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투게더 주송현 아트디렉터] 매년 3월이 되면 전 세계 미술 애호가와 주요 인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테파프(TEFAF), 아모리 쇼(Armory Show), 아트 두바이(Art Dubai) 그리고 아트바젤 홍콩(Art Basel Hong Kong) 등 대규모의 아트페어가 곳곳에서 개최되기 때문이다.
이번 아트바젤 홍콩 2019(3월 27일~31일)에 참여하는 국내 갤러리 중 하나인 학고재는 민중미술 작품을 전면에 내세워 부스를 꾸민다고 한다. 이 외에도 홍콩에 위치한 서울옥션의 상설 전시장 SA+의 최근 전시(2월 15일~3월 16일)에서는 민중미술 작가인 임옥상의 작품들로 구성하여 국제 미술시장에 민중미술을 소개하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민중미술은 한국의 독특한 현실주의 사조로서 미술의 서술성을 회복하고 장르를 확장하여 한국적 현대미술의 맹아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장르이기에 전 세계적으로도 한국의 시대적이고 독창적인 미술로 인정받고 있다.
이에 본고에서는 민중미술과 관련해 국내 미술시장에서 꾸준히 주목받고 있는 작가인 오윤, 임옥상의 작품을 살펴보면서 작가의 시선을 통해 구현된 시대상과 민중미술에 내재된 시장가치를 알아보고자 한다.
◇민족문화의 움직임이 촉발하던 시기
우리 민족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정치, 사회,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혼란했던 격정의 시대로 기억된다. 일제 식민지시대와 6.25 전쟁을 직면했고, 18년간의 독재 시대를 거쳤으며, 신군부독재 세력에 의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는 아픔을 경험했다. 이에 “진정한 민주주의에 입각한 독립 국가를 순수, 청정한 애국적인 국민이 스스로 건설하는 것”이 시대적 당면 과제였다.
특히 1980년대는 사회 전반에 걸쳐 민족 고유의 언어를 되찾고 과거 역사를 회고하는 등 일제 청산을 위한 민족문화의 움직임이 촉발하는 시기였다. 이러한 사회개혁의지는 미술계 내부의 변화를 재촉하면서 고립과 정체의 불안, 현대로의 이행, 외래사조의 수용이라는 문제와 함께 사회적 기능과 역할을 고민하는 현실주의적인 민중미술을 발아시켰다.
민중미술은 1980년대에 진보적인 미술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미술변혁운동이자, 민주화운동과 맥을 같이 한 사회변혁운동이다. 미술을 통한 사회 문제의 참여와 해결방안을 모색하면서 사회비판적인 성향을 작품 속에 적극 투영시켰다. 이들은 1970년대 모더니즘 미술의 한계를 직시하며, 기성 미술계에 만연한 소통의 부재를 개혁하고자 대립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비판적 형상주의와 비판적 현실주의 계열의 미술운동이 새로운 가치화 작업의 주(主)를 이루었다.
미술인들의 자각을 통해 일어난 민중미술은 1969년 오윤, 임세택, 김지하 등이 결성한 ‘현실동인’이 단초가 되었고, 1979년 9월 광주에서 홍성담, 최열 등으로 구성된 ‘광주자유미술인협회’, 서울에서 김정헌, 오윤, 주재환 등의 작가 및 성완경, 최민 등 평론가들이 모여 발족한 ‘현실과 발언’이 중핵을 담당한다.
이 두 단체의 결성이 곧 민족 · 민중미술사의 출발이었다. 그 이후 1982년 ‘임술년’, 1983년 ‘두렁’ 등의 소집단이 잇따라 창립하고 평론가들이 힘을 모으면서 현실과 역사에 대한 반성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 민중미술이 한 시대를 대변하는 미술사조로 전화(轉化)하게 된다.
‘미술을 위한 미술’을 넘어 ‘삶의 미술’을 지향한 민중미술은 협동 창작론과 공동체 신명을 주장하여 시민판화운동, 학생운동, 노동운동의 걸개그림(1987년 이한열을 형상화해 낸 최병수의 「한열이를 살려내라」, 1987년 노동자 대투쟁에 걸린 가는패의 걸개그림 「노동자」) 등 민중과 함께 하는 미술로 발전되었다. 기법 상으로는 사실적 묘사, 콜라주(collage), 사진, 전통미술 도상의 차용 등 복제와 차용의 방법을 통해 대중 문화적 이미지 및 대량 생산 오브제를 도입하여 독창적인 작업 세계를 구축했다.
