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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이데일리 김정남 특파원] 요즘 월가의 분위기는 매우 미묘하다. 증시를 움직이는 재료들을 둘러싼 논쟁과 더불어 지수 레벨 자체를 두고 갑론을박이 부쩍 많아졌다. 지금이 고점인지, 혹은 고점에 가까워지고 있는지, 아니면 고점이라는 건 없는지 등이다.
지난주 주목 받은 월가 거물들의 언급은 ‘시장을 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케 했다. ‘월가 황제’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 ‘신(新)채권왕’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최고경영자(CEO), ‘헤지펀드 거물’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CEO는 지난 8일(현지시간) 각기 다른 자리에서 각자의 생각을 친절하게 들려줬다.
먼저 다이먼 회장. 그는 골드만삭스의 연례 컨퍼런스에 참석해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그는 “증시의 작은 부분(in small parts of the stock market)에 버블이 생길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그런 건 아니다”고 말했다. 다이먼 회장은 특히 백신을 거론하며 “내년에 경제가 회복한다면 대부분 주식 가격은 정당화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건들락 CEO의 진단은 약간 달랐다. 그는 같은날 연 자사의 토털리턴 채권펀드 투자자 대상 웹캐스트에서 ‘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 등을 두고 하락 가능성을 언급했다. 현재 증시는 사실상 빅테크들이 주도하고 있는 장이다. 그런 점에서 건들락 CEO의 발언은 버블 붕괴에 따른 증시 조정을 경고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달리오 CEO. 그는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의 ‘무엇이든 물어보세요(Ask Me Anything)’ 이벤트에 참여했다. 그는 “우리는 돈과 신용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며 “이것은 대부분의 자산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이런 현상은 돈과 신용의 가치에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달리오 CEO는 또 자산 다변화의 중요성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화폐가치 하락에 대비해) 다른 나라의 자산 혹은 해외 통화의 자산으로 다변화(to diversify well in terms of currencies and countries)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투자 대표주자들마저 전망이 조금씩 엇갈리는 상황. 지난주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각각 0.57%, 0.96%, 0.69% 떨어졌다. 증시를 둘러싼 경계감이 전보다는 조금씩 커진 기류다.
증시 지금 고점인가, 더 오를 수 있나
이번주 뉴욕 증시는 갈팡질팡하는 월가의 눈을 다소나마 뚜렷하게 해줄 이벤트가 쏟아진다. △코로나19 추가 부양책 타결 여부 △연방준비제도(Fed)의 추가 완화 여부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백신의 안착 여부 등이다. 하나같이 시장 흐름을 뒤바꿀 수 있는 묵직한 재료다.
가장 주목할 건 의회의 부양책 협상이다. 한국이 그렇듯 미국 역시 부양책 협상의 주도권은 정치가 쥐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순수한 경제적 목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그런 만큼 불확실성이 너무 크다. 지난 몇 달간 협상이 지지부진했고, 근래 곧 처리할 것 같다가 다시 난항에 빠지기를 반복하는 건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경제 상황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는 방증이다.
이번주는 긴장감이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당초 지난주에서 일주일 연기된 예산안 종료 시점이 오는 18일이다. 사실상 부양책의 단기 데드라인이다. 문제는 여야간 이견은 여전하다는 점이다. 공화당은 기업 등에 코로나19 관련 면책특권을 제공하는 책임 보호 조항을, 민주당은 지방정부에 대한 지원을 각각 주장하고 있는데, 이런 와중에 협상의 묘수가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번주 처리가 안 되면 증시는 단기 조정 압력에 처할 가능성이 있다. 부양책 타결 기대가 지금 가격에 어느 정도 반영돼 있다는 게 월가의 시각이다.
부양책만큼 중요한 게 연준의 스탠스다. 연준은 15~16일 이틀간 올해 마지막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연다. 연준은 올해 팬데믹 내내 돈 풀기의 선봉에 서 시장을 안정시켜 왔으며, 그래서 ‘실탄이 떨어진 거 아니냐’는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제롬 파월 의장은 그럴 때마다 “절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와 동시에 “의회가 (재정 지원을 통해) 움직여야 한다”는 입장 역시 명확히 했다. 현실 문제를 해결할 때 정치가 굼뜨다는 건 미국도 매한가지다. 다시 ‘연준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얘기다.
주목할 건 채권 매입 정책의 변화 여부다. 연준은 현재 제로 수준의 정책금리에 더해 매달 1200억달러 규모 국채와 주택저당증권(MBS)을 매입해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다. 월가는 매입 채권의 만기를 연장하거나, 더 나아가 매입 규모를 늘리는 방안까지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자산운용사 누빈(Nuveen)의 브라이언 닉 최고투자전략가는 “양적완화(QE) 프로그램의 만기 연장안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매입 규모를 더 늘리면 (완화책을 통해 증시를 지지하겠다는) 더 확실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그 반대의 시나리오 역시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FOMC 의사록을 보면, 일부 위원들은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당장 조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브라운 어드바이저리 톰 그래프 채권 헤드는 “연준이 무언가 새로운 통화정책을 꺼낼 준비가 돼 있는지 모르겠다”며 “재정 측면에서 더 지원하기를 바랄 것”이라고 했다.
‘게임체인저’ 백신 역시 이목이 집중된다. 세계 최고의 의료기술을 보유한 미국은 이번주부터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나선다. 그 중요성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다. 미국 정부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프로그램 ‘초고속 작전(Operation Warp Speed)’의 최고운영책임자(COO) 구스타브 퍼나 육군 대장은 백신을 실은 상자를 포장한 지난 12일을 두고 1944년 6월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 실행일인 ‘디데이’에 비유했다. 그는 “디데이는 2차 세계대전에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며 “그것은 종결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백신 접종이 차질 없이 이뤄지고, 또 별다른 부작용이 일지 않는다면 증시에는 호재다. 다이먼 회장이 얘기한 딱 그 시나리오다.
이번주 주목할 지표 ‘실업수당 청구 건수’
이번주 주목할 경제지표는 단연 주간 실업수당 청구 건수다. 17일 개장 전인 오전 8시30분 나온다. 노동부에 따르면 지지난주(지난달 29일~이번달 5일)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85만3000건으로 전주(71만6000건) 대비 무려 13만7000건 늘었다. 이 수치가 80만명대로 증가한 건 지난 10월 둘째주(84만2000건) 이후 2개월 만이다. 9월 셋째주(87만3000건) 이후 최대치이기도 하다. 미국의 실업난이 최근 팬데믹발 봉쇄 조치에 석달 전 수준으로 돌아갔다는 의미다.
월가는 지난주 수치가 그 전주보다는 낮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정치권의 부양책 협상이 시원치 않은 와중에 실업자들이 쏟아진다면 증시는 하락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미 미국의 실업난은 역사상 최악이다. 올해 팬데믹 이전 주간 실업수당 신청 최대치는 2차 오일쇼크 때인 1982년 10월 첫째주 당시 69만5000건이었다. 현재 실직자 규모가 얼마나 큰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