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석] 부동산에 관한 법률문제를 상담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놀라움 중의 하나는, 수억원이 넘는 거액의 부동산거래를 함에 있어 변호사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라는 사실이다. 대기업들과 같이 고문변호사를 두고 있는 경우에는 예외이지만, 개인이건 회사건 할 것 없이 거액의 부동산을 거래함에 있어서 전혀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관행은 변호사를 소송의 대리인으로만 생각하는 관념에서 근거한 것으로 짐작된다. 즉, 소송이 발생하거나 조짐이 보이면 그 때가서야 변호사를 찾아가고, 그 이전에는 굳이 변호사의 도움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100% 잘못된 것이다.
소송을 즈음해서야 변호사의 도움을 구한다면 대체로 적절한 도움의 시기를 지나쳐버릴 수가 많다. 조기발견되어 간단하게 치료될 수 있는 암을 뒤늦게 발견해서 완치를 확신할 수 없는 시기에서야 병원을 방문한 것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다. 수준 높은 의료진이라고 하더라도 현대 의학기술에 엄연한 한계가 있어 적절한 치료시기를 놓친 환자는 회생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법률문제 역시 기본적인 법논리와 증거법칙이 있기 때문에, 거래가 진행되는 단계에서 적절한 증거와 절차를 밟아두지 않으면 수술단계라고 할 수 있는 소송에서 좋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변호사의 도움은 소송문제로 비화되기 훨씬 이전단계인, 계약서를 작성하기 이전의 협상, 계약서 작성, 그 이후의 계약 이행과정 전부에 걸쳐 반드시 필요하다. 현행법에 맞는 적절한 방법을 제시하고,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문제될 수 있는 부분을 유리하게 이끌어가는 것은 법을 제대로 알고 있는 변호사의 역할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소송 이전 단계에서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을 의식조차하지 못하거나 매우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현실이다. 아마도 그 이유는, 변호사=소송대리인이라는 관념에 젖어있어 소송이전의 계약 단계에서부터 변호사의 자문을 거치는 것을 상대방에 대한 실례라고 생각하거나,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에서 기본적으로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러한 생각의 바탕에는 자문에 따르는 변호사보수가 너무 부담스럽다는 생각도 있다. 종전에는 변호사들 역시 소송 이전에 변호사가 일일이 개입하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었고, 이러한 자문에 상당한 보수를 요구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최근들어서는 이러한 자문이 당연시되고 그에 따르는 보수 역시 합리적인 수준으로 정착되고 있다. 더구나, 최근에는 변호사 수도 대폭 늘어나 이러한 분위기가 충분히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필자 역시 계약단계에서부터 변호사의 자문을 받는 관행을 정착시켜보고자 오랜 전부터 자문료를 적게 받으면서 계약에서부터 관여해온 결과 의뢰인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도움을 받겠다는 이야기를 이구동성으로 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미국기업이나 정부가 수백명 이상의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고, 협상자리에 항상 변호사를 대동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과의 협상은, 전쟁으로 비유하자면 총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까지 비교할 수 있다. 거액이 오가는 계약이나 협상은 전쟁이나 다를바 없는 것이다.
계약단계에서 변호사 도움이 필요한 이유는, 소송과 비교할 때 오히려 계약이나 협상의 단계에서 능력있는 변호사의 도움이 더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소송은 일이 모두 벌어진 단계에서 법률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주업무이기 때문에 변호사의 도움은 법률적인 정리작업에 제한적일 수 밖에 없지만, 계약이나 협상은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가능한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서 법률적으로 뒷받침되는 전략을 모두 구사해야 하기 때문에 소송에 비해서는 훨씬 다양한 자문과 아이디어가 요구된다. 따라서, 능력있고 경험이 풍분한 변호사의 도움은 오히려 소송보다는 계약자문단계에서 더 필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법률적인 도움을 중개업자에게 모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중개업자는 가격과 같은 거래의 여러조건들을 흥정하는 중개의 전문가일 뿐이고, 대체로 법에 대해서는 정확한 지식이 부족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계약단계에서의 자문은 소송보다도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별도의 변호사 자문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변호사의 도움을 미리 받지 못해 낭패를 본 사례는 거론할 수 없을 만큼 너무 많아서 일일이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거액의 부동산거래에서 법률적인 과오는 상당한 금액의 손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속담은, 계약단계에서부터 변호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소송문제로 비화되고 나서야 변호사의 도움을 청하게 되는 사람에도 적용될 수 있다.
특별한 질병증세가 없더라도 일정기간마다 건강진단이 필요하다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변호사의 도움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민들이 이런 마음을 가질 수 있고 관행을 정착시킬 수 있도록, 보수수준을 합리화하면서 계약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자하는 변호사들의 노력도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