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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순간의 승리, 영원한 패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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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소현 기자I 2020.12.09 06:00:00

신세철 경제칼럼니스트·'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저자

조직과 사회가 아닌 ‘사람에게 충성하는 인사’들 대부분은 이해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억지논리를 펼쳐 실력자에게 아부하려 드는 경우가 보통이다. 소위 유력인사들이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배치되는 자기모순에 빠지는 모습을 보면서 시민들은 처음에는 재미를 느끼기도 하지만 더불어 피로감에 지치기 마련이다. 그들이 나의 권리와 반대로 남의 의무를 엄격하게 주장하면서 외치는 춘풍추상(春風秋霜)은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남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상당하다. 하여간 시류에 따라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이율배반 행동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가치관 혼란에 빠져 자기무덤을 스스로 파는 것이 역사의 변치 않는 경험이다.

사람에게 막무가내로 충성하다 보면 이해관계에 따라 잣대가 달라져 정의가 불의로 둔갑하고 불의가 정의로 탈바꿈하기 쉽다. 세상살이 이해관계가 간단치 않아 대의와 소의가 엇갈리면 사고와 행동의 중심을 잡기 어려울 때가 있다. 개인에게 무작정 충성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대의를 저버려야 하는 경우가 생기고, 대의에 충실하려다 보면 개인 간의 도리를 소홀히 해야 할 경우가 생기기 마련이다. 따라서 사인과 공인으로서 가치관 충돌에 따른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려면 언제 어디서나 원칙에 충실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원리원칙이 행방불명되면 옳고 그름이 없어지며 ‘정의가 힘’이 아닌 ‘힘이 정의’가 되는 난장판이 벌어져 아귀다툼이 일어난다. 일찍이 고대 희랍의 법철학자 솔론(Solon)은 법이 거미줄과 같아서 약하고 작은 것이 걸려들면 붙잡을 수 있어도 힘 있고 돈 있는 자가 걸려들면 거미줄이 갈기갈기 찢어진다고 경계했다.

오늘날의 ‘검찰개혁’의 중간목표 역시 누구에게나 똑 같은 법(Justice)의 잣대를 적용해 사람들이 정의롭게 생각하고 진실을 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아닐까. 이 세상 이치란 누군가를 봐주면 다른 누군가를 억울하게 만들 수밖에 없다. 그 최종목표는 최대다수의 인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길이어야 한다. 그런데 공정을 위해 일부러 눈을 가려야 한다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의 저울눈금은 오히려 흐려지고 칼날은 한쪽으로 날카로워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여신이 온 국민이 아닌 특정인 편을 들다가는 세상은 요지경으로 변하게 됨은 것은 뻔한 이치다.

충신이 아닌 충견(忠犬)이 되려다가는 죄 없는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고 나아가 조직과 사회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커져만 간다. 쉬운 예로 개화기에 ‘혈의 누’를 쓰며 신소설 장르를 개척한 수재 이인직은 을사오적 이완용의 복심이 되어 한일합방에 앞장서고 일본천황 신격화에 진력하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달 이천시는 설봉산 자락 ‘문학동산’에 세워진 10인의 문학비 가운데 “이인직 외 1인의 기념비를 부수고 그 자리에 그들의 실제행적을 적은 비석을 세워 이천은 물론 민족 차원의 수치를 바로잡겠다”고 했다. 그 뛰어난 인재들이 부당하게 거머쥔 ‘순간의 승리가 영원한 패배’로 귀결된다는 이치를 어이하여 깨닫지 못했을까. 원칙을 지키며 살면 세상이 아무리 변하더라도 두려울 것이 없다.

말 끝마다 ‘국민 여러분’을 외치는 인사들일수록 올곧게 살기보다는 요기조기 힐끔거리며 곡학아세하며 괴성을 지른다. 예로부터 “어려운 일부터 먼저 한 다음에 얻는 것을 뒤에 하여야, 비로소 어질다고 할 수 있다(仁者先難而後獲 可謂仁矣. 논어, 雍也)”고 했다. 그와 반대로 자신이나 주변의 이익을 먼저 챙기려 들면 ‘사람이 먼저’가 아니고. ‘내 사람이 먼저’가 되어 세상을 헝클어트리며 오욕의 늪에 빠지게 된다.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는 인사들이 광기에 넘쳐 날뛰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면서 자문해본다. 가진 것도 없고 네트워크도 없어서 바르게 살 수밖에 없으니 오히려 다행이란 말인가. 하여간 눈치를 살피고 아부할 재간도 없고, 재주넘을 능력도 없으니 “창파에 씻은 몸을 까마귀 싸우는 골에서 더럽힐” 까닭이야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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