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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섬 속의 섬' 가파도 사잇길로 흩날리는 청보리밭

강경록 기자I 2017.04.28 06:19:57

해발 20.5m로 국내 유인도 중 가장 키작은 섬
가파도 올레길따라 걸을 수 있어

가파도 청보리밭 사이를 다정하게 걷고 있는 여행객들. 바다 너머로 단산이 보인다.
[이데일리 강경록 기자] 섬 속의 섬으로 떠난다. 제주를 둘러싼 크고 작은 유인도들. 마라도·가파도·차귀도·비양도·우도…. 사실 제주도보다 더 제주다운 곳이 여기다. 휴양지로 잘 가꿔진 본섬인 제주도에 비해 아직은 옛 풍경과 경치가 남아 있어서다. 섬 속의 섬으로 떠나는 여행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이유다. 이번에 찾은 곳은 제주 남서쪽의 작은 섬, 가파도다. 제주도에 딸린 섬 중 가장 투박하다. 덩치 큰 섬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가파도행 여객선에서 바라본 가파도의 모습
◇가파도(갚아도) 그만, 마라도(말아도) 그만

서귀포 모슬포항. 가파도행 여객선을 탈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가파도가지는 약 5.5km. 여객선으로 20분이면 닿는 거리다. 가파도(加波島)는 제주 본섬과 국토 최남단 마라도 사이에 놓였다. 면적은 0.85㎢(26만평). 2.94㎢ 서울 여의도(89만평)의 3분의1 정도에 불과하다. 바람이 세차고 파도가 유난히 거칠다고 해 가파도라 불렸다. 오죽하면 가파도 사람이 돈을 빌리면 ‘가파도(갚아도) 그만, 마라도(말아도) 그만’이라고 했을까.

섬은 지도로 보면 마름모꼴이다. 언뜻 보면 마치 가오리같다. 해안선 길이가 4.2km에 불과하다. 마라도보다는 2.5배쯤 크다. 우리나라 유인도 중 가장 키 작은 섬이다. 해발 20.5m에 불과하다. 아랫 섬인 마라도는 39m다. 섬에는 산은 커녕 언덕 하나 없다. 마치 바다 위에 얇은 방석을 펴 놓은 것 같다. 그래서인지 단순하면서도 정갈한 옛 모습이 그대로다.

섬 전체를 둘러보려면 걷는 게 좋다. 자전거를 빌려 타는 방법도 있다. 상동 선착장 바로 앞에 대여소가 있다. 가파도 올레길(10-1코스)은 불과 5㎞ 거리다. 두세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다. 길은 두갈래다. 보리밭 들판을 따라 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길과 해안을 따라 한 바퀴 빙 도는 길이 있다. 어느 길을 택하든 섬 전체를 고루 밟아 볼 수 있다. 그래도 섬을 제대로 느끼려면 해안을 따라 가는 것이 좋다.

가파도의 낮은 무덤들이 이름모를 야생화로 뒤덮여 있다. 바람 많은 가파도의 무덤들은 육지보다 낮은 것이 특징이다.
길의 시작은 상동 선착장. 왼쪽으로 길 머리를 잡는다. 자박자박 걷다보면 ‘6개의 산’이라는 이정표를 만난다. 제주의 산 7개 가운데 영주산을 제외한 한라산·산방산 등 6개의 산을 볼 수 있다는 곳이다. 제주의 가장 낮은 땅에서 가장 높은 한라산을 조망하는 경험은 특별하다. 남쪽에는 마라도가 떠있다.

동쪽 끝 해안가에는 ‘제단집’이 있다. 둥글게 돌담을 쌓고 가운데 작은 돌 두개를 받쳤다. 그 위에 평평한 반석을 얹었다. 이를 ‘춘포제단’이라 부른다. 춘포제는 음력 정월에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다. 가파도는 대정읍에서 유일하게 춘포제를 봉행하는 곳이다. 그 역사가 무려 150년을 헤아린다.

해안과 마을 말고는 들판 전체가 청보리밭이다. 60만㎡(약 18만평) 넓이의 보리밭 지평선이 그대로 수평선으로 이어진다. 가파도 청보리는 어느새 훌쩍 자라 알이 배고 이삭이 패기 시작했다. 가파도의 보리는 ‘향맥’이라는 제주 재래종이다. 일반 보리보다 키가 훨씬 커서 1m를 넘는다. 그러니 섬을 가득 채운 초록빛 보리가 바닷바람에 일제히 넘실대는 모습이 더 장관이다. 바람 불 때마다 바다의 파도와 같은 리듬으로 크게 물결친다.

가파도 청보리밭 사잇길을 다정하게 걷고 있는 연인
◇ 넘실대는 청보리밭을 거닐다.

