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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사실 내년이 더 걱정이다.” 올해 기업협찬 만료를 앞두고 내년도 후원을 따내야 하는 클래식 공연기획사 실무 관계자들의 말이다.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한 달 만에 공연계가 후폭풍을 맞고 있다. 연중 최대 성수기라 할 수 있는 연말을 앞두고도 기업후원이 신통치 않아서다. 특히 고가의 클래식 분야와 서울이 아닌 지방, 대형 뮤지컬 시장이 직격탄을 맞으리란 우려가 현실화하는 건 아닌지 초긴장 상태다.
A공연 기획사의 경우 연말 공연에 후원을 약속한 기업에서 계약 확정을 미루다 결국 협찬 계획을 철회하기로 했다. 기업과 기획사 간 협찬 금액을 대폭 줄여 후원계약을 성사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 관계자는 “후원금이 줄면서 기업에 제공하던 공연 초대권도 반토막 났다”며 “동시에 티켓 판매도 기존보다 약 15~20% 줄어들어 예년 공연에 비해 빈 좌석이 많다”고 말했다.
민간 공연기획사 및 국공립단체들은 내년을 더 걱정했다. B국립단체 측에 따르면 올해는 이미 계약된 협찬들로 큰 탈 없이 운영해 왔지만 후원 계약을 다시 따내야 하는 오는 11월부터 내년 1~2월을 고난주기라고 봤다.
이 관계자는 “기존 협찬사와 후원계약 시 약정서 항목들을 더 구체적으로 기입할 것을 원하고 있다”며 “보통 초대권 수, 홍보책자, 현수막, 홍보문구 등 서비스 구성을 게재했다면 협찬금의 부가적 가치 만족도까지 환산해야 할 정도로 까다로워져 난감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약정서도 양쪽 변호사가 확인 후 수차례 수정단계를 거치는 식”이라며 “협찬이 이렇게라도 성사되면 다행이지만 신경 쓸 일이 많아져 아예 협찬을 안하려는 기업들이 생겨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카드·은행사를 중심으로 한 대기업은 그동안 클래식·뮤지컬 공연 초대권을 고객 마케팅 및 거래처 접대에 활용해왔다. 공연제작사 및 기획사는 협찬 금액의 20∼30%를 초대권 형태로 줬고 대기업이나 금융사는 이렇게 생긴 표를 VIP 고객에게 선물용으로 사용하는 것이 업계 관행이었다. 현재 전체 공연 매출에서 기업후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많게는 5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관계자 특별 할인’을 적용해 적게는 30% 많게는 70~80% 값싸게 선보이던 유료티켓 관행 또한 법 시행 이후 제동이 걸리면서 공연장마다 빈 좌석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는 게 극장 측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다음달 예정된 한 민간 오케스트라의 서울 공연은 오직 빈 좌석을 메우기 위해 2500석을 R석 2만5000원, S석 2만원, A석 1만5000원, B석 1만원으로 낮췄다.
C뮤지컬 제작사는 지방투어를 포기했다. A사는 “관람 수요가 수도권 대비 낮은 지방 투어의 경우 기업 협찬 없이는 사실상 공연을 유지할 수 없다”며 “공연장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기자 대신 리뷰 블로거가 자리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공연계는 김영란법에 대해 취지는 동의하나 시장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은 법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다만 현재 티켓 판매 저조 현상이 김영란법 시행 때문인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관계자는 “최순실 사태로 공연장을 찾는 일반인 발길이 확 줄어든 것 같다. 또 이번 달 워낙 좋은 공연이 많다보니 관객이 분산된 효과도 있었다”며 “공짜티켓을 지원금 액수만큼 받는 기업들의 후원문화 및 공짜초대권을 받았던 정치인이나 고위 관료들의 관람태도 근절에는 향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