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에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묻는 고객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미국에서 번진 통화정책 조기 정상화 이슈가 국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023년말까지 연방기금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밝혔음에도 시장이 이를 믿지 않고 연준이 예상보다 이른 테이퍼링(Tapering·양적완화 축소)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하듯이 우리나라도 경기회복, 물가 상승 속도가 빨라지면서 금리 인상 시점이 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달 들어 장기금리보다 단기금리가 더 큰 폭으로 반등하는 이유다. 이와 관련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아직 정책 기조를 서둘러 조정할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질서 있는 정상화에 대해 미리 준비할 필요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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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고채 3년물과 10년물 금리는 22일 각각 1.13%, 2.057%로 이달 들어 각각 0.11%포인트, 0.097%포인트 상승했다. 3년물 금리가 10년물 금리보다 더 많이 올랐다. 지난 15일엔 3년물 국채금리가 1.238%까지 튀었다.
채권 금리가 오르는 것은 예상보다 빠른 경기회복세, 물가 상승률, 재정정책 확대에 따른 국채 발행 물량 확대 등 복합적인 요인이 반영된 결과다. 다만 장기물보다 단기물이 더 큰 폭으로 오르는 것은 통화정책 정상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김상훈 KB증권 연구원은 “미국 테이퍼링 속도가 빨라질 것이란 생각이 국내 금리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한국도 금리 인상 시기가 당겨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연준은 포워드 가이던스로 금리 점도표상 2023년말까지 금리를 인상하지 않겠다고 밝혔으나 시장이 이를 믿지 못하면서 단기 금리가 뛰었고 우리나라의 경우 연준처럼 포워드 가이던스는 없지만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시장에 반영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리나라가 연준보다 더 먼저 금리를 올릴 것이란 예상은 그 전부터 있었지만 그 시기가 더 앞당겨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IB들이 내년 1분기, 올해 금리 인상 전망을 하고 있다. 연내 금리 인상을 질문하는 고객들도 늘어났다”며 “내수 경기가 빨리 돌진 않아서 올해 힘들다고 보긴 하나 이런 기대들이 단기 금리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밝혔다.
윤 연구원은 “2년내 단기 선도금리(FRA)의 경우 지난 주 100bp까지 벌어졌다. 2년 내 기준금리를 4차례 정도 인상하겠다는 기대가 반영됐다”며 “그나마 한국은행이 통안채 발행 계획을 줄이는 등의 조치로 80bp 수준으로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연내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도 70~80% 반영됐다가 소폭 줄어들었다는 게 윤 연구원의 설명이다. 이는 2년 뒤 3개월물 선도 금리와 현재 91일물 CD금리를 비교 분석한 값이다.
김상훈 연구원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주요국 정책금리들이 실효하한에 다다랐기 때문에 앞으로의 방향은 금리를 올리는 것”이라면서도 “금리 상승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고 말했다.
기준금리가 연 0.50%인 상황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가 1.2%까지 올라간 것은 과거로 따지면 금리 인상 직전에나 볼 수 있었던 현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김 연구원은 국고채 3년물과 기준금리간 스프레드 확대에 대해선 “코로나19 이후 연간 100조원씩 발행되던 국채가 연 170조~180조원 발행돼 사상 유례 없는 수준으로 발행된 만큼 스프레드 확대에 대한 해석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기 금리 인상의 전제 조건이 되는 경기회복세가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한은은 지난 2월말 수정 경제전망에서 경제성장률을 3.0%로 유지했으나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각각 3.1%, 3.3%로 0.2%포인트, 0.5%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연준은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을 6.5%로 높여잡는 등 빠른 경기회복을 예상했다. 우리나라 최대 수출국 미국, 중국이 모두 올해 6%대 성장률을 달성할 경우 우리나라 성장률도 예상보다 더 커질 수 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23일 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국내 실물경제는 수출과 투자가 뚜렷한 회복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며 “넉 달 연속 개선됐던 수출은 3월에도 높은 증가세를 기록하고 있고 설비투자도 작년말부터 석 달 연속 개선됐다. 내수와 고용이 여전히 어렵지만 부진폭은 점차 완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경기가 회복되고 있지만 금리를 건드릴 만큼의 회복세가 기대되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금통위원간에도 의견 차가 생기기 시작했다. 2월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위원은 “국내총생산(GDP) 갭(잠재성장률과 실질성장률간 차이)이 점차 축소될 것”이라고 밝힌 반면 또 다른 위원은 “마이너스 GDP갭이 해소될 때까지 상당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이후 저인플레이션을 만드는 구조적 요인이 바뀌었다는 진단이 나오는가 하면 여전히 물가상승 압력이 낮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24일 배포한 주요 현안에 대한 서면 질의응답에서 “아직 실물경제 활동이 잠재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우리 경제가 코로나19 충격에서 벗어나 정상 궤도로 복귀했다고 보기 어려워 현재로선 정책 기조를 서둘러 조정할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향후 성장과 물가 여건이 개선될 경우 그간 시행해온 이례적인 완화조치들을 어떻게 질서 있게 정상화해 나갈지 미리 준비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라고 설명했다.
다만 단기 금리가 빠른 속도로 급등하는 것은 부담이다. 김 차관은 “최근 단기물 시장이 불안정해지면서 국내 금융기관의 투자 심리가 크게 위축되고 10년물, 30년물 금리가 한 때 역전되는 등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며 “정부가 국고채 수급 여건과 수익률 곡선 움직임 등에 따라 발행량을 탄력 조정하는 한편 변동성 확대시 적기 시장 안정 조치를 시행하는 등 국채 시장 안정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