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술 강요도 '직장 내 괴롭힘'…"50대·男 관리자, 감수성↓"

권효중 기자I 2023.12.17 12:00:00

직장갑질119, 회식 강요·배제 사례 48건 분석
'원치 않는 회식 강요' 30건, '따돌림' 회식 배제 18건
여성은 외모·몸매 평가 등 '젠더 폭력' 노출도
"회식 문화 개선해야"

[이데일리 권효중 기자] “회식을 불참하면 사유를 적어 내부 결재를 올리도록 합니다.” (직장인 A씨)

“‘차를 바꿨다’고 얘기했는데 팀장이 ‘한 턱 쏴야 한다’고 강요하며, 결국 강제로 돈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직장인 B씨)

연말 송년회가 많아지는 시기, 아직도 많은 직장인들이 위로부터의 지시와 압박으로 인해 원하지 않는 술자리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식이 직장 내 괴롭힘과 따돌림의 수단으로 이용돼 특정인을 배제하는 경우도 있었다. 술과 술자리를 강요하는 것 역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만큼 사내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사진=게티이미지프로)
시민단체 직장갑질 119는 지난 1월부터 12월 12일까지 접수된 ‘회식 갑질’ 제보 48건을 분석한 결과를 17일 발표했다. 제보의 대부분은 회식 강요(30건)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사업주나 상급자 등이 위계 관계를 이용해 회식을 강요하는 내용이었는데, 술자리는 물론 술을 마실 것을 강권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더군다나 여성의 경우 ‘단둘이 2차를 가자’라는 말을 듣는 등 업무상 젠더 폭력을 겪기도 했다. 한 제보자는 “부장이 단둘이 회식을 강요해서 끌려갔는데, 외모와 몸매를 평가하는 발언을 했다”고 토로했다. 다른 직장인 역시 “대표의 회식 제의를 거절했지만 지위를 이용해 저녁 자리를 예약하라고 강요했고, 결국 음담패설을 듣게 됐다”고 전했다.

이처럼 회식을 강요하고, 음주를 강요하는 경우는 명백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 실제로 고용노동부의 ‘직장 내 괴롭힘 진단·예방을 위한 점검 체크리스트’에는 ‘내 의사와 관계 없는 음주·흡연을 강요했다’는 문항이 별도로 마련돼 있기도 하다.

반대로 회식 배제로 직장 내 따돌림을 가하는 경우도 있었다. 제보자들은 “점심시간은 물론, 회식까지 저를 빼고 간다”,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하자 회식 일정을 공유하지 않고, 가자고 제안하지도 않았다”고 밝혔다.

직장인들의 술자리·회식에 대한 인식은 변해가고 있지만, 현실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직장갑질119의 ‘직장인 1000명 대상 갑질 감수성 지표 조사’에 따르면 ‘팀워크 향상을 위해 회식과 노래방이 필요하다’라고 응답한 지표 점수는 2022년 73.6점에서 올해 71.2점으로 떨어졌고, ‘직장 생활을 원활히 하기 위해서는 술이 싫어도 한 두잔 정도는 마셔야 한다’는 점수는 80.6점에서 73.3점으로 떨어졌다.

특히 직장에서 위계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남성, 50대의 관리자일수록 의식 변경이 필요하다는 제언이다. 남성의 경우 회식문화 점수는 67점으로 여성(76.6점)보다 낮았고, 연령대별로 보면 20대의 점수가 73.4점을 기록했으나 50대는 66.3점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상운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회식 강요 및 배제는 분명한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며 “회식을 통해서만 소통과 단합이 가능하다는 고리타분한 관점과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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