가파도는 바람의 섬이다. 옛부터 배들의 표류와 난파가 잦았다. ‘정이월 바람살에 가파도 검은 암소뿔이 휘어진다’는 속담까지 있을 정도다. 1653년 네덜란드인 하멜 일행의 배가 난파된 곳을 가파도로 추정하는 학자들도 있다. 네덜란드 사람 하멜이 조선에서 14년 동안 억류돼 있다가 탈출한 뒤 귀국해서 쓴 ‘하멜표류기’에 등장하는 ‘케파트(Quepart)’라는 지명이 가파도라고 본다.

제주도 새끼섬 중 식수가 가장 넉넉한 곳이 가파도였다. 우물은 섬 내 두 곳에 있다. 주민이 물 긷고 빨래하던 ‘동항개물’과 물질 끝낸 해녀들이 겻불을 쬐던 ‘불턱’ 등을 줄줄이 지나면 ‘하동 할망당’이다. 가파도 주민들은 우물을 ‘할망당’이라 부른다. 상동 할망당은 ‘매부리당’, 하동 할망당은 ‘뒷서낭당’이다. 마을을 상·하동으로 나눈 것도 따지고 보면 우물이 있던 곳을 기준 삼은 것이다. 할망당은 차곡차곡 돌을 쌓아 만들었다.수십 년의의 시간을 족히 넘어온 듯하다. 재단이 주로 남성 위주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축제 성격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라면, 당은 여자들이 주도해 어부와 해녀의 안전과 풍어를 빌던 곳이다. 지금은 물이 거의 나지 않는다. 바다를 메워서다. 지금은 담수화 시설에서 식수를 얻고 있다.

이 작고 바람 센 섬에도 선사시대 때부터 사람이 살았던 모양이다. 보리밭 사이사이 자리한 커다란 바위는 고인돌이다. 제주도에 남아 있는 180여기의 고인돌 중 무려 95기가 가파도에 있다.

가파도 아랫마을인 하동마을을 걷고 있는 올레꾼과 마을전경
가파도 돌담은 특이하다. 제주도는 대부분 검은색 현무암으로 담을 쌓지만 이곳은 바닷물에 닳은 마석(磨石)을 쓴다. 바닷돌 하나하나가 훌륭한 수석인데, 환경보호 문제로 제주도 밖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 마을이나 방파제 곳곳에 훌륭한 수석들이 놓여 있다. 집담과 밭담은 제주도의 다른 곳보다 성글게 쌓았다. 가파도 센 바람이 숭숭 뚫린 구멍으로 지나가기 때문에 잘 무너지지 않는다. ‘섬 시인’ 강제윤은 가파도 돌담은 ‘바람의 방어막’이 아니라 ‘바람의 통로’라고 썼다. 햇살 맑은 날, 가파도의 봄은 참 싱그럽다. 걷기에 이만한 곳도 없다. ‘보리밭 올레길’을 따라 걷다보면 깊은 평화와 고요에 안겨있는 느낌이 든다. 제주의 가장 낮은 땅, 청보리 넘실대는 봄날의 청정 가파도에서 아주 천천히, 여유롭게 거닐어 본다.

◇여행메모

△가는법= 가파도 가는 배는 서귀포 모슬포항에서 하루 네 차례 운항한다. 왕복 요금은 1만 1400원이다. 입도료 1000원은 별도다. 아울러 신분증은 승선객 모두 반드시 지참해야한다. 승선에 앞서 모슬포여객터미널(794-5490~3)에 좌석을 예약해야한다.

△먹을곳= 해녀촌(794-5745), 바다별장(794-6885), 올레길식당(792-7575), 춘자네식당(794-7170) 등이 있다. 가파도 어촌계 해녀들이 직영하는 해녀촌은 용궁정식과 해물정식이 유명하다. 4명에 5만원 정도다. 해녀들이 금방 잡아온 문어, 전복, 소라, 전복 등을 통째로 냄비에 끓여 낸다.

가파도 올레길을 걷고 있는 여행객들
가파도 청보리밭 너머로 보이는 송악산과 산방산
가파도 청보리밭 너머로 보이는 송악산과 산방산의 모습
가파도 청보리밭 너머로 보이는 형제섬
가파도 청보리밭에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관광객들
가파도 청보리밭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여행객들
가파도에서 바라본 마라도의 모습
가파도에서 바라본 마라도의 모습
가파도에서 바라본 형제섬
가파도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충분히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청보리밭 한가운데 서 있는 가파도 교회
바다의 산삼이라고 불리는 ‘홍삼’
청보리밭 너머로 보이는 가파도 상동마을
출렁이는 가파도 청보리밭 너머로 보이는 송악산과 산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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