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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신춘수(49) 오디컴퍼니 대표는 돈키호테와 이음동의어(異音同意語)다. 더 뺄 것도 보탤 것도 없다. 그가 보여준 그간의 행보 덕분이다. 2001년 오디컴퍼니를 설립한 이후 작품 제작과 공연 비즈니스 현장에서 항상 모험했다. 과정은 매번 극적이었다. 타협하지 않았다. 2009년 한미합작 첫 뮤지컬 ‘드림걸즈’ 제작을 비롯해 ‘멀티캐스팅 첫 도입’ ‘미국 브로드웨이 진출’ ‘한국버전 월드투어’ ‘한국인 첫 브로드웨이리그 정회원’ 등…. 최초란 수식어가 유독 많은 이유다.
신춘수 대표가 단번에 꼽은 내 인생의 책 역시 ‘돈키호테’(시공사2004)다. 스페인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1547∼1616)의 불후의 명작이다. 1605년 출간돼 전 유럽을 휩쓴 베스트셀러가 됐다. 지혜와 명철, 해학과 풍자로 오늘날까지 세대를 구분 짓지 않고 읽힌다.
25일 서울 혜화동 한 카페에서 만난 신 대표는 “돈키호테는 모험이자 변화의 인물이다. 광기와 희화는 그 본질이 아니다”며 “이상을 담아낸 광기는 역으로 비겁한 현실을 타파하는 무기다. 공연제작자로서 ‘신춘수 뮤지컬’을 대중에 알리는데 일조한 작품”이라고 했다.
◇영화광에서 ‘간판급’ 공연 프로듀서로
“프로듀서라는 일에 관심도 많아지고 어느덧 목표가 칸이 아닌 브로드웨이로 옮겨가 있더라. 내 색깔로 내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결심에 서른을 갓 넘겨 독립했다.” 그렇게 만든 회사가 ‘오디(OD)컴퍼니’다.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Open the Door)라는 뜻이다. 오디의 성장 발판이 돼 준 작품이 바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2004)와 돈키호테가 원작인 ‘맨 오브 라만차’(2005)다. 모두 2000년대 중반에 국내 공연계에 신드롬을 일으키며 흥행에 성공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재공연되며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맨 오브 라만차’를 보고 어릴 적 ‘돈키호테’를 읽고 느꼈던 감정들이 오롯이 느껴지더라. ‘이 거다’라고 무릎을 쳤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했다는 신 대표는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고 했다. 초·중학년까지 ‘천재작가 났다’란 소리를 듣고 자랐다. “안 읽어본 책이 친구 집에 있으면 아무 생각 없이 가져올 정도였다. 다독도 하지만 한 권을 여러 번 읽는 편이다. 돈키호테는 초등학교 때 처음 접한 뒤 총 4번 읽었다.”
신 대표의 이런 편력(?)은 작품 세계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그는 “읽을 때마다 처음 읽는 기분이 드는 책이다. 읽는 이의 눈높이에 맞춰 받는 감동이 제각기 다르다”며 “10대 때는 그의 모험이 재밌었다. 중·고교 때는 힘든 여정에서 꿈을 잃지 않는 게 좋았다”고 귀띔했다. ‘맨 오브 라만차’ 작품을 국내서 올리기로 마음먹고 읽은 원작은 모험과 도전이었다.
“내용은 크게 기억과 다르지 않지만 세부 요철들은 글자와 문장이 마법이라도 부리듯 달라진다. 무한한 상상력과 울림을 주더라. 문학성을 기반으로 한 철학을 담은 한국식 재창작 뮤지컬이 ‘신춘수표’ 작품이 아닐까 싶다.”
◇프로듀서 감각 ‘읽기’ 도움…믿음도 컸다
‘될성싶은’ 신인배우를 발굴하는 능력도 타고났다. 조정석·엄기준·임혜영이 대표적이다. 당시 ‘가능성’ 있었지만 자신에게 맞는 캐릭터를 찾지 못해 빛을 못봤던 류정한·조승우·정성화도 신 대표가 주역으로 캐스팅해 재발견한 사례다. 지금은 내로라하는 스타급 배우로 성장했다.
믿음의 힘도 컸다. 신 대표는 “우선 스스로의 선택을 믿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배우와 스태프, 제작진도 프로듀서의 선택을 존중하고 따라와 준다”면서 “그들을 통해 상상력을 발휘하고, 가능성을 본다”고 했다. 제작진도 유명인보다는 재능 있고, 진취적인 사람을 주로 기용하는 편이다.
◇브로드웨이 토니상…픽사·디즈니 같은 ‘콘텐츠기업 꿈’
신 대표의 최종 목표는 세계 시장이다. 내년 브로드웨이 공연 시장에도 재도전한다. 이번이 세 번째다. 2014년 ‘할러 이프 야 히어 미’(내 목소리 들리면 소리쳐)와 2015년 ‘닥터 지바고’로 두 차례 브로드웨이 공연을 한 적이 있으나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신 대표는 “태양광필름전문기업 에스에프씨와의 파트너십도 이와 다르지 않다”며 “향후 엔터·음반제작 등의 사업까지 영역을 확대해 픽사나 디즈니처럼 콘텐츠기업으로 키울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화의 꿈도 진행형이다. 리얼리즘 영화를 지향하지만 공연 프로듀서로서 ‘라라랜드’ 같은 뮤지컬 영화도 찍고 싶다고 했다. 신춘수 대표는 “너무 앞만 보고 달려 왔다. 이제 옆도 보고, 뒤도 보려고 한다”며 향후엔 전문 경영자를 따로 두고 예술감독으로서의 역할에 몰두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좋은 프로듀서는 결국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든 거다.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신춘수표 뮤지컬을 만드는 게 꿈이다. 토니상을 받으면 좋고. 하하.”
△신춘수 오디컴퍼니 대표는…
신춘수 대표는 1968년생으로 한국 뮤지컬 프로듀서 2세대다. 신시컴퍼니·EMK뮤지컬컴퍼니·설앤컴퍼니와 함께 국내 공연제작사 ‘톱4’로 손꼽히며 ‘넘버원 히트 제조기’로 불린다. 지난해 겨울부터 최근까지 올린 작품만 5편. 타 회사에 비해서도 2~3배 많은 양이다. 해외유명 작품의 라이선스를 사들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작해 현지보다 더 높은 인기를 얻게 하는 능력을 지녔다. 지킬앤하이드·맨오브라만차·드림걸즈·닥터지바고·스위니토드·그리스·나인·드라큘라·스토리오브마이라이프·머더포투 등 내로라하는 작품 모두 오디컴퍼니의 손에서 재탄생했다. 한국뮤지컬협회 이사직과 한국프로듀서협회의 회장직을 거치며 한국공연 발전을 위해 이바지하고 있다.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엔 한국뮤지컬대상 최고프로듀서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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