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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복지법’은 국가에 문화예술 분야 표준계약서를 개발하고 보급하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에 문체부는 미술·공연·출판·영화·만화·방송·대중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표준계약서를 마련해 배포해 왔다. 계약 당사자 간 협상력의 차이가 큰 문화예술계에서 표준계약서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다. 계약 조건을 협상할 능력이나 법률지식이 부족한 예술인에게 최소한의 보호 장치가 되고 협상의 출발점이 되기도 하며 업계가 지향해야 할 공정한 거래 관행을 제시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표준계약서의 보급 이후 개선된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는 것만으로 예술인은 충분히 보호받을 수 있을까. 아쉽게도 현장에서 만나는 예술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표준계약서가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우선 표준계약서의 내용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지적이다. 정작 민감하고 중요한 사항은 ‘계약 당사자 간 별도로 협의한다’고 규정하거나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쟁점에 대해서도 원칙적인 내용만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별도로 협의한다’는 문장 뒤에서도 당사자 간 힘의 차이는 작동하고 결국 협상력이 부족한 예술인에게는 그 협의 과정이 또 하나의 부담이 되는 셈이다. 또 다른 예로 공연출연계약에서 출연자가 일방적으로 교체되거나 계약해지를 통보받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는데 이때 과연 계약 해지 사유가 있는지를 두고 다툼이 발생한다. 그런데 표준계약서에서조차 ‘정당한 이유 없이 이 계약을 위반하는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어 무엇이 정당한 이유로 어느 정도 의무 위반이 있어야 하는지 다시 다퉈야 한다. 표준계약서가 분쟁의 해결기준이 되기보다 판단의 어려움을 도돌이표처럼 당사자들에게 되돌리는 것이다.
물론 법률가로서 표준계약서가 추상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한다. 계약을 둘러싼 상황은 제각각이고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법적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모든 경우의 수를 계약서에 미리 담아두는 것은 불가능할뿐더러 오히려 불합리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인들에게는 이러한 설명이 쉽게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분쟁을 예방하고 해결하려고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는 것인데 정작 분쟁이 발생했을 때 중요한 조항의 의미를 다시 법률가에게 물어야 한다면 표준계약서가 무슨 소용이냐는 반문이 나올 만하다.
표준계약서가 현장의 다양한 거래 형태나 거래 관행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는 내용과 참여 방식이 다양한 지원사업이 이뤄지고 있지만 일부 지원기관은 사업의 특성과 관계없이 표준계약서 사용을 요구한다. 실제 거래관계에 맞지 않는 양식에 사업 내용을 억지로 끼워 맞추다 보면 계약서의 형식만 갖출 뿐 정작 당사자들의 권리와 의무는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는 일이 발생한다.
표준계약서는 법률적으로 잘 만들어진 계약서를 넘어 실제 현장에서 도움이 되는 계약서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떤 조항에서 분쟁이 발생하고 예술인들이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지속적으로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제·개정 과정에 해당 분야의 거래 관행과 분쟁 실무를 잘 아는 전문가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법률적 타당성만으로는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체부가 지속적으로 표준계약서를 개정하는 등 정비를 이어가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다. 다만 이제는 표준계약서의 보급을 넘어 실효성을 고민해야 할 때다. 표준계약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공정한 계약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예술인이 불리한 계약 조건을 알아차리고 부당한 요구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표준계약서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법조프리즘]표준계약서는 누구를 위한 표준인가](https://image.edaily.co.kr/images/photo/files/NP/S/2026/11/PS2611090002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