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년 간 어둠속 숨겨왔던 제주의 용암 동굴, 그 자태 드러낸다

김은비 기자I 2020.07.27 06:00:00

‘2020 세계유산축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 개최
만장굴·김녕굴 비공개 구간 특별 공개
세계자연유산의 빼어난 경관 소개

[제주=이데일리 김은비 기자] 칠흑 같은 어둠 속, 옅은 손전등 빛에 자태를 드러낸 제주도 ‘만장굴’의 모습은 경이로웠다. 1만 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만장굴은 생성 당시 용암의 흐름을 선명히 담고 있었다. 독특한 동굴의 모습은 자연이 선사하는 최고의 예술 작품이었다.

오는 9월 4일 ‘2020 세계유산축전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을 앞두고 제주도 만장굴의 비공개 구간이 지난 24~25일 언론에 공개됐다. 입구에 들어서자 동굴 속에서 밀려오는 어둡고 서늘한 공기가 폐를 찌르듯 들어왔다. 마치 밧줄을 비틀어 꼰 것만 같은 울퉁불퉁한 바닥과 가로로 이어진 줄무늬가 켜켜이 쌓여 있는 벽의 모습은 동굴 안을 흐르던 뜨거운 용암의 자취를 생생히 떠올리게 했다.

동굴 천장을 올려다보니 상어 이빨처럼 뾰족하게 늘어진 용암 종유가 빼곡히 들어서 있고, 벽면에는 선반처럼 굳어진 용암선반이 보였다. 동굴 깊숙이 더 들어가자 ‘용암교’와 V자 모양의 계곡 같은 신비로운 지형도 감탄을 자아냈다. 기진석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 학예사는 “만장굴은 동굴의 밧줄 구조 등 용암 동굴의 형성 당시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학술적으로 아주 중요한 동굴”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과 제주특별자치도가 오는 9월 4일부터 9월 20일까지 단 17일 동안 개최하는 ‘2020 세계유산축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에서는 2007년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제주도의 빼어난 경관과 독특한 지질학적 환경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이번 축전에서는 자연유산 보존을 위해 비공개했던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일부를 공개하는 만큼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용암동굴 탄생의 신비를 오롯이 경험할 수 있다고 제주특별자치도 측은 전했다.

미로처럼 생긴 벵뒤굴 모습(사진=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축전 본부)


◇용암의 흐름을 따라 걷는 ‘불의 숨길’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1만 년 전 제주 거문오름에서 분출된 용암이 월정리 해변까지 20km 정도를 뻗어나며 그 흔적으로 생성된 10개의 동굴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이번 축전에서는 ‘당처물 동굴’과 ‘용천동굴’을 제외한 총 8개 동굴의 입구 및 내부를 공개한다.

용암이 흐른 길이라는 뜻에서 ‘불의 숨길’이란 이름을 붙인 이 길이 이번 축전에서는 총 4개 구간으로 나눈 트래킹 코스로 꾸며진다. 1구간은 거문오름에서 ‘웃산 전굴’ 입구까지, 2-1구간은 ‘웃산 전굴’에서 한울랜드까지, 2-2구간은 한울랜드에서 만장굴까지, 마지막 3구간은 만장굴에서 월정리 구간까지다. 오름에서 출발해 바다까지 이어진 코스는 각자만의 색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거문오름에서 시작해 ‘웃산전굴’ 입구까지 이어진 1구간에서는 사계절 푸른 이끼로 무성한 협곡을 따라서 2.5km가량을 걷는다. 그간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지역이었던 만큼 날 것 그대로의 길은 미지의 숲속을 탐험하는 기분을 들게 한다. 길 곳곳에는 바닷가 그늘진 곳에서만 자라는 굵은 녹색잎의 ‘식나무’ 등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식생분포와 각종 버섯을 경험할 수 있어 마음의 평화를 절로 느낄 수 있다.

2구간에서는 본격적으로 다양한 동굴 위를 걸으면서 용암의 발자취를 감상할 수 있다. 마지막 3구간에서는 숲과 바다의 모습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어 즐거움을 배로 증가시킨다. 또 이 구간은 제주도 사람들이 직접 살고 있는 공간이기도 해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도 볼거리로 꼽힌다.

김태욱 세계유산축전 총감독은 “모든 코스가 느낄 수 있는 매력이 다른 만큼 최소 2박 3일의 일정으로 와서 모든 코스를 다 경험해 보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다만 각 코스는 자연유산 보존과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모두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고 입장 인원수도 제한된다. ‘만장굴’, ‘김녕굴’ 등 비공개 동굴 탐험 코스는 사전 신청을 통해 선정된 탐험대만 참가가 가능하다.

만장굴 비공개 구역 모습(사진=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축전 본부)


◇세계유산 가치 향유하는 성대한 계·폐막식 준비

세계자연유산의 가치를 향유하는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특히 자연과 함께 성대하게 펼쳐질 축전 개막 기념식과 폐막 기념식은 축전의 매력을 극대화 할 예정이다. 축전 개막 기념식은 9월 4일 거대한 성산일출봉과 맞닿아 있는 바다 공간을 활용해 대형 야간 실경공연으로 펼쳐진다. 공연에서는 제주의 자연에 깃든 신화·사람의 이야기와 세계유산축전의 상징성을 접목한 종합 퍼포먼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최대한 인위적 무대장치를 자제하고 자연과 함께 어우러진 공연을 통해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축전 마지막 날인 9월 19일에는 불의 길 최종 종점인 월정리 해변에서 축전의 성공적인 폐막과 함께 대미를 장식할 폐막식이 열린다. 자연과 인간의 순환의 의미를 표현해 설치작가와 시민들이 함께 만든 대형 상징물을 불태우는 ‘버닝 페스티벌’이 열린다. 참가자들은 폐막식과 자연의 공간에서 함께 어울리며 자연유산의 가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의 작가, 미술감독, 기술감독도 함께 참여한다.

이밖에도 세계자연유산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함께 누릴 수 있는 가치를 만들기 위한 ‘세계자연유산 기억의 날’, 트래킹 코스인 ‘불의 숨길’에서는 자연의 느낌과 감격들을 20여명의 작가들이 예술작품으로 구현한 아트프로젝트를 선보인다. 만장굴에서는 유형유산인 ‘국내 유일의 자연유산’과 ‘무형유산을 이어가는 인간’이 함께 만드는 특별한 공연 등 세계자연유산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세계유산마을 상생 프로그램인 ‘세계자연유산 불의 숨터’는 자연유산과 함께 살고있는 마을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쉼터 및 문화 연계 공간으로 조성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의 문화나 문화재 전문가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은 이 곳에 방문해 자연유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통해 세계자연유산마을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지역 브랜드 형성에 밑거름이 되도록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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