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일 정치권의 화제로 오르내린 문구들이다. 미래통합당의 회의장에 등장하는 `백드롭`(배경 현수막)이 그 주인공. 언제부턴가 김종인 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나 주호영 원내대표의 말보다 그날 백드롭에 어떤 새로운 문구가 등장할지를 궁금해 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시각적 화려함 보다 사회적 현안에 초점을 맞춘 `촌철살인`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이끄는 아이디어의 핵심은 김수민(33·사진) 통합당 홍보본부장에서 시작된다.
|
28일 국회 통합당 홍보국에서 만난 김 본부장은 “국민의 언어를 빌려 온 백드롭은 국민이 정치권에 던지는 질문”이라며 “가장 강력하게 효과를 낼 수 있는 좋은 도구가 매번 뉴스에 나오는 백드롭이다. 효과가 가장 큰 도구에 먼저 집중하다 보니 그게 백드롭이 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대표작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실언을 겨냥한 백드롭이다. `(서울은)천박한 도시`라는 이 대표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킨 것을 두고 지난 27일 비대위 회의 백드롭 문구를 `아름다운 수도, 서울 의문의 1패`라고 장식했다. 인천 수돗물 유충 사건은 물론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 `검·언 유착` 의혹 사건 등 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다양한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혁신적인 결과물은 혁신적인 과정에서 나온다.
김 본부장은 대면 보다 모바일 메신저로 홍보국 직원들과 실시간 소통을 한다. 그는 “국민의 수요를 파악해 정책을 펴야 하는 정당에서 구태의연한 방식은 유효하지 않다. 모바일을 통해 아침부터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실시간으로 얘기를 나눈다”고 했다.
13명의 홍보국 직원들은 매일 아침 뉴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이슈를 파악한 뒤 공유한다. 김 본부장은 “큰 방향은 정해놓고 몇 개 아젠다를 설정해 직원들과 다양하게 이야기를 나눈다. 문구를 정하는 데엔 하루이틀 정도 걸린다”고 전했다.
통합당의 백드롭은 전신인 자유한국당, 새누리당 시절과도 달라졌다. 공감 능력을 앞세운 새 승부전략을 짰다.
김 본부장은 “통합당이 회복해야 할 건 공감 능력과 해결 능력 두 가지다.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공감 능력을 확보하고 그걸 해결할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게 순서”라면서 “지금까지 의원들의 통상 발언은 `해결`에만 초점이 있었다. 공감을 못 하는데 어떻게 해결을 하나. 어설픈 해결 보다는 깊은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먼저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나온 백드롭은 김선동 사무총장, 김종인 위원장과의 논의에서 최종 결정된다. 김 본부장은 “김 사무총장은 핸들링을 잘해주고, 김 위원장도 젊은 감각에 대한 전폭적인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통합당이 거대 여당에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백드롭을 통해 국민적 공감대와 지지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게 김 본부장의 판단이다.
김 본부장은 “예전의 여야 대결 구도가 아니다. 지금은 권력의 추가 여당에 있기 때문에 어떤 이슈든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건 의미가 없어졌다”면서 “기계적으로 해결하거나 깊은 공감을 바탕으로 대타협을 하느냐인데 백드롭은 후자”라고 강조했다.
당내 반응도 뜨겁다. 김 본부장은 “초선 의원들 중 깨어 있는 사람이 많다. 당에 오래 있던 사람들도 변화에 대한 욕구가 어느 때보다 크다”고 전했다.
|
◇결과물 보다 과정…국민과의 소통 방식 개선
`백드롭 정치`로 시선을 끌면서 어느 정도 목표는 달성한 셈이나 앞으로도 갈 길은 멀다. 통합당은 조만간 새로운 당명과 당색을 발표할 예정이다. 당의 쇄신 이미지를 책임져야 하는 만큼, 김 본부장의 어깨도 무겁다. 8월 초부터 대국민 공모를 시작해 3주일 정도 진행한 뒤 추석 전인 8월 말이나 9월 초 최종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김 본부장의 고민 지점은 다른 데 있다.
그는 “이름 자체 보다는 당의 이미지를 어떻게 개선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미지가 좋으면 어떤 이름을 붙여도 좋아 보이고, 이미지가 나쁘면 그 반대”라며 “결과물이 아닌 과정이 중요하다. 이름을 바꾸고 정체성을 재확립하는 과정이 즐겁고 긍정적인 집단 경험으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명의 방향성에 기대하는 부분은 명확하다.
김 본부장은 “미래의 가치와 가능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름이 나왔으면 한다”면서 “진보와 보수라는 프레임은 의미가 없어졌고 보수란 단어는 진보를 이길 수 없다. 공동체·건강한 개인과 같이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 가치가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더 나아가 통합당과 국민들이 소통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게 김 본부장의 바람이다.
김 본부장은 “말 그대로 `디지털 전환`(디지털 기술을 적용해 사회 구조를 혁신하는 것)의 일환으로, 젊은 세대들이 우리 당에 기대를 갖고 의지할 수 있는 툴(tool)을 개발하고 싶다”며 “젊은 층의 고민 지점을 명확히 판단할 수 있는 데이터 전문가 등을 모아 팀을 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