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정책은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중소기업기본법’은 정부의 책무(제3조)로 중소기업의 혁신역량과 ‘경쟁력’ 수준 등을 고려해 기본적이고 종합적인 중소기업 시책을 세워 실시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중소기업자의 책무(제4조)도 기술개발과 경영혁신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 국가경제의 발전과 국민의 후생 증대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라 규정한다.
그밖에 ‘중소기업진흥법’, ‘중소기업기술혁신법’, ‘중소기업사업전환법’, ‘중소기업인력법’ 등 다양한 중소기업 관련 법령의 목적(제1조)도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정책자금, 연구개발(R&D)·인력·판로 지원이건 대·중소기업 상생협력이건 중소기업 시책을 설명하는 자료는 모두 첫 페이지가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실시한다는 취지로 시작한다. 시대가 변하고 정부가 바뀌어도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중소기업 정책의 목표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법령과 정책에서 의도한 바처럼 정부의 노력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은 높아질까?
내부 자원이 부족하고 외부 조달이 어려운 중소기업에게 정부가 다양한 지원을 통해 자원과 역량을 보충해 주는 것은 필요하다. 시장의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는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것도 타당하다. 하지만 정부의 지원과 보호만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지 않는다.
경쟁력이란 상대적 비교개념이다. 경쟁자보다 얼마나 더 잘하느냐가 중요하다. 정부의 지원은 보편적이라 전체 중소기업의 역량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열악한 영세기업의 수준을 향상하는 데는 큰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의 전반적 역량과 수준이 올라간다고 모든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의 수학능력이 향상됐다고 등수가 모두 오르는 게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모든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 전체 평균 점수가 상승하더라도 상대적 순위는 변하지 않는다. 학습능력이 부족한 학생에게 별도로 특별 과외를 시켜 점수를 올리면 하한선은 올라가지만 등수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기업의 경쟁은 시장에서 이뤄지며 경쟁사보다 얼마나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 고객의 선택을 받느냐가 바로 경쟁력이다. 이런 점에서 경쟁력은 ‘시장경쟁력’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경쟁은 숙명이며 시장경쟁력은 생존무기다. 시장에서 경쟁사를 제치고 고객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성장은커녕 생존도 보장받지 못한다. 운동선수가 경기에서 입상하지 못하면 선수로서의 생명이 끝나는 것과 같다.
정부의 정책 지원은 중소기업의 시장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요한 자원을 보충해 줄 뿐 시장경쟁력 자체를 채워주지 않는다. 정부가 자금, 기술, 인력, 판로 등의 지원책을 제공한다고 시장경쟁력이 자동으로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전적으로 정부 지원에만 머물러서는 다른 기업과 경쟁해서 이길 수 없다. 정부의 지원을 어떻게 활용해 시장경쟁력을 높이느냐는 개별 중소기업의 몫이다.
하지만 현실은 많은 중소기업이 자체적으로 시장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시장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도 정부의 지원을 받으려 한다. 시장경쟁력이 약해지면 정부 지원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탓한다. 정책지원에서 개별 기업의 문제를 맞춤형으로 해결해준다는 과잉 약속이 중소기업의 기대수준과 의존성을 높이기도 했다.
심지어 시장경쟁 자체를 두려워하며 회피하려 한다. 나아가 정부나 정치권의 힘을 빌려 시장경쟁을 제한하려고 시도한다. 결국은 시장에서의 영업 성과가 저조해 매출이 저하되면 정부가 나서 구제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중소기업의 ‘시장경쟁력’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성배(聖杯)’로 치부된다. 중소기업 입장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도 도달할 수 없는 최고의 경지라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한다. 법령과 정책에 ‘경쟁력’ 강화라는 목표가 들어가 있지만 현실과 괴리가 크다. 이런 괴리를 해소해 중소기업의 실제적 시장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