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유통 e사람]들국화 객원멤버, 홈쇼핑 ‘음악장인’ 되다

박성의 기자I 2018.01.04 06:30:00

유영열 GS샵 영상아트팀 수석 인터뷰
1996년 입사 후 20년 간 음악선곡 진두지휘
걸그룹 음악 선호…“비트감, 이미용 상품에 안성맞춤”
쇼핑 채널 다변화…“음악 쓰임새 늘어날 것”

[이데일리 박성의 기자]2015년 ‘쉐이킷! 쉐이킷 포미!’

2016년 ‘음! 무아, 무아, 무아!’

2017년 ‘마이 슈퍼 루키! 루키, 루키!’

홈쇼핑업계 ‘마법의 주문’ 계보다. 순서대로 아이돌그룹 씨스타의 노래 ‘쉐이킷(Shake it)’, 에이프릴의 ‘무아(Muah)’, 레드벨벳의 ‘루키(Rookie)’ 가사다. 이 노래를 틀 때마다 홈쇼핑 매출은 뛰었고, 각 노래들은 2015년, 2016년, 2017년 GS샵 생방송 중 가장 많이 삽입된 노래가 됐다.

아이돌의 ‘후크’(짧은 후렴구에 반복된 가사)와 홈쇼핑 매출 간 연결고리의 비밀을 푼 이는 유영열 GS샵 영상아트팀 수석이다.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GS샵 본사에서 만난 유 수석은 “홈쇼핑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상품의 재질, 모양, 잠재적 고객의 특성 등을 모두 고려해 해당 상품이 지닌 감성을 파악한 후 음악을 선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홈쇼핑의 아이돌 사랑…후크송으로 고객 낚아

지난달 28일 서울 영등포구 GS샵 본사 음향작업실에서 만난 유영열 수석은 “어떤 음악을 쓰느냐에 따라 매출이 달라진다”며 “유통채널이 늘고 있어 음악의 쓰임새도 점차 다양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사진=이데일리 DB)
홈쇼핑과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지난해 GS샵 방송에 삽입된 배경음악만 1만여 곡. 그 음악 중 대부분이 아이돌 노래다. 지난해 GS샵에서 가장 많이 들린 음악은 총 600회 이상 선곡된 레드벨벳의 ‘루키’가 차지했다. △트와이스 ‘노크 노크’ △레드벨벳 ‘배드 드라큘라’ △AOA ‘익스큐즈 미’ △레드벨벳 ‘빨간 맛’이 그 뒤를 이었다.

아이돌 노래만 틀면 상품은 매진됐다. 지난해 10월부터 ‘완판행진’을 이어간 아디다스 벤치코트의 경우, 레드벨벳과 트와이스의 노래만 나오면 상품 주문전화가 급격히 뛰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홈쇼핑은 한정된 시간 안에 구매욕구를 자극해야 하는데, 음악이 ‘모래시계’의 역할을 한다는 게 유 수석의 설명이다.

유 수석은 “음악은 고객에게 ‘시간이 가고 있다’는 무언의 알림 역할을 한다”며 “특히 걸그룹 음악 대부분이 짤막한 소절을 반복하는 형태의 후크송이다 보니 방송의 몰입도를 높이는데 효과적”이라고 부연했다.

아이돌의 노래라고 홈쇼핑에서 모두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유 수석도 꺼리는 음악은 있다. 아무리 상품과 잘 어울리고 세련된 비트감을 자랑하는 음악이라도 곡명이 부정적 어감을 지니면 안 된다. 한 시대를 풍미한 히트곡인 빅뱅의 ‘거짓말’, 손담비의 ‘미쳤어’ 등이 홈쇼핑에선 자주 들리지 않았던 이유다.

상품의 특성에 따라 아이돌이 아닌 80~90년대 올드팝을 선곡하는 경우도 있다.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한 건강용품이나 정적인 분위기를 강조하는 침구류를 판매할 때다. 이때는 당시를 풍미한 팝인 아바의 ‘맘마미아’, 쉬나 이스턴의 ‘모닝 트레인’ 등을 튼다.

◇ “쇼핑채널 다변화…음악 쓰임새 많아질 것”

GS샵 내 음향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유영열 수석.(사진=이데일리 DB)
유 수석이 GS샵의 ‘뮤직플레이 리스트’를 총괄한 지도 어느 덧 20여년. 유 수석은 지난 1996년 GS샵에 입사하기 전, 들국화의 객원 멤버로도 활동했다. 당시 그가 담당한 악기는 건반. 들국화의 대표곡인 ‘행진’, ‘매일 그대와’, ‘그것만이 내 세상’ 등을 연주하며 뮤지션의 길을 걸었다. 유 수석은 “한 분야의 대가가 되려면 대인배부터 돼라”는 보컬 전인권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록 음악에 심취했던 그가 상업음악에 발을 들인 계기는 졸업 후 편곡 회사에 취업하고서부터다. 유 수석은 “2년 동안 팝을 비롯한 각종 음악 2000곡을 편곡했다. 그때 방송음악을 접했는데 재밌더라. 음악이 필요한 분야가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유 수석은 평소 음악 뿐 아니라 마케팅과 청각 공부에도 매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신경과학자인 세스 S 호로비츠의 책 ‘소리의 과학’을 읽었다. 그는 책 본문 중 ‘동물은 1초의 100만분의 1 이내에 생기는 소리의 변화도 감지하고 이에 반응할 수 있다’는 내용을 소개하며 “음악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그만큼 클 수 있다는 증거”라고 힘 주어 말했다.

“TV뿐 아니라 인터넷이나 모바일 등으로 쇼핑채널이 다변화하고 있다. 음악의 쓰임새도 더 많아질 것이다. 소리가 주는 영향을 비롯해 AI(인공지능) 등 각종 신기술을 연구해 고객이 감동할 수 있는 음악을 선뵈고 싶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