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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아침, 부동층의 마음

김병재 기자I 2012.12.19 10:48:28
엔터테인먼트 정치학의 예언대로 결국 긴장감을 끝까지 끌고 가는 갈등 극대화의 선거가 되었다. 그리고 캐스팅 보트는 오락가락하는 부동층이 결정하게 되었다.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되어 세상이 깜깜이가 된 13일까지의 수치를 보면 박근혜와 문재인 두 후보의 합산 지지율은 유권자의 85-92% 정도. 유권자의 10% 정도가 아직 지지자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70% 투표율을 곱하면 7%, 전체 유권자의 수가 4천만명이니까 부동층은 280만명 정도다. 부동층이 ‘내 마음 나도 모르는’ 흔들리는 갈대이지만 그들은 지난 20년간 YS-DJ-노무현-MB에 투표한 확률 100%의 신통력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우선 정치적 이념 보다는 정신의 무의식이 지배하는 신화의 이미지 상상력으로 정치를 이해한다. 이때 박근혜는 ‘근혜 공주’로, 문재인은 ‘진보 실장’으로 호명되어 역할을 부여 받는다. 박근혜는 정치인 이전에 ‘산업화 신화’의 주인공 박정희 대통령의 맏딸이고, 문재인은 느닷없이 나타나서 급작스럽게 사라진 다음 극적으로 부활한 ‘진보 신화’의 주인공 노무현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이기 때문이다.

‘공주’와 ‘진보 실장’ 중 누구를 찍을 것인가? 인간의 마음은 육하원칙으로 하자면 ‘왜’ (Why)에 가장 먼저 뜨겁게 반응한다. 후보자들이 열변을 토하는 ‘무엇’ (What)에는 가장 나중에 미지근하게 반응한다. ‘무엇을 하겠다’는 공약 보다는 ‘왜 출마했는가’라는 신념, 믿음 즉 비전에 반응한다. 그 이유는 인간의 뇌 진화에서 ‘왜’를 관장하는 부위 즉 감정을 조절하는 부위인 변연계가 가장 먼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떻게’를 관장하는 신피질은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현생인류의 뇌로서 언어를 담당한다. 신피질은 고작해야 변연계의 결정을 합리화시켜 줄 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비전과 이미지는 우리말로 영상으로 번역될 수 있는 동의어다.

신화적 이미지 상상력의 기준으로 두 후보는 너무나 매력적이다. 그래서 우열을 나눌 수 없다. 이때 등장하는 개념이 ‘일화 기억’(逸話 記憶)이다. 이것은 하나의 사건, 에피소드로 후보자를 기억하는 것이다. 박근혜하면 선거 유세 중 커터 칼 테러를 당해 수술을 받을 때도 ‘대전은요?’라고 질문한 사건이 떠오른다. 문재인은 ‘대단히 충격적이고 슬픈 소식’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처음 공식적으로 확인하던 그 짧고 엄숙한 사건이 생각난다. 이러한 사건과 후보자의 이미지가 겹쳐지게 되면 유동층의 마음은 감동으로 출렁거린다. 조국과 정당에 헌신하는 공주와 ‘운명이다’며 몸을 던진 대통령을 운명으로 껴안은 비서실장! 유동층의 망설임과 변덕은 계속된다.

이때 유동층에게 ‘너무 고민하시지 말고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하며 낚시 밥을 던지는 것이 프레임과 스토리 전략이다. 박근혜 후보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의 슬로건을 던지며 출마 선언했다. 이 프레임은 ‘근대의 긍정적 기억 속에 미래를 준비하면서 국민과 국가가 하나가 되자’는 담론으로 정치적 스펙트럼의 중간 지대를 공략하는 프레임이면서, 자신이 밝은 미래의 지도자라는 ‘창조 스토리‘의 첫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이에 반해 문재인 후보는 독립문 앞에서 ’사람이 먼저다‘를 외쳤다. 나라의 주인이 사람이 아니라 자본이 되었음을 비판하는 그래서 공화국의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구출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다.

오늘은 12월 19일이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부동층의 마음은 원초적 감성으로 작동한다. 그들의 마음은 투표일 기표소 안에 들어가서도 유동할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기표의 순간에 부동층은 결국 ‘근혜 공주-커터 칼-창조스토리’와 ‘진보 실장-부엉이 바위-구출 스토리’ 중 하나를 무의식적으로 자동적으로 그리고 반사적으로 선택할 것이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강한섭 (서울예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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