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명사의 서가]①나재철 "새 판 짠 해외전략으로 틈새시장 찾겠다"

이정훈 기자I 2017.12.06 06:05:00

`리콴유의 눈으로 본 시계`, 근래 가장 인상적인 책
홍콩서 싱가포르로 해외거점 옮겨…리콴유 통찰서 확신
계열사와 협업 늘려 동남아시장 적극 공략
틈새시장서 수익성 강화후 차츰 자기자본 확대

나재철 대신증권 사장이 본사 5층 도서관에서 추천도서인 `리콴유의 눈으로 본 세계`를 소개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까지 받은 외환위기 때 폐쇄했지만 이후 2008년 2월 금융투자업계에서 가장 먼저 재설립하는 등 꾸준히 애착을 가졌던 홍콩법인을 결국 폐쇄하기로 했다. 대신 싱가포르법인을 새로 설립함으로써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해외영업 거점을 옮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규제 많고 사업기회 적은 홍콩 접고 싱가포르로 거점 옮겨

32년간 정들었던 여의도 시대를 접고 올 1월 서울 명동성당 앞 신사옥으로 본사를 옮긴 대신증권은 이처럼 해외영업 거점에도 대대적인 변화를 주고 있다. 나재철 대신증권 사장은 28일 명동 본사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홍콩에서는 브로커리지(주식 위탁매매 중개) 영업도 잘 되지 않았고 투자은행(IB)부문에서도 비즈니스 기회를 찾기 쉽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홍콩을 중심으로 한 범(凡)중국권보다는 개방적이고 글로벌화가 잘 돼 있는 싱가포르로 해외영업의 중심축을 옮기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했다. 그리고 지인으로부터 선물받아 우연히 읽게 된 `리콴유(李光耀)의 눈으로 본 세계`라는 책을 통해 이런 판단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나 사장 역시 지난 26년간이나 총리를 역임하면서 작은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를 세계적 수준의 금융과 물류 중심 국가로 키워낸 그의 리더십과 외교적 감각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통해 새삼 그의 통찰력에 놀랐다고 한다. 지난 2015년 타계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이 책에서 “국정운영시스템이 취약한데다 법치(法治)가 아닌 인치(人治)를 한다. 이로 인해 지도자 한 사람이 바뀌면 지도부가 다 바뀌게 되고 경제시스템이나 사업 등도 모두 불안정하게 되고 만다. 어떤 관료가 시스템을 개혁하려해도 자기 자리를 내놔야 하는만큼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그 때문에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며 중국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상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끄집어냈다. 나 사장 역시 이같은 리 전 총리의 통찰에 공감을 표시하면서 “홍콩법인을 통해 중국 사업을 늘려보려 해도 현지 증권사 설립도 허용하지 않을 뿐더러 현지 증권사와 합작해도 지분을 33%이상 보유할 수 없어 제대로 된 사업을 할 수 없었다”며 대신증권은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따른 중국의 보복이 본격화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런 문제점을 간파하며 전략 변화를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번 홍콩법인 철수과정에서도 현지 코트라 무역관과 재경관 등이 `그렇게 오랫동안 공(功)을 들여왔는데 이렇게 철수해서 되겠느냐`며 강하게 만류도 했지만 오랜 고민을 해왔기에 과감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나 사장은 귀띔했다.

◇계열사와 협업 강화해 동남아 공략…IT부터 IB까지 기회

이렇다보니 최근 중국과의 관계가 해빙무드를 보이고 있지만 나 사장은 우리 기업들이 과도한 중국 의존도를 조금씩 낮추면서 상대적으로 경제 활력이 좋고 성장성도 탁월하면서도 영어 사용이 보편화되고 경제 개방이 잘된 동남아시아에서의 사업 기회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권고했다. 그는 “중국만해도 과거 리콴유의 모델을 배워와 개혁개방을 이뤘다”며 현재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도 싱가포르 모델을 따르고 있는 만큼 이를 잘 스터디할 경우 동남아 진출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사후 개발독재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있지만 안으로 국력을 키우면서 주변국과의 교류를 확대하고 인재를 적극 등용함으로써 싱가포르를 강소국(强小國)으로 만든 리 전 총리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게 나 사장의 생각이다. 자기자본 4조원이 넘는 초대형IB들이 앞다퉈 출범하고 있는 지금 자기자본이 1조7000억원에 불과한 대신증권은 그들과의 동등하게 경쟁하긴 쉽지 않다. 따라서 대신이 가지고 있는 경쟁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계열사들과의 협업을 강화함으로써 틈새시장을 찾아가겠다는 복안이다.

[이데일리 방인권 기자] 나재철 대신증권 사장


나 사장은 “대신증권이 2년전부터 `달러자산에 투자하라`는 캠페인을 벌여왔던 만큼 우리도 스스로 해외투자를 늘리기 위해 고민을 해왔다”며 싱가포르법인 설립 이후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인도 태국 등 동남아시아에서의 투자 기회를 적극 모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증권은 현재 총자산이 50조원까지 늘어났다. 그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실력이나 경쟁력에 맞는 방식으로 해외에 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일단 대신증권이 가지는 정보기술(IT)분야에서의 강점을 살려 동남아에서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등을 제공하거나 기술을 전수하는 사업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또 “최근 국내 11개 증권사들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상용화에 성공한 블록체인 인증도 대신이 가장 먼저 서비스를 시작했다”며 “이처럼 경쟁력있는 상품을 가지고 해외로 나가 다른 비즈니스와 연결시키는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IT를 기반으로 해서 향후 현지에서의 주식 중개와 부동산 투자 등 IB영역까지 사업을 점차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명동으로 본사를 옮긴 이후 대신저축은행, 대신에프엔아이(F&I)와 한 지붕 아래서 협력이 더 강화되고 있는 만큼 국내뿐 아니라 동남아에서도 함께 투자를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내 증권사도 해외서 기회 찾을때…차츰 자기자본 확대

나 사장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이후 일부에서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지만 리콴유가 전망한대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등 다자간 무역협정이나 이를 통한 글로벌화는 추세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보면서 해외에 진출해 현지 파트너를 찾고 투자처를 발굴하는 한편 해외에서의 소싱을 통해 국내 투자자들에게 더 높은 수익의 상품을 제공하는 사업은 앞으로 국내 금융투자업계에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브라질이나 베트남 채권, 중국 펀드 등으로 손실을 입기도 했지만 이를 통해 증권사들이 값비싼 수업료를 치른 만큼 초대형IB 시대에 국내 증권사들에게도 기회가 많을 것”이라며 “대신증권도 일단 수익성을 높인 뒤 차츰 자기자본을 더 확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재철 대신증권 사장은

1960년생으로 광주 인성고, 조선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1985년 대신증권에 공채 12기로 입사한 뒤 30년 이상 근속중인 ‘대신맨’이다. 양재동 지점장에 이어 강남 지점장을 맡을 당시엔 외환위기 하에서도 지점을 전국 1등 점포로 키워냈다. 이후 강서와 강남지역본부장을 거친 뒤 리테일사업본부장, 홀세일사업본부장, 기업금융사업단장 등을 두루 맡았고 2012년부터 5년째 대신증권 사장을 맡고 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