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3일 부산의 김현근(19·한국과학영재학교)군이 꿈에도 그리던 미국 명문 프린스턴 대학의 수시 특차 합격을 통보받던 날 어머니 신인숙(46)씨는 아들의 휴대전화에 그렇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다. 하루아침에 신용불량자가 된 아버지와,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식당 아줌마 일까지 했던 어머니에게, 아들은 인생의 유일한 희망, 아니 인생 그 자체였다.
올 초 김현근군은 전국의 두뇌들이 다 모였다는 한국과학영재학교 첫 졸업생 137명 가운데 영광의 수석을 차지했다. 4.3 만점에 4.23점이었다. 김군은 “민족사관고 입시에 떨어져 좌절을 맛본 이후 가장 기뻤던 날”이라고 했다.
어학 연수 한 번 받아보지 못한 그는 3년 전 토플 성적이 낮아 민족사관고 고배를 마셨었다. 그때 마침 부산에 한국과학영재학교가 문을 열었다. 기숙사를 포함, 모든 게 공짜에 가까웠다. 현근군은 144명 모집에 3000여명이 지원한 치열한 경쟁을 뚫었다.
하지만 어려움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입학 후 첫 시험인 중간고사에서 거의 꼴찌를 했다. “앞자리 누구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여러 차례 입상한 ‘유명 인사’였고, 함께 탁구를 즐기는 누구는 전국 경시대회를 휩쓸다시피 한 실력파였지요.” 하지만 김현근군은 부산광역시 수학경시대회 동상 수상이 경력의 전부였다.
게다가 IMF 때 증권회사 부지점장에서 잘린 아버지(46)는 빚 2억원을 진 신용불량자였다. 어릴 적 림프절염으로 오른팔의 기능을 잃어 망치질할 힘도 없는 아버지는 막노동판에도 나갈 수 없었다. 가족은 32평 아파트를 처분한 뒤 외할머니 집에 얹혀 살았다. 그때 이후 김군은 새 옷을 산 기억이 없고, 잠잘 때 외엔 오로지 교복 차림이었다.
“집안이 좋거나 IQ가 뛰어난 아이들 틈에서 제가 주눅 들지 않으려면 공부를 잘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소 4시간만 자고, 시험을 앞두곤 2시간만 자며 책을 펴 들었어요.”
툭하면 코피가 터지고 남몰래 눈물 쏟은 적도 많지만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생계를 떠맡은 어머니는 마켓 점원, 학습지 교사, 회사 경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아들이 다니던 부산 진구 초읍중학교 식당 아줌마로 일할 땐 눈치껏 자식 식판에 수북이 반찬을 얹었다. 조금도 창피한 기색을 보이지 않은 속 깊은 아들은 3년 전교 1등으로 보답했다. 어린 중학생은 하지정맥류로 고통받는 어머니의 장딴지를 밤마다 주물렀고, 몰래 신문배달도 했다. 식사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공부하다 영양실조로 쓰러지기도 했다.
김현근군은 이 모든 사연들을 신간 ‘가난하다고 꿈조차 가난할 수는 없다’(사회평론)에 담아 출간했다.
현근군의 꿈은 기초의학 연구다. ‘삼성 해외 장학생’으로 선발돼 4년 동안 2억원을 지급받는다. 어머니 신씨는 “어렸을 때부터 현근이는 지고 못 견디는 성격이었다. 오기가 있었다. 전 세계의 인재들과 훌륭히 경쟁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현근군은 이렇게 다짐했다. “제 학비를 대느라 4살 터울인 여동생이 학원을 다니지 못했어요. 이제 오빠 노릇 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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