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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신촌의 변화가 보여준 유통의 역사

김무연 기자I 2020.07.18 10:00:00

지난 16일 그랜드마트 자리에 이마트 신촌점 들어서
오프라인이란 약점에도 불구 특색 매장으로 인기 끌어
카페 등장으로 민들레 영토, 캔모아 등 사라져

[이데일리 김무연 기자]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의 파도가 젊음의 상징이었던 신촌을 잠식하고 있다. 수십 년을 터줏대감처럼 신촌을 지켜온 가게들은 소비 방식의 변화에 속속 문을 닫으며 후임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신촌은 젊은이들의 주요 놀이터였다. 신촌은 연세대, 서강대 등 서울 명문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유흥과 문화를 즐기던 트렌드 1번지였다. 특히 ‘밤문화’를 즐기고자 했던 청춘들은 정부의 탄압을 받던 나이트클럽 등 유흥업소를 대신해 블루멍키즈, 롤링스톤즈, 스페이스 등 신촌 락카페로 몰려 들었다.

락카페는 나이트클럽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즉석만남, 일명 ‘부킹’을 대신해 자신이 알아서 놀 상대방을 찾아야 하는 새로운 문화를 전파했다. 또 당시로선 생소했던 갱스터 랩이나 하우스, 트랜스음악 등을 보급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하지만 1990년 중반을 기점으로 이런 영향력은 ‘클럽’으로 넘어갔고 젊음의 거리란 타이틀도 홍대에 내주게 된다.

이마트 신촌점 전경(사진=이마트)


◇ 안녕 그랜드마트, 어서와 이마트

지난 16일 이마트 신촌점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그랜드플라자 건물 지하 1층부터 지하 3층까지 3개 층으로 운영하며 총 영업 면적 1884㎡(570평) 규모다. 이마트는 신촌지역의 20~30대 인구 비중이 40%로 높고 1~2인 가구가 많은 점을 반영해 ‘소단량 그로서리 상품 기획(MD)’ 중심으로 매장을 운영한다고 설명했다

이마트 신촌점은 오픈 당일 개점 시간인 9시 이전부터 100명이 넘는 사람이 몰릴 정도로 몰리며 인기를 끌었다. 대형마트에 익숙한 패션·잡화 및 가전 매장을 과감히 제외하고 1인용 소분 식품과 주류 매장을 대폭 강화했다.

이마트가 들어선 자리는 본래 그랜드마트가 위치했었다. 해당 건물은 한국 백화점 기업인 그랜드백화점이 1990년 중반 크리스탈백화점을 인수해 활용해왔다. 이후 2000년대 접어들어 그랜드마트로 전환해 운영했지만 운영이 여의치 않아 2012년쯤 지하층에 식품관만 남기고 지상층은 이랜드 복합몰에 임대를 내줬다. 그러다 매출 부진으로 2018년 9월 23일 자로 폐점했다.

사실 그랜드마트 폐점 수순은 예견된 일이었다. 2000년대 들어 대형마트들이 지역 상권을 완전히 장악한데다 2010년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이커머스의 성장으로 오프라인 매장의 입지도 급감하고 있다. 국내 마트 업계 1위인 이마트조차 신촌점을 새롭게 개장하는 것에 의문부호가 달리는 상황에서 중소형 할인점인 그랜드마트로서는 실적 악화를 피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신촌의 랜드마크였던 그랜드마트의 폐점과 새로운 콘셉트의 이마트 개점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오프라인 유통 시장에서 대규모 물류 인프라를 바탕으로 특가로 상품을 공급하고 매장에서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기 어려운 오프라인 매장은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졌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민들레 영토 신촌 어머니점


◇ 공간을 팔던 민들레 영토, 카페 프랜차이즈에 밀려

1990년대 초중반 국내에선 카페란 아직은 낯선 개념이었다. 당시 젊은이들은 차를 한 잔하면서 여유롭게 이야기를 할 장소가 희소했다. 커피를 파는 다방이 있었지만 젊은이들에겐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나 찾는 구태의연한 장소였다. 그나마 있는 고급 카페도 차만 간단히 즐기는 곳이었지 오랜 시간을 앉 아있기 눈치 보이는 곳이었다. 이 과도기를 비집고 혜성처럼 등장한 곳이 바로 ‘민들레 영토’다.

민들레 영토는 1994년 신촌 연세대학교 인근에 자리에서 ‘어머니점’이라 불리는 1호점을 시작했다. 창업자인 지승룡 대표는 카페에서 책을 읽다 30분만에 카페에서 쫓겨난 경험을 바탕으로 오래 앉아있어도 부담 없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이에 따라 민들레 영토는 단순히 음료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사람끼리 모이고 이야기나 팀플레이를 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콘셉트로 잡았다.

민들레 영토는 음료 한 잔당 요금을 계산하는 일반 카페와는 달리 민들레 영토는 3시간의 기본요금을 내고 그 시간 동안 가게에서 제공하는 ‘민토차’ 등 음료를 무제한으로 제공받았다. 돈을 지불 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판다는 민들레 영토의 사업 방침은 적중했다. 민들레 영토를 찾던 일 평균 고객은 창업 당시 100명에서 10년 뒤인 2005년 1만 명까지 늘어났다.

신촌의 무허가 건물에 시작해 대표하던 한국을 대표하는 토종 카페 브랜드로 성장한 민들레영토는 종로 2가, 경희대, 고려대 등 대학가 등으로 공격적인 확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스타벅스를 시작으로 국내에도 점차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가 생기면서 3시간 동안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민들레 영토만의 강점이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민들레 영토는 스터디룸 등을 만들고 잡지를 비치하는 등 북카페의 느낌을 도입하는 등 변화를 시도했지만 결국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와 전문 스터디 카페의 틈새에서 자리를 잡는데 실패했다. 2009년 민들레 영토의 모태가 된 신촌점이 문을 닫았고 한때 21개까지 늘었던 지점은 대부분 자취를 감췄고 현재는 경희대점만이 명맥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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