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5월 슈렘프 회장은 `세기의 결합`을 선포하면서 "오늘 우리는 21세기 세계를 선도하는 자동차 회사를 창조해냈다"면서 "세계에서 가장 이윤을 많이 내는 회사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후 1999년 포드의 볼보 승용차 부문 인수, 르노와 닛산의 자본제휴, 2000년 다임러크라이슬러의 미쓰비시 자동차 자본제휴 등으로 전세계 자동차 산업에 구조개편의 회오리가 몰아닥쳤다. 재편 논의는 현재 진행형이지만 이를 주도한 다임러크라이슬러는 9년만에 크라이슬러를 매각, `실패한 합병`을 자인하고 말았다.
다임러와 크라이슬러의 결합이 글로벌 자동차 산업재편에 1차 촉매가 된 것 처럼 사모펀드 `서버러스`에 대한 크라이슬러의 분리매각은 2차 재편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변화를 위한 여건은 성숙돼 있다. 제너럴모터스(GM)와 포드 등 업계 대표주자들은 자체 구조조정 내지는 생존 차원에서 물밑으로 다양한 전략을 모색중이다. 시장도 변화하고 있다. 일본이 미국을 제치고 자동차 종주국으로 부상하고 있고, 중국은 자동차 생산과 소비에서 메이저 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하면서 외연을 넓히는 중이다.
주목할 점은 1차 재편성 때 자동차 시장에서 선두에 있던 GM과 포드 등이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 GM은 핵심 자사 매각과 공장폐쇄, 인력감축 등으로 강도 높은 감량경영에 돌입했다.
미국 2위 자동차 업체인 포드의 창립자 가문도 포드 주가가 계속 추락함에 따라 보유 지분을 매각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사상 최대인 126억달러 규모의 손실을 기록한 포드의 주가는 1999년 이후 74%나 폭락했다.
반면 일본의 도요타자동차는 76년만에 GM을 제치고 생산대수 기준 세계 1위에 등극했고, 혼다 등 후발주자들의 약진도 눈부시다. 최근 자동차업계 재편성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모펀드인 서버러스가 동종업계의 캐나다 자동차 부품업체 마그나 인터내셔널을 제치고 크라이슬러를 인수하게 됐다는 점이다. 기존 업체들의 M&A 동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사모펀드에 의한 M&A가 자동차 산업 재편의 새로운 촉매가 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2차 재편은 미국과 유럽지역 기존 메이저 업체들의 수성과 `일본·중국·사모펀드` 3축의 공세로 전개될 공산이 크다.
◇`태풍의 눈` 사모펀드..새로운 형태의 자동차 그룹 탄생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크라이슬러 인수와 관련, 서버러스가 세계 최대 자동차 그룹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서버러스가 그동안 다양한 관련 회사 인수를 통해 자동차 그룹으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서버러스는 경영난에 시달리던 GM으로부터 핵심 금융 계열사인 GMAC의 지분 51%를 매입했었다. 자동차와 주택 구입용 대출을 주로 하고 있는 GMAC는 GM의 캐시카우이자 알짜 사업부였지만 경영난을 맞은 GM으로서는 매각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서버러스는 크라이슬러를 GMAC가 소속돼 있는 지주회사에 포함시켜 시너지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서버러스는 이밖에 다수의 자동차 관련 사업을 보유하고 있다. 서버러스는 지난 2003년에는 부도났던 앨라모 앤드 내셔널 자동차 렌탈의 전신인 밴가드 자동차 렌탈을 인수했고, 작년 11월에는 파산한 자동차 부품업체 타워 오토모티브의 자산을 10억달러에 매입했다. 파산 보호를 신청한 미국 최대 자동차 부품회사 델파이에 34억달러의 투자를 제안하기도 했었다. 부품과 금융, 조립에 이르기까지 자동차 그룹으로서 수직계열화를 위한 기반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포드 자동차의 앨런 멀럴리 최고경영자(CEO)는 "사모펀드들이 침체돼 있는 미국 자동차 산업으로 침투하려고 모색하고 있고, 전세계 자동차 업체들은 이머징 마켓으로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자동차 부품 공급업체와 생산업체가 모두 합병을 겪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메이저들의 위상 변화는 관련 산업들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는 논리다.
◇美 `빅3` 지각변동 오나
서버러스가 고용보장을 주장해 왔던 전미자동차노조(UAW)의 반발을 무마하고 크라이슬러에 고강도 구조조정 단행해 비용절감을 이뤄낸다면 GM과 포드를 비롯한 미국 자동차 업계 전반의 일대 변화도 예상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전망했다.
이로 인해 연금 등 노동비용 증가로 고전해 온 미국 자동차 업체들에 구조조정의 회오리가 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지 주목되고 있다.
포드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이 어디로 넘어가는냐는 것도 미국 빅3 자동차업체들의 지각변동을 가속화할 요인으로 예상된다.
포드 가문이 보유 중인 회사의 주식은 7100만주(Class B)로 전체의 40% 가량에 이른다. 이미 포드는 실적 악화로 인해 지난 4월 미국에 있는 구동축 제조 공장인 먼로와 멕시코 소재 연료레일 공장 등 부품 공장을 잇따라 매각하는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사모펀드 외에도 업계 1위로 등극한 도요타 등 일본 업체들의 M&A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들이 미국 자동차 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방편으로 미국 자동차 산업 재편을 기회로 삼아 M&A를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지만 대형화 바람이 불면 GM과 르노-닛산의 삼각연대 논의가 다시 불거지거나 이들이 다른 인수 파트너를 찾아 나설 수도 있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자동차 시장에 힘 입어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느 중국 업체들이 M&A전에 뛰어들 가능성도 있다. 지난 2004년 중국 최대 자동차업체인 상하이자동차그룹은 쌍용자동차를 인수했었다.
◇M&A 붐, 마이너 업체는 생존에 안간힘
자동차 산업 재편이 진행되면서 일본에서는 M&A로 일본 중소형 자동차업체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자동차업계의 M&A 바람이 군소업체들한테까지 미칠지 관심이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15일 크라이슬러가 매각되는 등 최근 자동차 업계의 변화 움직임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1990년대말 시작된 전세계 자동차 산업의 재편성이 일본 마이너급 자동차 메이커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중소업체인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는 현재 구조조정을 해 나가면서 실적이 회복되고는 있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미쓰비시가 힘 있는 파트너를 구하지 않는 이상 고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강한 실적 호조를 보이고 있는 일본 스즈키 자동차는 저가 소형 자동차 부문에서 매우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적대적 M&A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