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진우기자] 김승연 한화(000880)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의혹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하나하나 정리되고 있는 가운데 '청계산 납치여부'가 마지막 걸림돌로 떠올랐다.
수사 전문가들은 김승연 회장 또는 김승연 회장의 운전기사가 갖고 있는 휴대폰이 이 문제를 해결할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분석했다. 이동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휴대폰을 갖고 있을 경우 특정시점에 해당 휴대폰이 움직인 동선(動線)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용의자 진술의 사실 여부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며 "청계산을 갔는지 여부는 휴대폰의 기지국 송신내용을 보면 금방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의혹들 당사자 진술에 의존..'청계산 납치설'이 핵심
수사과정에서 제기됐던 조직폭력배 동원 여부는 사건의 심각성을 확대시킬 수 있는 부분이지만 당시 종업원들이 '폭력배로 보이는 남자들이 있었다'는 진술을 한 것이 증거의 전부라는 점이 한계다.
당시 북창동 술집으로 간 한화그룹 경호원들은 경찰에서 김 회장 차남과 경호원, 비서실 직원, 김회장 자택 경비 용역업체 직원 등 17명 뿐이었다고 진술했다. 17명 이외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이를 입증하기는 불가능하다.
회칼이나 권총을 사용했다는 부분도 '회칼이 옷 사이로 슬쩍슬쩍 보였다'는 수준의 피해자 증언일 뿐이어서 증거물이 발견되지 않는 한 입증이 쉽지 않다. 금장식이 달린 권총을 겨누고 협박했다는 부분과 김 회장이 직접 뺨을 세차례 때렸다는 것은 북창동 S클럽 사장이 기자들에게 털어놨다고 보도된 부분이지만 경찰에서는 '김 회장이 직접 때리지는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지막으로 남는 것은 '청계산 납치설'이다. 북창동 S클럽 종업원들은 김승연 회장 차남이 다친 청담동 술집으로 모였다가 청계산 인근 공사장으로 승합차에 태워져 폭행당했으며, 이 자리에서 김승연 회장이 직접 폭행을 했고 한화 측 경호원들이 다른 종업원들을 함께 폭행했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다. 이는 언론보도와도 일치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27일 조사를 받고 풀려난 한화그룹 측 경호과장과 비서실 직원 등은 청계산으로 납치한 적은 없다고 진술했다. 29일 경찰서에 출두한 김승연 회장도 "청계산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양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청계산 납치설이 증언의 진실을 판단하는 기준이자 김승연 회장의 직접 폭행 여부를 입증할 핵심사안인 것이다. 한화그룹 측은 김승연 회장이 뒤늦게 보고를 듣고 북창동으로 가서 상황을 정리하고 술을 따라주며 훈계한 게 전부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한화그룹 관계자들이 "일방적으로 한쪽 증언만 갖고 언론이 보도를 하고 여론몰이를 하는 것은 부당하며 억울하다"며 불만을 나타내는 것도 이 사건이 증거는 없고 증언만 난무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 김승연 회장 또는 운전기사 휴대폰 추적하면 진실 나온다
경찰은 서울시내 도로 곳곳에 설치한 CCTV로 사건 당일 한화그룹 측 경호원들의 승용차들을 촬영한 기록을 분석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촬영이 되지 않았거나 경호원들이 "길을 잃어서" 또는 "차가 막힐까봐" 등의 다른 이유를 댈 경우 청계산 부근으로 가는 도로에 차량들이 찍혔다고 하더라도 혐의의 입증이 쉽지 않다.
그러나 휴대폰의 기지국 송신기록은 다르다. 휴대폰은 특성상 통화를 하지 않을 때도 끊임없이 주변의 기지국과 전파를 주고 받으며 휴대폰 소유자의 위치를 기지국에 알려준다. 휴대폰을 분실했을 때 분실한 휴대폰이 현재 어디에 있으며 최근에는 그 휴대폰이 어떤 경로로 이동했는지 지도에 선을 그어주며 자세하게 안내하는 서비스가 이미 제공되고 있는 것도 그런 원리다.
경호원들이 청계산으로 간 것이 확인 되더라도 김승연 회장이 청계산에 가지 않았다면 사안은 많이 달라진다. 김승연 회장의 법적 책임이 상당부분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화그룹 관계자는 29일 "청계산에 간 사람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혹시 갔다면 경호원들끼리만 갔을 것"이라며 다소 후퇴한 입장을 밝혔다.
경호원들의 휴대폰 기지국 송신기록으로 청계산으로 간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김 회장은 없었다"고 증언한다면 이같은 상황에서 경찰이 김 회장의 '청계산 폭행 주도설'을 입증할 방법은 없다.
경찰이 입증할 방법은 없지만 김 회장 측이 적극 협조한다면 진실은 규명될 수 있다.
김승연 회장이 휴대폰을 갖고 다녔다면 사건 당일 그 휴대폰이 움직인 경로를 확인하면 김 회장이 청계산에 갔는지 아니면 한화그룹 측 주장대로 보고를 받고 바로 북창동으로 갔는지 알 수 있다.
사건의 시간대로 볼 때 김승연 회장은 가회동 자택에서 보고를 받았을 가능성이 높고 한화그룹 주장대로 바로 북창동으로 갔다면 김 회장의 휴대폰의 이동정보도 '가회동→북창동'으로 나온다. 그러나 종업원들의 진술대로 김 회장이 청계산으로 갔다면 김 회장 또는 운전기사의 휴대폰 이동경로가 '가회동→청계산→북창동'으로 나올 뿐 가회동에서 북창동으로 직접 움직인 김 회장 측근의 휴대폰은 존재하기 어렵다.
사건 당일 김 회장이 가벼운 운동복 차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휴대폰을 휴대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지만 김 회장을 태운 운전사는 업무 특성상 당연히 휴대폰을 갖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김 회장 운전기사의 휴대폰이 해당 시간대에 '가회동→북창동'으로 움직였다면 "청계산은 모르는 일"이라는 김승연 회장의 답변이 신빙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김 회장 측이 '주변인들의 증언만으로 사건을 확대해 매우 억울하며 경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김승연 회장 또는 김 회장의 운전기사가 사용하는 휴대폰임을 입증할 수 있는 휴대폰이 당일 움직인 궤적을 이통사의 협조를 통해 공개하는 것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 김 회장의 '억울함'을 푸는 유일한 길이다.
사건 당일 해당 시간에 가회동에서 북창동으로 이동한 김 회장 주변의 휴대폰을 제시하면 되는 것이다. 만일 한화그룹 측이 이런 휴대폰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한다면 김 회장의 청계산행은 사실로 굳어지게 된다.
이통업체의 한 관계자는 "휴대폰의 기지국 송신 기록은 분실신고된 휴대폰의 가입자 요청이나 수사중인 경찰의 요청이 있을 경우 제공하고 있다"고 말하고 "개인정보의 보관기한이 6개월이므로 그 기간 안에 요청이 오면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휴대폰 통화기록을 수사에 활용하는 경우는 많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그런 기법이 동원될 지 여부는 수사기밀상 공개하기 어렵다"고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