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빛이 난다…전북 완주의 멋

김명상 기자I 2023.04.21 08:17:00

전통한옥마을의 고즈넉한 분위기 가득해
조선시대 건물 그대로 이축한 시간의 흔적
임진왜란 웅치전 느낌의 전통문화체험장
방탄소년단 화보 촬영지에서 포즈 취할까
일제 수탈의 양곡 창고 건물, 예술공간으로

전북도립미술관의 전시 작품 ‘라이브 드로잉’
[이데일리 김명상 기자] 전북 완주는 최근 주가가 급등한 대표적인 여행지다. 유명 가수가 다녀간 촬영지는 팬들의 성지 순례지가 됐고, 수탈의 가슴 아픈 역사가 담긴 창고는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예술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고택을 옮겨 놓은 조용한 마을은 여행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명소가 됐다. 예술과 관광의 도시로 거듭난 완주는 이제 하루가 부족한 여행지로 사람들을 매혹하고 있다.

◇예술의 향기 품은 전통고택 ‘오성한옥마을’

아원고택의 한옥과 정원
한옥은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를 더하는 공간 중 하나다. 해발 608m 종남산을 마주하고 있는 오성한옥마을은 넉넉하게 품어주는 한옥의 매력과 예술의 향기를 담은 곳이다. 20여 채의 한옥이 모여 있는 이곳은 카페, 갤러리, 책방, 맛집 등도 자리해 감성 넘치는 여행지로 인기가 높아졌다.

오성한옥마을에서 사람들이 가장 몰리는 곳은 아원고택이다. 방탄소년단(BTS)이 ‘2019 서머패키지 인 코리아’ 화보를 찍은 이후 완주의 대표 여행지로 급부상했다. 아원고택 입구에 들어서니 바깥 풍경이 내다보이는 공간에 선 거대한 벽이 등장했다. 지난해 개관한 새 갤러리로, 벽면에는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아트가 오는 9월까지 전시된다. 빛과 자연물을 표현하는 아트월이 주변 자연 풍경과 어우러지면서 디지털이라는 이질감이 사라진 듯한 정경을 연출한다.

아원 뮤지엄의 전시 작품인 ‘타임 드롭’
이곳에서 좀 걸어가면 현대적인 건축물이 나온다. ‘한옥 속 미디어아트 센터’를 표방하는 아원 뮤지엄으로 현재 ’타임 드롭(Time Drop)’이라는 작품이 전시 중이다. 헤드폰을 착용하고 앉으면 커다란 돔이 씌워지고 약 5분 동안 몰입된 상태로 명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 특이하다.

갤러리에서 나오면 대숲 명상길로 연결된다. 기와를 쌓은 흙길을 걸으면서 대나무에 스치는 바람 소리를 듣다 보면 마음이 정화되고 복잡한 감정이 내려앉는 듯하다.

아원고택은 천지인, 사랑채, 안채, 서당, 별채 등 5개 동 7개 객실로 구성돼 있다. 이중 안채는 경남 진주에 있던 250년 된 한옥을 옮겨 지었고, 최근 생긴 서당은 전남 함평에서 조선 말기 실제 사용하던 것을 옮겨다 지은 것이다. 숙소로 쓰이는 이곳의 주말 1박 숙박가격은 100만원 안팎. 꽤 부담스러운 가격에도 6월까지 주말 예약 대부분이 찰 정도로 인기가 높다.

완주 아원고택의 서당에서 바라본 풍경
서당의 대청마루에 앉아 있으니 마당의 연못 너머 종남산의 푸른 산세가 눈앞에서 춤을 추는 듯했다. 객실 안쪽 히노끼 탕은 문을 열면 따뜻한 기운을 즐기며 자연을 오롯이 눈에 담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소양고택 내부
아원고택 아래쪽에는 100년이 넘는 세월을 품은 소양고택이 있다. 철거 위기에 놓였던 고창, 무안의 고택 3채를 해체해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 완주 1호 독립서점인 플리커 책방은 장작 타는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는 장소다. 바로 옆에 계곡이 있어서 여름에 시원한 물에 발을 담그고 문화적 갈증을 풀 만하다.

다슬기 부추 돌솥비빔밥이 유명한 식당 기양초
오성한옥마을에는 맛집도 많다. 그중에서 기양초는 다슬기 부추 돌솥비빔밥을 판다. 기양초는 부추의 다른 이름이다. 다슬기의 초록빛으로 물들어 있는 밥을 놋그릇에 담고 부추를 넣고 양념간장을 섞어 비비면 끝. 옛날 할아버지네 집을 연상케하는 하얀 양옥집에서 맛보는 건강식이라 그런지 더욱 정겨운 느낌이 든다. 멸치조림, 백김치, 냉이나물, 김부각, 된장찌개 등 10가지 반찬과 즐기는 식사는 호사스럽지는 않지만 몸을 채우는 건강함이 있다.

◇완주에서 방탄소년단의 흔적을 찾다

BTS가 방문했던 곳은 전 세계 아미의 ‘성지’로 떠올랐다. 완주군은 이들 주요 촬영지에 모두 ‘완주 BTS 힐링 성지’라는 입간판을 세워두고 스탬프 인증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스탬프를 모두 찍으면 작은 선물을 준다.

