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정수영 기자] 주식초보 A씨는 몇달 전 장내시장에서 코스닥 상장 주식을 2000만원 어치 샀다. 하지만 A씨는 3개월 후 보유한 주식이 10% 넘게 떨어지자 이 종목을 팔고 나왔다. 하지만 A씨는 통장 잔고를 보고 당황했다. 매도잔액은 1800만원이지만 매입시 여기에 추가로 위탁수수료와 증권거래세(0.3%)가 붙어 6만원 정도 비용이 발생한 것이다. A씨는 “은행금리가 연 1%대로 월 이율로 따지면 0.1%도 채 안되는데 주식은 한달 보유했다고 0.3%의 세금을 내야 하느냐”며 “그것도 손실을 본 마당에 이런 세금을 부과하는 건 이해가 안된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증시가 여전히 박스피(코스피+박스권)를 벗어나지 못한 채 상단을 맴돌고 있다. 6년간 박스피에 머문 주된 이유인 상장사의 수익성과 성장성은 다행히 개선되고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세제 정책은 여전히 시장의 목소리를 담지 못하며 증시를 옥죄고 있다. 시장에선 ‘기울어진 운동장’ 부터 바로 세워야 금융뿐 아니라 실물경기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20년간 제자리 거래세율…“소득 없는데, 세금 내라고?”
증권거래세는 보유한 주식을 팔 때 부과하는 세금으로, 세율은 0.3%(코스피 종목은 농어촌특별세 0.15% 포함)다. 장내주식뿐 아니라 장외시장 거래시에도 증권거래세가 붙는다. 금융투자협회가 운영하는 K-OTC에서 거래할 때는 0.3%, 이외 장외시장에서 거래시엔 0.5%의 수수료율이 적용된다. 주식시장 참여시 발생하는 일종의 비용으로 증시 활성화에 걸림돌이란 지적이 많다.
시장 참여자들이 제기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주식 거래로 수익이 생길 경우에만 내는 게 아니라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손실을 입어도 내야 해 ‘소득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 6년간 코스피지수가 박스권을 뚫지 못하고 정체되자 시장을 떠나는 투자자가 급증했다. 오르지도 않는 주식시장에서 세금만 내는 꼴이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세가 1996년 이후 20년 이상 요율 변동없이 유지되는 사이 주식거래대금은 큰 폭으로 줄었다. 2011년 2260조원에 이르던 연간 거래대금은 지난해 1948조원으로 줄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는 투자자 참여를 유도하려고 수수료를 아예 안받는 등 노력을 기울이는데 정부는 세수감소를 우려해 꿈적도 안하고 있다”고 답답해했다.
높은 수수료율도 불만이다.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에 비해 요율이 높기 때문이다. 중국은 요율이 0.1%, 싱가포르 0.2%다. 대만도 0.3%에서 올해 0.15%로 내렸고, 일본은 아예 폐지했다. 길재욱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중국도 2008년 거래세 인하 후 거래가 늘면서 세수입이 오히려 확대됐다”며 “증권거래세 탄력세율 개정을 통해 세율을 인하할 경우 자본시장 활성화에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장외시장의 양도세 요율도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시장 참여자들은 불만을 제기한다. 비상장 주식을 실시간 거래할 수 있는 장외 주식시장인 ‘K-OTC’를 통한 거래시 양도세(대기업 20%, 중소기업 10%)를 내야 한다. K-OTC가 아닌 장외시장도 마찬가지지만 징수할 방법이 없다. 양도세는 본인이 신고납부해야 하는데 K-OTC를 제외한 사적 거래시에는 국세청이 거래 여부를 알기 어렵다. 투자자들이 자진신고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는 셈이다.
세금을 회피하려는 투자자들은 결국 불법 거래시장으로 몰린다. 지난해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사건으로 드러난 불법 장외거래 시장의 개선 방안으로 양도세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 연구위원은 “장내 시장과 장외시장에 세금 차이를 두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며 “모험자본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세수를 완화해 경쟁력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달부터 부과하는 파생상품 양도세도 개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14년 공표된 개정 소득세법에 따라 정부는 작년 거래한 파생상품부터 양도세를 부과한다. 1년간 거래내용을 합산한 뒤 다음해 5월 확정신고를 하고 납부해야 한다. 오는 5월 첫 양도세 납부를 앞두고 문제점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특히 해외시장에 상장한 파생상품과 국내에 상장한 상품은 각각 연계거래처리가 안돼 따로 양도세를 정산해야 해 투자자 불만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