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이데일리와의 특별 인터뷰에서 “우리 사회는 1960~70년대 산업화, 1980년대 민주화를 이룩했는데 밑바닥 사회 시스템은 유신 시대의 질서와 지역주의, 정경유착, 권위주의, 빈부세습의 낡은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박 전 총재는 문재인 더불어 민주당 전 대표의 대선 씽크탱크 ‘정책공간 국민성장 자문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우리 사회는 겉으로는 잘 살고 민주화했다고 생각했는데, 속을 들여다보니 폭삭 썩어 있었던 것”이라면서 “지금 드러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 사회의 전면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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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고’ 응어리진 민심…‘완전히 바꿔라’ 명령
박 총재는 국민 마음속에 깊은 응어리가 촛불민심으로 터져 나온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는 서민을 위해 노력을 많이 했지만 역설적으로 재벌과 기득권층이 과실을 따먹었다”면서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민생문제가 더 악화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누가 여당이 참패하리라 예상했냐”면서 “죽도록 일해도 살기 어렵고 자식 가르쳐도 희망이 없는 세상 못 견디겠다는 민심이 반영된 결과였고 이번 촛불도 그 연장 선상에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우리 사회는 모든 면에서 위기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는 게 그의 평가다. 1970년대 유신 시절 방식인 권위주의적이면서 독선적인 국정운영의 결과란 것이다.
박 총재는 “경제는 장기침체의 늪에 빠졌고 사회는 양극화 민생위기의 늪, 남북관계는 대결의 늪에 빠졌다”면서 박 대통령 자신을 스스로 탄핵으로 몰고 갔다고 지적했다.
박 총재는 탄핵국면을 계기로 사회적으로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나만 잘살면 된다는 자본주의에서 더불어 잘사는 자본주의로 가치 전환이 된다면 의외로 간단히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는 나만 잘사는 사회에서는 기득권을 대변하는 게 보수이고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게 진보로 분화해 자연스럽게 보수와 진보는 보완관계가 아니라 대립하고 배척해야 할 대상이 돼 반목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그는 “더불어 잘 사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하게 된다면 보수와 진보는 협력관계, 보완 관계가 된다”면서 “중도를 넓히고 보수와 진보가 보완하는 보수의 진보화, 진보의 보수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식 장기불황 답습 우려…경제 구조의 수술 시급
박 총재는 우리 경제에 대해서는 걱정이 가득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어려울 것이다. 쉽지 않을 것”이란 말을 여러차례 되네였다.
박 총재는 “현재 2%대 성장도 그나마 대기업의 비중이 큰데 가계로 제대로 전달이 안된다”이라면서 “가계의 빈혈이 중산층을 무너트리고 빈곤층을 확대하는 민생위기를 불러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의 구조적 경제침체를 끝내려면 전면적인 경제구조 수술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돈 푸는 방식의 경기부양책은 치료제가 아니라 진통제로 소비나 투자를 자극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 특히 돈이 풀리면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에 자산거품만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박 총재는 “성장과 분배 두 가지 측면에서 동시에 전면적인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면서 “성장활력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가계소득증대, 저출산 대책, 노동개혁, 남북경제협력이 필요하고 분배 개혁을 위해서는 대기업 소득 가계 환류와 빈부격차 축소, 국민복지 증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수출 주도형 경제를 소비주도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소비의 주체인 가계의 소득증대와 복지를 늘려 빈부격차를 줄이는 동시에 대기업의 소득을 가계로 이전하는 대책이 핵심이다.
