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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발굴된 섹스토이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독일의 한 동굴 근처에서 발견된 실트암 딜도(성적 만족을 위한 삽입형 기기)다. 20cm짜리 남근 모양 딜도의 제작연도는 약 3만 년 전. 구석기 시대에도 누군가는 도구를 이용해 기쁨을 찾을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 혹은 그녀가 매끈한 돌을 발견하고 ‘이거, 딱 인데?’라고 좋아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난다.
고대 그리스 화병이나 중국 춘화 등의 미술 작품은 물론, 셰익스피어의 희극에도 섹스토이는 등장한다. 주로 딜도는 나무나 돌멩이 등의 소재였지만, 17세기부터는 유리 딜도가 등장하며, 1880년경 한 영국 의사가 인류 최초의 전기 바이브레이터를 발명한다. 20세기 초 미국에서 재봉틀이나 토스터와 함께 팔리던 가전 기기 중 하나가 바이브레이터였을 정도로 오르가슴을 위한 진동기는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100년이 더 지난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섹스토이 업계는 활기차다. 시장의 규모는 매년 성장하고 있고, 전 세계 섹스토이 제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국이 폭발적 소비증가를 주도하고 있다. 온갖 크기와 디자인의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물론 무선 원격 제어 토이, VR(가상현실)을 이용해 실제 섹스 느낌을 구현하는 제품 등 창의성과 기술력이 돋보이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매년 상하이, 하노버, 라스베이거스 등지에서 성황리에 열리는 성인용품 박람회에선 섹스토이의 미래에 대해 전망해 볼 수 있으며, 업계 관계자들 역시 워크숍 등을 통해 자신의 시각을 나눈다.
플레져랩 역시 최신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주 미국에 다녀왔다. 미 서부의 대도시를 돌며 다양한 섹스토이샵을 방문하고 제조사와 미팅을 했는데, 성인용품 스타트업들이 어떻게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지를 현장에서 보며 큰 자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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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에 기반을 둔 거대 섹스토이 업체 지미제인(Jimmy Jane)의 창립자 역시 존스 홉킨스 대학 출신의 엔지니어다. 2013년 베벌리 힐스에서 열린 성인용품 간담회에 패널로 참여한 그는 자신과 같은 ‘업계 아웃사이더’들이 신선한 시각을 가져올 것이라 예언한 바 있다. 그리고 실제로 현재 가장 기발하고 세련된 물건을 내어놓는 이들은 산업 디자이너나 개발자가 설립한 회사들이다. 휴대전화와 컴퓨터를 디자인하고 만들던 이들이 섹스토이 제조를 맘먹을 때 무궁무진할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이러한 기술 개발을 환영하는 이유는 소비자들에게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시장에는 ‘딜도 깎는 장인’들이 만든 수제 나무 딜도만을 판매하는 회사도 있고, 흡입(suction)기능을 이용해 1분 아래 클리토리스 오르가즘을 느끼게 하는 기기도 있고, 섹스시 몇 번 피스톤 운동을 했는지, 몇 칼로리를 태웠는지 스마트 기기 앱에 자동으로 입력해주는 웨어러블 섹스토이도 있다. 무엇을 택할지는 구매자의 취향에 달렸다.
성인용품 제조 후발주자인 한국은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성인용품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지라 아이디어와 실력을 갖췄어도 ‘죽으라 공부해서 결국 섹스토이 따위’ 라는 시선이 두려워 도전을 꺼린다. 우리나라에서 개발된 실용성 있고 재치 넘치는 신개념 섹스토이를 만나보기를 희망해본다.
앞으로도 성적인 즐거움을 위한 제품 개발은 활발히 이어질 것이다. 3D 포르노와 가상현실 섹스 기기는 이미 도래했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SF영화, A.I.의 섹스 로봇이 가까운 미래로 다가왔다. 이런 최신 기술을 집약한 결과물들이 불러올 여러 도덕적 질문들은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좋든 싫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