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다시 고민에 빠졌다. 라임 플루토 TF-1호(무역금융펀드) 원금을 투자자에게 전액 돌려주라는 금융감독원의 권고를 받아들일지 여부를 놓고서다. 판매사의 책임 범위를 넘어선 요구라는 분위기가 강하지만, 큰손 고객의 이탈과 금융당국의 보이지 않는 압박이 부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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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은 분조위의 권고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기류다. 펀드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불완전판매의 소지가 있었다는 부분은 인정한다. 그렇더라도 판매사가 100%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은 다른 얘기라는 게 은행권의 주장이다. 라임운용 등이 부실을 숨기도 펀드를 운용해 판매사인 은행도 일종의 피해자인데, 운용사 몫까지 덤터기를 쓸 수는 없다는 기류가 강하다. 현재 라임운용이 퇴출 절차를 밟고 있어 구상권을 청구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사기가 아닌 이상 판매사가 투자 원금을 전액반환한 전례는 없다. 특히 은행의 책임 범위를 넘어선 보상을 하게 되면 은행 경영진이나 이사진이 배임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는 게 은행들의 본심이다. 앞서 금감원 분조위가 키코 배상을 권고했으나 대부분 은행들이 배임 우려 탓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모펀드 배상이 라임 한 건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란 점도 부담이다. 최근 환매를 중단한 옵티머스 등 부실 사모펀드가 줄줄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에서 전액 배상에 나섰다가 은행 부담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중은행의 한 사외이사는 “사모펀드 판매 과정에서 은행도 잘못한 게 있겠지만, 문제가 터지면 무조건 은행이 책임지라고 압박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분위기라면 투자의 자기책임 원칙도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사모펀드 가입 고객이 은행의 큰손이라는 점 때문에 무조건 거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들이 등을 돌리면 자산관리(WM) 부문이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라임펀드에 대해 판매사들이 라임 펀드 환매 중단액의 70%에 대해 선보상, 선지급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금융당국과 대립각을 세운다는 측면도 부담이다. 특히 소비자보호를 최우선시하는 금융감독원의 배상권고를 외면하기 쉽지 않아서다.
이미 금감원은 사모펀드 판매사들을 대상으로 한창 불완전판매 현장 검사를 벌이고 있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이르면 이달 제재에 착수하겠다고 공언했다. 또 코로나로 중단됐던 금감원의 종합검사가 하반기에 재개되는데, 공교롭게도 은행권은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이 대상이 될 전망이다. 자칫 금감원의 눈 밖에 났다가 ‘찍힐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은행권 내부에선 금감원에 반드시 협조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있는 게 사실이다. 우리은행이 키코 배상 안을 받아들였으나 최고경영진에 연임이 제한되는 문책경고 처분이 내려진 뒤 생긴 학습효과다. 배임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금감원 얘기를 따라봐야 어차피 맞을 매(제재)라면 그냥 맞는 게 낮다는 논리다.
은행권 관계자는 “조만간 이사진이 모여 고객피해 최소화를 중점에 두고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면서 “금감원 분조위의 권고를 충분히 검토한 뒤 의사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