그는 “선성장·후복지 패러다임이 성장과 복지 병행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근본적인 정책 변화가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야권이 소득과 자산 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개인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제’에대해서는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박 총재는 “소비를 늘려서 성장을 촉진하지는 기본 정신은 일리가 있다”면서도 “일본의 소비쿠폰제처럼 저소득층을 선별적 지원하는 게 아니라 부자까지도 돈을 주겠다는 건 반대”라고 강조했다. 이어 “돈을 주는 것보다 복지지원을 통해 저소득층을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대학등록금 지원이나 특성화고를 나온 학생을 직원으로 채용하는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방식이 대표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 강화하려면 증세‥소비활성화 위해 투기 억제
박 총재는 복지정책을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재원을 마련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증세와 복지는 땔 수 없는 관계”라면서 “세금을 늘리지 않고 복지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이 10년 전 21%였는데 지금은 18% 수준”이라면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선진국 평균인 26%와 비교하면 너무 낮은 수준이다. 세금도 더 내고 복지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인세도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 소득이 가계로 넘어가지 않는다”면서 법인세 인상은 가계빈혈 현상을 완화할 좋은 수단”이라고 말했다. 또 명목세율이 너무 낮다는 점도 증세 근거로 꼽았다. 우리나라 법인세는 명목으로는 22%이지만 각종 공제혜택 탓에 실효세율은 14%에 불과하다. 30%대인 미국이나 일본은 물론 가장 낮은 편인 영국(20%)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대기업이 돈을 쌓아두고도 투자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법인세를 올리면 투자가 위축된다는 논리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총재는 “부동산값 상승은 후손의 눈물을 빼서 지금 세대의 이득을 채우는 것”이라면서 “부동산 투기를 절대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집값이 갑자기 떨어지면 사회시스템에 미치는 충격파가 크기 때문에 집값은 현상유지를 하되 소득을 올리는 식으로 정책을 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정부가 장기임대주택을 대량으로 공급해 주택문제를 해결하는 식으로 연착륙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는 “특히 결혼 한 서민계층은 생애 한번 임대주택에 거주기회를 주는 게 바람직하다”면서 “그린벨트를 풀어 대규모로 개발하면 임대주택 공급이 가능할 것이다. 임대주택 관리공사를 세워 관리하는 것도 방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은 국가책임…보수정권 대북정책 완전히 실패
그는 교육개혁의 시급성도 인터뷰 내내 여러 차례 강조했다. 박 총재는 “교육을 기득권 계층이 독점하면서 최순실이 장난을 치는 장소가 됐다”면서 “우리 사회에서 교육개혁이 절실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됐던 교육이 지금은 계층 세습의 사다리가 됐다”면서 그는 “대학합격 이후에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국가가 등록금을 지원해 계층이동의 길을 터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소득에 따라 등록금 지원 규모를 차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가령 소득 하위 25%까지는 대학등록금을 전부 지원하고 26~50%는 국가가 절반을 부담하는 식이다.
박 총재는 “유럽은 대학도 100% 국가가 부담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실적으로 재원마련 등의 어려움이 있어 이런 식으로 기회를 줘야 한다”면서 “유럽에서는 부자들이 내는 세금으로 교육재원을 충당해 대학원까지 공짜인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주장을 펴면 보수층은 왜 내 돈을 빼앗아 남의 자식 공부시키느냐고 말한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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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대학 시절 학비를 마련할 길이 없어 학기 중에 농사를 지어야 했던 ‘흙수저’다. 그는 고비 때마다 좌절하지 않는 끈기를 그때 배웠다고 한다. 어려웠던 시절 푸른 벼 냄새를 잊을 수 없어 아호를 청도(靑稻)라고 지었다.
박 총재는 한국 경제의 대표적 산증인이다. 한은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유학하며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를 거쳤다. 이후 청와대 경제수석, 건설부 장관,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등을 거쳤고 2002년 김대중 정부 말기부터 2006년 노무현 정부 중반까지 한은 총재를 역임했다. 지금도 한은 후배들은 그를 가장 기억에 남는 총재로 기억한다. 지난 2010년엔 그동안의 경험을 담은 회고록 ‘하늘을 보고 별을 보고’를 펴내기도 했다.
▲1936년 전북 김제 ▲서울대 경제학과 학사 ▲미국 뉴욕주립대 경제학 박사 ▲중앙대 정경대 경제학과 교수 ▲한은 금융통화운영위원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 ▲제22대 건설부 장관 ▲대한주택공사 이사장 ▲제29대 한국경제학회 회장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민간위원장 ▲제22대 한은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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