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대한민국에 잘 노는 언니들이 이렇게 많았나. 지난 17일 저녁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은 ‘나이트클럽’에 가까웠다. 즐기려고 벼르고 온 ‘준비된’ 관객 반응은 다른 어떤 공연보다 뜨거웠다. 짧은 치마, 딱 붙는 청바지에 어깨와 등을 과감하게 드러낸 관객 의상도 이 공연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장면이다. ‘진짜 다 벗나’ ‘어떤 여자들이 보러올까’란 호기심도 잠시. 시작 10분여 뒤 어색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몸을 들썩이다 보니 120분이 훌쩍 지났다.
수위는 지난해보다 세졌다. 주최 측인 다온 ENT는 “작년은 첫 공연인 만큼 한국 정서를 고려해 강도를 낮췄는데 열렬한 반응에 이번엔 라스베이거스와 동일한 무대를 꾸몄다. 무대와 객석 거리도 가까워졌다”고 귀띔했다. 주요 부위는 치펜데일 만의 노하우로 가리지만 상상에 맞긴다며 공개하지 않았다. 관람 팁에 대해 묻자 “마음을 열고(open mind) 오라”고 주문했다. 그는 “적극적인 호응과 참여가 이뤄지면 더 재미있는 관람을 할 수 있다”며 “눈치 보지 말고 즐겨라”고 했다. 공연은 18일 끝났지만 한국 여성들의 주체적인 성 요구가 높아진 만큼 체험담을 풀었다.
△자꾸 찢고 벗네…사진촬영도 OK·입소문 전략
공연 전 안내방송도 남다르다. 플래시를 터뜨리지 않으면 공연 내내 사진 촬영이 가능하단다. 다만 동영상 촬영은 금지다. 다온 측은 “19금 공연이라 워낙 홍보 제약이 많다. 국내는 제한이 더 많은 편”이라며 “직접 공연을 보러온 관객을 통한 입소문 홍보 방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어떤 테마로 무슨 옷을 입고 등장하든 결론은 노출이다. 강렬한 비트에 맞춰 춤을 추면서 한 겹씩 벗어던졌다. 앞섶을 풀어헤치거나 셔츠를 찢어 관중석으로 던지기, 주요 부위만 가린 채 뒤태를 노출하는 등 다양했다. 외설로 치부하기에는 유쾌하고 유머러스해 거부감이 적었다. 백미는 공연 중간중간에 관객을 무대 위 쇼에 참가시킨다는 점이다. 배우 리드에 따라 즉석에서 팬티를 직접 입혀준다거나 밧줄에 묶이고, 눈을 감고 몸을 더듬는 등 도발적 댄스를 선보였다.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9명의 배우는 철저한 식단관리와 운동으로 완벽한 몸을 유지한다고 했다. 몸에 근육이 사라지면 무대 위에 오르지 못한다. ‘기-승-전 노출’이다 보니 딱히 스토리는 없지만 폭발적인 호응은 공연의 부족한 짜임새를 메우고도 남았다. 성인쇼 답게 로비에서는 콘돔을 공짜로 나눠주는가 하면 성인용품을 판매해 큰 호응을 얻었다.
△20~60대 반응 후끈…남성상품화 역차별 논란도
이날 공연장에는 20~60대 여성들이 1300석의 객석 3분의 2 정도를 채우고 있었다. 다온 측에 따르면 지난해보다 반응이 좋다. 주최 측은 “홍보 제약이 많지만 작년에 비해 관객 수는 늘었다. 지난해 방문했거나 매일 찾는 회전문 관객 비중이 높다”고 말했다.
|
한 20대 관객은 “처음엔 외국인이라 뭔가 특별한 느낌이 있겠나 싶었는데 늘씬한 남자들이 다가오니까 심장이 쿵쾅 거리더라”고 웃었다. 다만 “별다른 공지 없이 공연을 10분 정도 늦게 시작한 건 옥의 티”라고 했다. 또 다른 관객은 “경호 인력인 남성들이 간혹 보였다는 점, 젊은 관객층만 무대 위에 불려지는 것 같아 그 점은 아쉬웠다”고 지적했다.
엇갈리는 반응도 있다. 온라인 등에서는 남성 상품화에 대한 비판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여성의 성 상품화는 금기시하면서 남성의 성을 판매하는 공연은 어떻게 버젓이 이뤄질 수 있냐는 비판이다. 워킹망이라는 한 관객은 “남성 중심의 성 판타지 주체를 단순하게 자리 바꿈한 것 같아 씁쓸한 면도 있다”면서 “캐릭터가 살아나고 스토리도 입히는 식으로 이런 쇼가 계속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쇼의 캐스팅 매니저는 지난해 기자들과 만나 성 상품화에 대한 지적과 관련해 “개의치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성적인 대상화가 아닙니다. 남성의 몸을 주제로 하지만 단순히 몸을 전시하는 쇼가 아니죠. 우리는 모두 훌륭한 배우이고, 가수이자 댄서예요. 소통하고 교감하죠. 여성의 판타지를 만족시키는 쇼일 뿐이에요.”
‘치펜데일(Chippendales) 쇼’가 뭔데?=‘오직 여성만을 위한 쇼’라는 노골적인 문구를 전면에 내건 19금 공연이다. 1979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망해가는 나이트클럽을 되살리려 시작했던 쇼는 안무와 음악을 접목한 뮤지컬처럼 진화했다. 100여 국, 1억명 넘는 여성이 관람했고 공연 중 찢은 셔츠만 120만장이 넘는다. 실직한 철강 근로자들이 생계를 위해 벌이는 스트립쇼를 그린 영화 ‘풀몬티’의 원작이다. 당시 곡선이 많고 장식적인 치펜데일 스타일 가구가 나이트클럽에 많아 공연 이름을 따왔다. 굴곡이 많은 근육질의 몸을 뜻하기도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