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한 사람이 얘기를 꺼냈습니다. 갓 서른을 넘긴 막내 팀원의 퇴사 소식이었습니다. 3월에 그만두고 나간다는 얘기였습니다.
늘 있는 후배 직원의 퇴사 얘기인 줄 알았는데, 뒤 이은 한 마디로 분위기는 숙연해졌습니다.
“3년전 투자금 7000만원이 17억인이 돼 나간다고 해요. 코인에서 대박이 터져서...”
40대 가장들의 눈에서 ‘아, 부럽다’라는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 둘 자리에 일어나서 밖에 나가 뻐끔 담배를 피웠습니다. 까맣디 까만 밤하늘을 바라 보았죠.
이후 다시 모인 이들은 투자 얘기로 화기애애해졌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요새 뭐 투자한데?”
성공 투자자가 넘치는 시대입니다. 유튜브에는 널렸고 일간지나 지상파TV에서조차 이들의 무용담이 나옵니다. 이들이 짧은 시간에 올린 수익률을 들어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입니다.
|
혹시 지금의 당신 마음도 그런 마음 아닌가요?
◇누군가의 성공? 나와 상관없는 이유
이 세상에는 수많은 실패 사례와 성공 사례가 있습니다. 사실 성공이란 평가도 실패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수많은 실패 사례 중 하나로 돋보이는 것이지요.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는 동안 그 자체로 상품성을 갖게 됩니다. 스토리가 더 탄탄해지는 것이지요.
반면 실패 사례는 그 자체만으로는 흡입력이 약합니다. 일반인의 실패 사례는 흔하디 흔해서입니다. 옆집 누군가의 투자 실패 사례는 나에게 묘한 행복감을 들게 만들지만 그 뿐입니다. 옆집 사람을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관심권 밖이 됩니다.
우리의 착각은 여기에서 시작합니다. 소수의 성공 사례에 가리어 수많은 실패 사례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남들은 다 성공하는데 나만 못하는 것 같은 착각까지 들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위로의 말을 전하자면...
지금 투자에 성공했다고 해서, 혹은 높은 수익률을 거뒀다고 해서 끝이 아닙니다. 미래는 예측하기 힘들고 우리의 투자 생활은 한 두달 하다말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익을 보는 때가 있으면 손실을 피할 수 없는 때도 있습니다. 수익의 기쁨보다 치명적으로 아픈 게 손실입니다.
|
게다가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미래만 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뜻이지요. 2019년 하반기에 이미 불경기에 대한 전망이 나왔고, 채권 시장에서는 이 같은 전망이 반영됐지만, 상당수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았습니다. 계속 지수는 오를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지요.
결국 투자 생활은 수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수익과 손실 사이에서 ‘상황에 맞는 판단과 선택’을 하는 데 있습니다. 이런 선택이 연속되면서 자신의 평균 수익률을 올려가는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남의 성공 사례를 나에게 맞춰 적용시키려는 게 아니라, 내 자신이 주관을 갖고 장기간 투자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주체적으로 판단을 하면서 평균 수익률을 높여갈 수 있는 지력과 체력을 길러야한다는 얘기입니다.
이게 왜 중요한가. 성공 투자자들이 성공한 방식과 환경은 나와 결코 같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서두에 나왔던 코인 투자자는 이미 2017년부터 코인의 움직임을 분석했고 저가 매수 시기에 들어갔습니다. 시장 환경은 그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바뀌었고, 큰 수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2021년과 2017년과의 코인 투자 환경은 다르기 때문에(1차적으로는 가격 차이가 10배), 코인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무작정 코인을 사러 들어갔다가는 손실의 늪에서 헤어나오기 힘들게 됩니다.
그런데 이상하다는 생각 하나. 그럼에도 이들의 투자 무용담이 입에서 입으로 돌고, 유튜브에서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자신의 성공한 얘기를 과장하고 퍼트린다
이관휘 서울대 경여학과 교수는 시사인에 기고했던 칼럼 ‘투자 무용담 속 집단적 체계적, 체계적 편향’에서 보면 ‘사회적 전이 편향’이란 단어가 나옵니다.
이 교수는 데이비드 허슐라이퍼 교수의 경제 이론을 언급했는데, 허슐라이퍼 교수는 개개인의 선호도, 전략, 편향성, 투자 성과 등은 ‘신호 왜곡’과 ‘선택편향’과 같은 사회적 전이 편향 현상으로 발현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신호 왜곡은 자신의 성과를 실제 이상으로 과장하는 것을 뜻하고, 선택 편향은 성과가 좋았을 때는 떠들지만 좋지 않을 때는 조용히 있는 것을 뜻합니다.
신호 왜곡의 대표적인 예는 성공한 창업가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을 자신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고 숱한 난관을 헤쳐왔는지 강조합니다. 이들의 스토리를 들으면 누구나 감동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말콤 글래드웰의 저서 ‘아웃라이어’를 읽어보면 이런 성공 스토리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들의 순수했던 노력도 있지만, 그들이 성공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남달리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었기에 가능했던 성공이라는 얘기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김정주 넥슨 창업자는 어린 시절 유복하게 자랐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의 아버지는 변호사였습니다. 80년대 컴퓨터를 만질 수 있을 정도로 부유했습니다. 빌 게이츠가 유복한 집안에서 컸던 것은 이미 유명한 사례입니다.
이들 세대가 활동하던 1980~1990년대는 PC와 인터넷이 대중화되던 초기 시절이었습니다. 초기 선점자로서 시장을 주도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김정주 창업자와 빌 게이츠를 본받아 그들을 따라한다고 한들 그들처럼 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제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사람도 운대를 타고나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건 개인이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들의 노력을 높게 평가해야합니다. 다만 그들의 성공론이 절대적으로 일반화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배울 수 있다면 그들이 가졌던 삶의 자세일뿐, 그들의 방법론까지 본받을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앞서 언급한 17억원 투자자는 회사 생활 전부터 투자 생활을 해왔습니다. 20대 후반 나이에 7000만원의 돈을 투자하는 것도 누구나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이지요. 어쩌면 정말 특수할 수 밖에 없는 사례를 놓고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단기 최고 수익률보다 평균 수익률에 집중해야
이 교수는 앞서 왜곡과 선택 편향의 예를 들면서 개인이 직접 투자를 하는 것을 설명했습니다. 개인이 직접 투자하는 경우는 수익보다 손실을 볼 확률이 더 높지만, 사람들은 이를 무시합니다. 실패한 사례는 그냥 개인의 경험담으로 머물지만, 성공한 사례는 널리 전파가 됩니다.
문제는 시장 과열 이후입니다. 가격은 한없이 천정부지로 오를 수 만은 없습니다. ‘그 가격에 사주는 사람’이 없으면 가격은 떨어지게 됩니다. 이 피해는 뒤이어 진입한 후발주자들이 고스란히 안게 됩니다. 어쩌면 일부 사람들이 퍼트리는 과장된 성공담은, 좋게 말하면 ‘후발 투자자’, 나쁘게 말하면 ‘호구 투자자’를 유입시키기 위한 ‘수’일 수 있습니다.
한 가지 얘기를 말씀을 드리면서 마무리해볼게요.
주식으로 거부가 된 사람은 3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존재했습니다. 그 때 화려하게 조명 받았던 그들의 삶이 과연 행복했을까요? 주변 투자를 오래하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답을 알 것입니다.
행복은 깊이가 아니라 빈도에 있습니다. 투자 생활에 있어 주안점은, 되도록 안전하게 변동성을 줄여가면서, 나의 평균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데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