위봉산성 성문
조선 숙종 원년(1675)에 쌓은 위봉산성도 방탄소년단의 촬영지 중 한곳이다. 예전에는 16㎞ 길이의 성이었으나 지금은 성벽 일부와 석문 정도만 남아 있다. 높이 3m, 너비 3m의 아치형 석문 아래에서 BTS가 사진을 찍은 뒤 가장 많은 사람이 찾아온다.

오성제 저수지에 있는 소나무
오성제 저수지 일대에는 ‘BTS 소나무’로 불리는 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카페 오성제 근처에 있는데 이곳에서 BTS 멤버들이 멋진 의상을 차려입고 화보를 촬영했다. BTS가 비틀스와 비슷한 자세로 사진을 찍었던 고산 창포마을 개울가 다리도 유명하다. 마음은 아직 청춘인 중년 남자들이 모여 아이돌 포즈를 취하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진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되새기며 조금 뻔뻔해지면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 고산 창포마을은 2020년 한국관광공사 ‘비대면 관광지 100선’에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일제 강점기 수탈현장이 문화예술촌으로

청소년전통문화체험관 내 웅치전투 게임장
1592년 임진왜란 초기, 왜군은 전라도 일대를 장악하고자 했으나 ‘곰티제’라 불리는 웅치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큰 타격을 입고 결국 후퇴하고 만다. 장수 4명과 조선군 3000여 명이 전사한 웅치 전투는 왜군의 전라도 공략을 무력화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완주 전통문화체험장은 웅치전투 현장으로 뛰어들 수 있는 곳이다. 대형 스크린 앞에서 몰려드는 왜군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면 가상의 화살이 발사돼 격퇴할 수 있다. 처음엔 재미 삼아 활을 잡아당기지만 어느새 팔이 저릿해질 만큼 몰입도가 높다.

완주 전통문화체험장 내부의 충차
체험관 밖에는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재현한 야외 전통무예 체험장이 있다. 성문을 공격하는 수레인 충차, 공성용 사다리차인 운제, 목책 등이 놓여 있는데 이곳에서 장비를 착용하고 서바이벌 게임을 벌일 수 있다. 활에 장착된 액정 화면을 통해 적을 조준해 쏘면 적중 여부를 알 수 있다. 실전을 방불케 하는 게임은 현재 완주군에서 시설 정비를 진행 중이며 완료 후 일반에 개방할 계획이다.

놀토피아의 기구들
34종류의 심신발달형 모험놀이 시설이 갖춰진 대형 실내놀이터 놀토피아도 이곳에 있다.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즐길 만한 놀이시설이 있으니 전통 한옥 체험을 겸해 들러서 좋은 추억을 쌓아보자.

◇예술공간이 된 양곡창고, 삼례문화예술촌

삼례문화예술촌 내 전시관과 태권브이 조형물
완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예술 투어’다. 삼례읍은 조선시대 교통의 요지이자 토지가 비옥한 만경평야의 일원을 이루는 지역이다. 일제는 이 지역의 쌀을 일본에 반출할 목적으로 대규모 곡물 창고를 만들었다. 이 수탈의 현장은 2011년 8월 삼례 문화예술촌으로 탈바꿈했다. 삼례역 바로 앞에 있는 예술촌은 일제강점기 창고 건물들을 부수지 않고 활용했다는 점에서 뜻깊다.

삼례책마을문화센터
삼례문화예술촌의 옛 창고 건물은 모두 7개 동. 현재 클래식 명화, 현대미술, 디지털 미디어 파사드, 지역작가 작품, 공예품 등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과거 제1전시관 건물에는 쌀을 8000가마 정도 보관할 수 있었다고 하니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예술촌 인근에는 삼례 책마을 문화센터가 있다. 역시 양곡창고를 개조해 고서점과 헌책방, 북카페, 공연장 등으로 활용 중이다. 각종 도서전과 세미나, 공연 등도 열리므로 예술촌과 함께 가볼 만한 곳이다.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태초의 숲’
완주의 또 다른 예술문화공간은 전북도립미술관이다. 모악산 자락의 수려한 주변 풍광과 함께 펼쳐지는 예술 세계에 흠뻑 빠져들기 좋은 곳이다. 7월 16일까지 본관에서 ‘PLAY×FUN=HAPPY’ 전이 열린다. 놀이를 통해 현대미술과 친숙해지도록 돕는 전시다. 미술관 벽에 색칠이나 낙서를 하는 행위를 통해 개구쟁이 시절로 돌아가게 해준다. 역량 있는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전북 청년 2023’도 새로운 충격과 전환을 주기에 충분하다.

유휴열미술관의 작품 중 ‘돌담미학’
차로 5분 정도 거리에는 전주지역권의 원로화가 유휴열 선생의 미술관이 있다. 이곳 야외전시장에는 춤사위를 펼치는 무녀, 가족상 등 작가의 다양한 조각품들을 전시 중이다. 카페 르모악과 함께 있는 미술관은 작가의 딸이 큐레이팅을 맡고 있다. 다양한 작품과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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