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러시아에 대한 유럽연합(EU)의 제재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와 사업 교류가 가장 활발한 독일 재계가 자국 정부에 신중한 제재를 촉구하고 나섰다.
현재 독일은 EU 국가들 가운데서도 러시아와의 경제 연관성이 가장 높다. 폭스바겐과 지멘스, 하이델베르크 시멘트 등에 투자하고 있는 최대 외국인 투자자가 러시아인이다. 소매업체인 메트로는 러시아 내에 매장을 두고 있고, 아디다스는 러시아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제공하고 있다. 도이체 루프트한자는 서방 항공사들 가운데 가장 많은 러시아 노선에서 운항하고 있다.
이번주 내내 유럽을 방문하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유럽 지도자들과 만나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현재 EU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관료와 군 장성 등 총 51명에 대해 비자발급 금지와 자산 동결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폭스바겐과 지멘스 등 독일 3100개 기계업체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인 VDMA(독일 기계생산자협회)의 울리히 애커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23일(현지시간) “정치인들이 제재가 가져올 경제적 영향에 대해 생각해보길 원한다”며 “이같은 제재는 당하는 국가 뿐만 아니라 제재를 가하는 쪽에도 영향을 주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베른트 샤이펠레 하이델베르크 시멘트 최고경영자(CEO)도 “EU는 물론이고 미국과 독일도 처한 상황이 다르다”고 전제한 뒤 “미국이 파워 게임을 벌일 경우 러시아도 맞대응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리스크인데, 이로 인해 러시아 재정이 고갈될 경우 모든 인프라와 건설 프로젝트가 좌초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하이델베르크 세멘트는 세계 3위 업체로, 지난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만 5억유로의 매출을 올렸다.
실제 현재 EU 국가들 가운데 독일은 가장 높은 대(對) 러시아 수출비중을 가진 국가다. 러시아에 수출하는 비중만 3.3%에 이른다. 지난해 양국간 교역규모도 770억유로에 이르고 있다. 독일의 대 러시아 투자액도 200억유로나 된다.
이 때문에 도이체방크도 이번 우크라이나 긴장사태로 독일 경제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사태로 러시아 경제가 8.6% 정도 위축될 것으로 보이며 이는 독일 국내총생산(GDP)도 0.5%포인트 정도 끌어내릴 것이라고 점쳤다.
이를 감안한 듯 독일 정부도 추가적인 러시아 제재에서 한 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외교정책 보좌관을 맡고 있는 케르노트 얼러는 지난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제재 강화는 생산적인 일이 아니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