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멱칼럼]'재활 유랑민'된 장애어린이들

이성기 기자I 2017.04.20 06:00:00
세상이 복잡해지고 사회가 고도화 할수록 ‘중도장애인’ 숫자는 급속히 늘어난다. 각종 사고와 질병 등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가 늘어나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내 등록 장애인 수는 250만명이다. 장애는 선천적 원인이 9.2%, 사고와 질환 등 후천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비율이 88.9%다. 비장애인들도 누구나 살면서 언제 장애인이 될지 모르는 잠재적 장애인인 셈이다.

이런 이유로 복지 선진국들은 장애인 재활 시설 및 운영에 대해 정부나 사회 차원에서 제도적 장치를 비롯해 각종 지원과 보조를 아끼지 않는다. 전체적인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는 지름길이란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특히 장애 어린이 대책은 각별하다. 장애 어린이들은 조기에 적극적으로 재활 치료를 할 경우 성인 보다 회복 속도가 빠르고 자립 훈련을 통해 당당한 사회 구성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어린이 재활병원이 독일에는 140여곳, 미국 40여곳, 가까운 일본은 200곳이 넘는다.

오는 28일이면 국내 최초로 건립된 장애 어린이 전담 병원인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 공식 개원한 지 꼭 1년이 된다. 지난 1년 동안 어린이 재활병원은 개원 전에 이미 예상했던 대로 30여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에는 대기 환자들을 위한 의료 인력을 추가로 고용해야 하기 때문에 적자 폭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혹자는 “병원을 지어 운영하면 적자가 불 보듯 훤한데 왜 무모한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일견 맞는 말일 수 있다. 그러나 지금도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기다리는 400여명의 장애 어린이들과 그 보호자들의 사정을 보면 그런 말은 차마 하지 못할 것이다.

국내에 등록된 장애 어린이만 10만명이고 이 중 당장 치료가 시급한 중증 장애 어린이만 4만명이 넘는다. 장애 어린이 숫자는 비등록 인원을 포함하면 30만명도 훨씬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삶은 난민, 유랑민과 같다. 오죽하면 ‘재활 난민’ ‘재활 유랑민’이란 신조어까지 생겼을까. 장애 어린이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은 수도권에도 부족하지만 지방으로 가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지난해 말 기준 재활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장애 어린이의 18%는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강원도, 심지어 해외에서 온 환자들이었다.

장애 어린이들에게는 꾸준하고 장기적인 치료가 절실하지만 치료받은 지 6개월에서 1년이 넘으면 다음 대기자를 위해 병원 문을 나서야 하는 게 현실이다. 이로 인해 다른 병원을 찾아 아픈 아이를 데리고 고달픈 유랑 생활을 감수해야만 하는 부모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들어 간다.

OECD 가입국인 한국도 이젠 장애인 재활병원 투자를 늦춰서는 안 된다. 더 이상 장애 문제를 개인이나 가족에게만 맡겨서도 안 된다. 사회와 국가가 나서서 책임을 다 해야 한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무상 교육·무상 보육·무상 급식 등은 이미 일부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장애 어린이를 위한 치료와 재활의 문제는 교육, 보육, 급식 이전의 문제다. 최소한 마음껏 치료받을 수 있는 시설만이라도 갖춰야 한다.

오늘은 ‘제37회 장애인의 날’이다. 다양한 기념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펼쳐진다. 하지만 매년 장애인의 날에만 반짝하는 것 같아 아쉽다. 장애인 문제는 장애인뿐만 아니라 잠재적 장애인인 모든 비장애인의 문제다.

장애인이 편하고 행복한 세상이면 모두가 편하고 행복한 세상이 된다. 이런 사회가 바로 선진국이고 진정한 복지 사회다.

강지원 푸르메재단 이사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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