■오윤(1946~1986)
오윤은 1980년대 한국미술계를 주도한 민중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다. 그는 현실 비판에 머물지 않고 한국 고유의 미의식인 ‘신명’을 표현한 작품들로 민중들의 애환을 담아냈다. 서울대학교에서 조소를 전공했으나 미술의 언어적 소통 기능에 관심을 두고 복제가 가능한 판화 제작에 전념했다. 간결하고 투박한 칼 맛이 느껴지는 목판화는 그의 전형적인 표현방식이었다.
이는 서양미술의 형식과 방법에서 벗어나 전통미술에 담긴 고졸한 아름다움을 독자적인 노력으로 계승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담긴 흔적은 풍속화적, 불교적, 민화적, 민중연희적, 전통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무속적 전통 형식을 반영한 작품들로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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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작품은 한 농민이 강렬한 붉은 색의 배경으로 날이 시퍼런 칼을 들고 신명나게 칼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이때 칼로 베어버리려는 것은 한자로 쓰인 인간의 탐욕, 성냄, 어리석음, 증오, 간사함, 악함, 추함, 사악함, 근심 등이다.
오윤에게 민중은 소외되고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역경과 부조리에 굴하지 않는 잡초같은 강인한 생명력과 소박함을 무기로 삶을 헤쳐가는 존재이다. 이에 목판화 특유의 간결하고 칼칼한 선으로 이루어진 <칼노래>에서 독특한 민족적 정서와 색채감을 느낄 수 있다.
<칼노래>는 지난 해인 2018년 12월에 열린 한 경매에서 7500만원에 낙찰되어 자체 최고가 기록을 세웠다. 이 외에도 다양한 판화작품들이 경매에 출품된 기록이 있으며, 대체로 1000만원에서 3000만원대 구간에서 경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임옥상(1950~)
한바람 임옥상(1950~)은 ‘현실과 발언(1979~1990)’의 창립동인을 시작으로, 과감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당대 정권과 현실을 비판하며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 대표적인 민중미술 화가이다. 그는 군사정권이 끝난 후 대다수의 민중미술 작가들이 새로운 예술적 방향을 모색하는 와중에도 2016년 촛불과 함께 작품을 들고 광화문에 나갈 정도로 꾸준히 미술을 통한 현실개혁 의지를 보여왔다.
작품 내용이 ‘현실에 대한 비판’으로 일관된 것과는 다르게 작품의 형식은 다양하고 실험적이며 광범위하다. 특히 초창기 회화 작품부터 종이 부조, 조각, 행위예술, 현재의 공공미술까지 장르의 구분 없이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근현대의 혼란한 사회상을 형상화하는 점이 미술계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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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릿고개는 가난을 의미하며 참기 힘든 굶주림을 상징한다. 이에 본 작품은 1980년대 급격한 경제 성장과 함께 도시화되는 과정에서 소외된 가난했던 농촌의 모습을 시사한다.
2018년 6월의 한 경매에 출품된 임옥상의 작품 <보리밭>은 4500만 원에 경매를 시작해 치열한 경합 끝에 1억 9500만 원에 낙찰되어 해당 경매현장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이는 현재까지 경매 시장에서 거래된 임옥상의 작품 중 가장 높은 금액을 기록해 작가 레코드를 경신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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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2016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를 그린 대형 작품으로 2017년 청와대 본관에 전시되어 연일 화제가 되었다. ‘문재인 정부=촛불 정부’라는 상징성을 가장 잘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으면서, 청와대 핵심 건물인 본관 그 중에서도 왕래가 잦은 로비 한켠에 설치되어 정치적으로도 의미하는 바가 상당하다. 이에 대해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기념비적인 역사 기록화”라고 평가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라는 다소 진부한 표현이 가지는 영향력이 21세기에도 유효한 듯하다. 다양한 서사를 담은 민중미술이 시대를 거듭할수록 가치를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급변하는 시대적 소용돌이 속에서 민중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작가의 시선으로 구현한 민중의 삶이 효과적으로 전달되어 다수의 공감을 이끌고, 새로운 시각으로 상황을 바라보도록 설득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이에 민중미술은 한국 내에서 뿐 아니라 일본, 미국, 프랑스 등 세계에 소개되어 ‘Minjung Art’라는 용어가 고유명사로 정착될 만큼 한국 현대 미술의 주요한 성과로 인식되고 있다. 1980년대 운동으로서의 민중미술은 한 시대를 그려낸 미술사조로 기록되었지만, 민중미술 작가들의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의 빛나는 예술혼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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