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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식의 창과 방패]'시장의 자격'은 무엇인가

e뉴스팀 기자I 2021.03.25 07:00:20
[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오늘부터 4.7 재보궐 선거가 시작된다. 여야는 정권 재창출이냐 정권 교체냐를 놓고 치킨게임에 들어갔다. 어느 쪽이든 패하면 치명상을 피하기 어렵다. 헌데 어떻게 변화시키겠다는 건지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온통 부동산 공약만 난무할 뿐이다. 도시에는 부동산만 있는 게 아니다. 그런데 누가 당선되든 토건 시장이라는 오명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도시 망가뜨리기 경쟁을 하고 있다.” 도시 전문가 정석 교수(서울시립대학교)는 이렇게 진단했다. 공약대로라면 한바탕 토건사업이 예상된다. 정 교수는 유튜브 ‘시장의 자격’에서 사람 중심 도시로 거듭난 해외 사례를 소개한다. 브라질 꾸리찌바, 스페인 폰테베드라, 콜롬비아 보고타, 프랑스 파리까지 생생하다. 이들 도시는 시장 한 사람에 힘입어 품격 있는 도시로 진화했다.

스페인 북부에 위치한 폰테베드라. 이 도시는 20여년 만에 2만여 명 늘었다. 지방 소도시마다 인구 감소로 몸살 앓는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변화는 1999년 미구엘 로레스 시장 당선과 함께 시작됐다. 당시 6만 명에 불과한 폰테베드라에는 자동차 2만7000여 대가 돌아다녔다. 그는 ‘차 없는 도시’를 선언하고 보행자 전용도로를 늘렸다. 이 결과 도심 90%, 외곽 도로 70%는 차 없는 도로로 바뀌었다.

그러자 교통량 90%, 대기 오염은 60% 줄었다. 교통사고 사망률도 2019년 이후 0명이다. 시민들 얼굴에는 여유가 깃들었다. 골목상권과 지역공동체도 살아났다. 미구엘 시장은 취임 초기 반발하는 시민과 상인들을 설득했다. 지금은 모두 만족 해 한다. “도시를 바꾸려면 무엇보다 지도자에게 용기가 필요합니다. 반대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민들을 설득하고 참여하도록 해야 합니다.” 미구엘 시장은 최근까지 6선 시장을 지냈다.

콜롬비아 보고타시는 매주 일요일이면 자전거 도시로 변신한다. 오전 7시부터 오후 2시까지 시내 전역에서 차량은 자취를 감춘다. ‘시클로비아’로 불리는 차 없는 날이다. 120km에 달하는 도로에서 시민들은 여유를 만끽한다. 보행자와 자전거, 인라인으로 뒤섞여 매주 축제를 치른다. 자동차 도시를 사람의 도시로 바꾼 장본인은 엔리케 페날로사 시장이다. 보고타를 다녀온 박원순 시장은 2019년 7월 ‘자전거 하이웨이(70km)’ 정책을 발표했다.

2014년 프랑스 파리 첫 여성시장으로 당선된 안 이달고 시장. 그는 당선 이후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다. ‘파리 플라쥬(파리 해수욕장)’ 정책은 대표적이다. 센 강변 자동차 고속도로를 해변으로 조성했다. 모래를 깔고 파라솔과 야자수를 설치해 해변처럼 만들었다. 시민들이 호응하자 자동차 도로를 영구 폐쇄했다. 또 관광객들이 찾는 샹젤리제 거리에서도 매월 1회 차 없는 거리를 운영 중이다.

지난해 재선 출마 당시 내놓은 ‘파리선언’ 공약은 보다 혁명적이었다. 시내 전역에서 시속 30km 제한, 노상 주차장 4분의 3을 없애 녹지, 보행자 및 자전거 도로로 전환. 파리 제3 도시 숲 조성, 공공기관 시설물 주말과 야간 개방, 26조 원을 들여 에어앤비를 매입한 공공임대 전환 등이다. 당선된 뒤에는 ‘베르시 샤랑통’ 개발계획을 전면 백지화했다. 2기 시정 키워드는 ‘생태’ ‘연대’ ‘건강’이다. 정석 교수는 “이런 공약을 내건 후보도 대단하지만, 그런 시장을 다시 뽑은 파리 시민도 대단하다”고 평가했다.

세계 최고 생태도시로 손꼽히는 브라질 꾸리찌바. 자이메 레르네르 시장은 3선을 연임하며 꾸리찌바를 친환경 도시로 변화시켰다. 1974년 세계 최초로 땅위 지하철로 불리는 BRT(굴절버스)를 도입했다. 꾸리찌바에서 대중교통 이용률은 80%를 넘는다. 타임지는 꾸리찌바를 “지구에서 환경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사는 도시”로 선정한 바 있다.

당선되면 첫 여성 광역단체장으로 기록될 박영선 후보. 그마저 남성 중심 토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상상력의 한계가 안타깝다. 적어도 민주당 후보라면 아파트 공급보다는 ‘자전거 하이웨이’ 같은 친환경 공약을 이어가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강자와 기득권 중심에서 벗어나 약자를 보듬고 기후위기를 대비하는 공약 개발에 나설 필요가 있다.

엔리케 페날로사 시장의 다음 말은 의미심장하다. “진보적 도시란 가난한 사람들까지 자가용을 타는 곳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들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곳입니다.” 이런 상상력을 지닐 때 시장 자격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이런 시장을 갖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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