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는 가장 원초적이지만 가장 정확한 기사이기도 합니다. 단, 그 전제조건은 사전 준비입니다. 무턱대고 지역에 가서 “누가 당선될 것 같아요?” 류의 질문에 대한 답변만 받아오면 ‘반쪽짜리’가 되기 쉽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지역의 역대 선거통계 외에 일반통계도 함께 미리 살펴보곤 하지요. 특히 눈여겨 보는 게 인구와 지역총생산(GRDP) 등입니다. 보수 혹은 진보 같은 유권자의 성향 때문만은 아닙니다. 인구 추이를 보면 그 지역의 활력도를 얼추 가늠해볼 수 있어서입니다.
◇젊은층 급감한다…활력 떨어지는 대구
총선이 6개월이 채 남지 않은 시점, 저는 대구 르포에 나섰습니다. 지난달 21일 이른 오전 동대구역. 고백컨대, 대구 초행길이었습니다. 역에서 나오자마자 들리는 억양 강한 경북 사투리에 흠칫 놀랐습니다. ‘여기가 대구구나.’
저는 학창시절 대구를 전국 주요 도시 중 하나로 배웠습니다. 서울·부산에 이은 ‘제3의 도시’ 인상이 남아있었습니다. 그런데 내려가기 전, 눈에 띄는 통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40세를 기점으로 그 이하는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2000년 당시 대구의 0~4세 인구는 16만5800명이었습니다. 전체의 6.6% 비중이었지요. 10여년 뒤인 2014년에는 10만2400명(4.1%) 수준으로 줄어듭니다. 취업 적령기인 25~29세를 볼까요. 2000년 23만9500명이던 이 젊은층은 2014년 14만5100명으로 감소합니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9.5%에서 5.8%로 줄었습니다. 인구 수가 비슷한 인천(9.1%→6.5%)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울산(8.8%→6.2%) 등 다른 광역시들과 비교해도 그 감소폭이 더 가파릅니다. 40세 이상은 그 이하와 반대 양상이었습니다. 머릿 속에 ‘늙고있는 도시’ 분위기가 느껴졌지요.
답은 곧 풀리더군요. 동대구역 근처에서 만난 한 60대 택시기사님. 그는 몇몇 정치인들 얘기를 하더니 결국 넋두리만 늘어놨습니다. “옛날에는 안 이랬제. 우리 아들래미도 서울로 일하러 가뿌고 경제도 어렵고 하니 뭔가 도시에 활기가 엄따.”
대구 수성구 인근에서 만난 한 식당 어르신도 기억납니다. 서울에서 취재차 왔다고 하니 손을 잡아끌고 먹을거리를 내주셨지요. 어르신의 목소리는 한탄 혹은 분노에 가까웠습니다. “박정희가 경제 살린 거는 인정해야제. 근데 지금 보면 동네에 가스도 안 드오는 집도 있다. 이건 아니잖아. 섬유공장이 잘 돌아갈 때가 좋았제.” 한 지역정가 인사는 “경북대 영남대를 나와 대구에서 일하려면 공무원과 은행원 밖에 없다”면서 “다 서울 구미 울산 창원 거제 등으로 간다”고 말합니다.
제가 처음 대구 르포를 계획한 건 다분히 정치적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부끄러웠습니다. 어느새 정치 수요자(유권자)가 아니라 공급자(정치인) 중심의 사고를 하는 걸까요. 대구 시민들은 ‘유승민이 배신을 하고’ ‘김부겸이 인기가 많은’ 것보다 당장 먹고사는 게 문제였습니다. ‘여권의 심장’ 대구의 정치적 변화 조짐도 경제적 이유가 깔려있었던 겁니다. 르포 취재의 묘미를 느낀 순간이기도 했지요.
◇메시지 모호한 ‘대구 물갈이론’ 소문들
그래서 지금 더 안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정치권에는 이른바 ‘대구 물갈이론’이 한창인데요. 박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거 내려와 대구를 접수한다는 소문입니다.
물론 각자 출마해야 할 명분은 있겠지요. 하나같이 훌륭한 분들인 것도 틀림없습니다. 그래도 친박계니 유승민계니 계파를 들이밀며 프레임을 짜는 건 너무 공급자 중심적이지 않나 싶습니다. 과연 이들이 대구 경제를 일으킬 묘안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TK 정가 한 인사의 말입니다. “과거에는 개혁 혁신 같은 깃발을 걸었는데 지금은 배신이란 말이 나오는 게 이상합니다.”
어느 조직이든 인사에는 메시지가 있지요. 몇 년 전 취재했던 대기업집단들은 연말 인사 때마다 확실한 사업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어찌보면 당연하지요. 인사는 만사이니까요. 이를테면 삼성은 지난 2012년 연말 인사에서 취약했던 기업간거래(B2B) 사업을 확 키우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기존에 잘했던 소비자거래(B2C)와 장차 균형을 이루려는 포석이었지요.
여권의 대구 출마자라면 ‘선출’된 게 아니라 ‘임명’된 걸로 봐야 합니다. 누가 인사권을 쥘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수요자들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메시지는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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