADC에 ‘베팅’한 이유는
에이비엘바이오는 140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2일 공시했다.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추진된 이번 증자는 1년 후부터 행사 가능한 CPS를 발행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CPS는 전환사채(CB)나 전환상환우선주(RCPS)의 방식과는 달리 원금 상환의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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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비엘바이오의 ADC 개발은 2018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에이비엘바이오는 2018년 초부터 레고켐바이오(현 리가켐바이오)와 ADC 항암 신약 ‘ABL202’(LCB71·CS5001)과 ‘ABL203’을 공동개발했다. 이 중 ABL203은 2021년 1분기 전임상 단계에서 개발이 중단됐다. ABL202는 2020년 10월 중국 시스톤 파마슈티컬스(CStone Pharmaceuticals)에 제3자 기술이전돼 현재 미국·호주·중국 임상 1상 중이다. 또한 2019년 4월 티에스디라이프사이언스에 기술이전된 ‘ABL201’도 혈액암 타깃 ADC 후보물질이었다. ABL201는 기술이전된 이후 에이비엘바이오에서는 연구개발을 중단한 상태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이중항체 ADC 개발에 나서게 됐다는 입장이다. 이전까지 연구개발한 ADC가 단일항체 기반 ADC라면 이제부터는 이중항체 ADC를 통해 해당 시장의 선두주자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해 9월 네덜란드 바이오 기업 시나픽스(Synaffix)로부터 ADC와 관련한 약물 접합 기술을 도입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에이비엘바이오 관계자는 “이전까지의 ADC 개발 경험을 통해 이중항체 ADC를 개발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단일항체 ADC는 후발주자가 될 수밖에 없지만 이중항체 ADC를 개발하면 시장을 리드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쪽으로 진행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ADC는 단일클론항체가 아닌 이중항체를 활용하거나 세포독성물질 대신 표적단백질분해제(PROTAC)를 붙이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중항체는 서로 다른 2개의 항원에 결합할 수 있는 항체이기 때문에 ADC로 개발할 경우 단일클론항체보다 정밀하게 암세포를 공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 바이오벤처 대표는 “ADC라 하면 단일클론항체 기반이 일반적인데 지금 임상을 진행 중인 파이프라인이 100개가 넘는다”며 “에이비엘바이오는 이중항체를 연구한 회사이기 때문에 좀 더 차별화하기 위해 이중항체 기반 ADC 개발에 나선 것 같다”고 평했다.
현재 임상 단계에 있는 ADC만 해도 150개에 달하며, 임상 3상 단계에 있는 파이프라인만 12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이중항체 ADC는 임상 단계 파이프라인이 10여 개이며, 대부분 임상 1상 단계의 초기 시장이기 때문에 비교적 빠른 시장 진입을 기대해볼 수 있다.
지난해 12월 미국 워싱턴주 소재의 중국계 바이오기업 시스트이뮨(SystImmune)의 이중항체 ADC가 임상 2상 단계에서 브리스톨마이어스스큅(BMS)에 총 84억달러(한화 약 11조 880억원)에 기술이전된 것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해당 계약은 반환의무 없는 선급금(upfront)만 8억달러(약 1조 560억원)에 달하는 빅딜이었다.
◇2022년 1월 이후 기술이전 실적 전무…신성장동력 절실
한편으로는 에이비엘바이오가 2022년 1월 이후 기술이전 실적을 내지 못한 것이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이중 항체 ADC 개발에 뛰어들게 됐을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되고 있다. 에이비엘바이오는 2022년 1월 사노피의 100% 자회사인 젠자임젠자임(Genzyme Corporation)에 파킨슨병 치료제 ‘ABL301’를 10억 6000만달러(약 1조 5000억원)에 기술이전했다. ABL301은 내년 초 임상 1상 환자 등록을 마칠 예정이다.
5년간 에이비엘바이오의 매출의 97% 이상이 기술이전 수익에서 발생했으며, 최근 에이비엘바이오가 급격한 현금 소진을 겪었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자금 조달은 필연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들을 설득할 만한 카드로 ‘이중항체 ADC’를 택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에이비엘바이오의 기술이전 수익은 2019년 40억원(매출의 100%)→2020년 81억원(100%)→2021년 53억원(100%)→2022년 753억원(97.1%)→2023년 636억원(97%)을 기록했다. 올해 1분기의 기술이전 수익은 79억원으로 역시 매출의 100%를 차지했다. 2019~2021년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지만 2022~2023년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수치다.
반면 지난해 3분기 말까지만 해도 930억원에 달했던 에이비엘바이오의 현금성자산(단기금융상품, 공정가치측정 금융자산 포함)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532억원으로 급감했다. 단 2분기 만에 398억원에 소진된 셈이다. 에이비엘바이오가 최근 3년간 영업비용으로 2021년 576억원→2022년 664억원→2023년 682억원 등 평균적으로 641억원을 사용해왔던 점을 미뤄봤을 때 연내 자금 조달이 예상되는 형국이었다.
이처럼 현금이 급격히 고갈된 데에는 신사옥 마련 영향이 컸을 것으로 추정된다. 에이비엘바이오는 지난해 9월 서울시 강남구의 토지 및 건물을 650억원에 양수했다. 인력 증가와 R&D 파이프라인 확대에 따른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지난 4월에는 사옥 구축을 위한 리모델링 공사에 100억원을 추가 투자하기로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에이비엘바이오는 기관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KDB산업은행,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인터베스트, 하나금융그룹, 컴퍼니케이파트너스 등 기관 투자자가 이번 유증에 대거 참여하면서 이중항체 ADC라는 비전에 베팅한 것이다.
이에 힘입어 이상훈 에이비엘바이오 대표는 오는 3일 직접 IR에 나서 이 같은 회사 비전에 대해 적극 설명할 방침이다. 에이비엘바이오는 3일 하루에만 3번의 IR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날 오전 8시40분부터 10시까지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유튜브 IR을 진행한 뒤 오전 11시부터는 국내 증권사 애널리스트를 대상으로, 오후 2시부터는 국내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IR을 실시한다.
에이비엘바이오 관계자는 “이번 증자를 발판 삼아 이중항체 ADC R&D에 공격적으로 투자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초기 시장을 선점해 기업가치를 높이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