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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탐정]바다에 던지고, 특수조끼에 숨기고…진화하는 밀수

이성기 기자I 2016.09.01 06:30:00

금괴 방수처리, 단속 전 바다로..고속보트 타고 와 수거
중국산 건고추, 냉동고추와 섞어 엑스레이 검사도 통과
뒷돈 받고 밀수조직 범행 눈감은 세관 직원 적발도

인천본부세관 직원들이 시가 10억원이 넘는 파텍필립 시계 등 고가의 압수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인천본부세관은 지난 2월부터 6월까지 고급 명품 시계 등 사치품 밀수조직 특별단속을 벌여 고급 시계 588점 및 명품 가방 48점 등 시가 170억 상당을 밀수입한 4개 기업형 밀수 조직을 적발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성기 기자] 지난 7월 초 인천본부세관. 세무당국이 기업형 밀수 조직 4곳으로부터 압수한 명품 시계들이 빼곡했다. 압수물품 중에는 스위스 장인이 수작업으로 만들어 시가 10억원을 웃도는 파텍필립 시계, 1억 5000만원 상당의 리차드밀 한정판 시계 등 초고가 시계도 있었다.

명품 가방들까지 포함하면 밀수품의 값어치는 무려 170억원이었다. 이들 조직은 50만~100만원씩의 수고비를 주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을 운반책으로 고용했다. 외국인 운반책들은 여행객으로 위장해 시계는 손목에 차고 다른 밀수품은 속옷에 숨겨 국내로 들여왔다.

시계 상자와 제품 보증서는 국제 우편을 이용했다. 세관 측은 “고급 명품 시계의 경우 세율이 42~48%여서 밀수품을 강남 명품 매장과 인터넷에서 되팔며 탈세액 만큼의 차익을 챙겼다”고 설명했다.

같은 날 인천중부경찰서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는 보따리상으로부터 건고추, 녹두, 참기름 등 중국산 농산물이나 면세 담배를 사들여 국내에 유통한 밀수업자 20여명을 무더기로 입건했다.

◇농산물, 중고차, 지하경제 주범 금괴까지…기상천외한 밀수의 세계

밀수품의 ‘대명사’는 역시 금괴다. 국제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실질금리 마이너스인 시대에 안전자산인 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금괴 밀수가 끊이지 않는다.

금괴는 부피가 작아 손쉽게 운반할 수 있고 밀수 성공시 탈세에 따른 높은 수익이 보장된다. 최근 금 밀수가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하자 일본 세관이 홍콩 등 입국자 집중 단속에 들어가는 등 우리뿐 아니라 많은 나라가 금괴 밀수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금괴 밀수가 성행하자 한·중·일 3국은 최근 일본 도쿄에서 ‘조사 단속 실무자회의’를 열고 불법·부정무역 단속동향을 파악하는 한편 마약·금괴 등 품목 밀수 단속 협력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밀수 경로도 다양화 하는 추세다.

관세청 관계자는 “종전에는 대만·홍콩에서 인천국제·김포·김해공항 및 인천항으로 분산 반입돼지만 최근 심양 등 중국에서 인천국제공항으로 주로 반입되고 있다”며 “목걸이·팔찌 등 장식용품으로 착용하거나 특수 제작된 조끼에 넣어 입고 오는 등 다양하고 지능적인 수법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 3월에는 평택항과 중국 옌타이(煙臺)항을 오가는 카페리선에서 금괴 등이 든 밀수품 박스를 바다에 던진 뒤 수거하는 방법으로 밀수한 조직이 적발되기도 했다.

이들은 밀수품이 바닷물에 가라앉지 않도록 테이프와 포장용 에어캡(일명 뽁뽁이) 등으로 진공· 방수 포장했다. 카페리선 사무장을 매수,밀수품 박스를 바다로 던지면 고속보트나 낚싯배를 타고 나가 건져 올렸다. 이들은 이같은 수법으로 10여차례에 걸쳐 50억원의 수익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명절 특수를 노린 농산물 밀수도 빈번하게 이뤄진다. 국내 생산농가 보호차원에서 고세율(270%)을 적용해 수입을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중국산 건고추 등이 주 대상이다.

건고추를 세율이 낮은 냉동고추와 섞어 마치 냉동고추를 수입하는 것처럼 세관에 신고하는 신종 형태의 밀수가 적발되기도 했다. 냉동고추 포대 속에 건고추를 30%정도 비율로 섞어 엑스레이(X-ray) 검사를 피하고 육안검사로도 적발하기 어렵게 했다.

컨테이너 안쪽에 건고추를 은닉하고 입구 쪽에 냉동고추를 싣는 ‘커튼치기’, 컨테이너 바닥이나 가운데에 은닉하는 ‘알박기’ 등 고전적인 수법에서 진화한 셈이다.

밀수에는 국내 반입만 있는 게 아니다. 관세청은 경찰청과 합동으로 특별 기획단속을 벌여 지난 2월 시가 127억원 상당의 중고차를 밀수출한 3개 조직을 검거했다. 이들 조직은 범행을 주도하는 총책과 불법차량을 시세의 40~50%에 매입·수집하는 모집책, 수출 서류를 변조해 통관을 책임지는 통관책 등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

도난·압류·근저당설정 등 말소등록이 어려워 정상 수출이 불가능한 차량을 미리 확보한 뒤 세관에는 폐차 직전의 말소등록된 차량을 수출하는 것처럼 속여 리비아·요르단 등 중동 지역에 밀수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간 16만대 이상 수출신고되는 중고차가 컨테이너로 수출될 경우 세관이 전량 검사하지 못한다는 점을 악용했다.

◇가격 인상 에 담배 밀수 폭증…세관직원이 범행 도와

담배 가격 인상 후 시세차익을 노리는 담배 밀수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에만 담배 밀수 적발 건수가 287건, 금액은 3억 5500만원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건수로는 833%, 금액으로는 1935% 늘어난 규모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담배 밀수 단속 건수는 236건, 금액은 46억원에 이른다. 밀수출까지 포함하면 67억원 규모다.

지난해 11월 홍콩 등으로 수출된 7억원 상당의 국산 담배를 역으로 밀수입해 국내에 유통한 일당이 붙잡혔고 지난달 초에도 수출입 화물 컨테이너를 이용해 64억원 상당의 담배 141만갑을 밀수출입한 3개 조직이 적발됐다. 정상 수출입 화물처럼 위장해 반입한 뒤 보세운송 도중 바꿔치기하거나 정상 화물 중간에 숨기는 ‘심지박기’ 등의 수법을 동원했다.

이러다 보니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세관원 최익현(최민식 분)처럼 밀수에 연루된 관세청 직원이 적발되는 경우도 있다.

부산지검 외사부(부장 김도형)는 최근 담배 밀수를 도와주고 뒷돈을 받아 챙긴 혐의(사후수뢰)로 부산세관 7급 직원 A(48)씨를 구속했다. A씨는 수출입용 컨테이너를 이용해 담배 수십억원 어치를 부산항으로 몰래 들여온 일당을 도와주고 1300만원을 받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부산세관에서 담배 밀수 사건을 송치받아 수사하다 밀수 과정에 통관을 담당한 A씨가 묵인 또는 방조했다는 정황을 포착, 부산본부세관 신항통관국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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