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자의 생활 속 금융]'그놈 목소리'…미리미리 대비하세요

박기주 기자I 2016.10.22 09:30:00
[이데일리 박기주 기자] 수년 전 어머니께 전화가 한 통 왔습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어머니는 다급한 목소리로 “너 지금 어디야?”라고 물으셨죠. 일하고 있던 저는 영문도 모른 채 그저 “회사에서 일하는데요”라고 답했고, 어머니는 알겠다며 그냥 전화를 끊으셨습니다.

퇴근 후 집에서 자초지종을 들으니, 보이스피싱으로 의심되는 사람의 전화가 저희 집에 걸려왔었나 봅니다. ‘네 아들을 잡아두고 있으니, 돈을 부치라’고 했다더군요. 게다가 한 남자가 울먹이며 “엄마, 이 사람들 무서워”라고 말을 하니 부모님께서 걱정을 할 수밖에요. 만약 제가 연락이 안 닿았으면 저희 부모님도 꼼짝없이 당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런 방식의 보이스피싱은 이제 구닥다리 수법이 돼 버린 지 오래죠. 이제는 금융사 재직증명서를 위조해 대출을 받으라고 유도한 뒤 보증료를 받고 잠적한다든가, 구직자에게 취업을 미끼로 계좌 정보를 받아 대포통장으로 사용하는 등 갖가지 방식의 보이스피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보이스피싱 피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지난해 상반기 3386명, 하반기 2075명, 올 상반기엔 1897명으로 집계됐죠.

사실 잘 알려졌긴 하지만, 공포심을 조장한 보이스피싱에 걸려들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은행 등 금융사에서도 고액 송금 등에 대해선 확인 절차를 거치지만, 요즘 사기범들은 “부모님 차량 구매 대금이라고 하세요” 등 은행원에게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도 알려준다더군요. 또 금융당국에서 보이스피싱에 당한 피해자를 구제하는 방법을 마련한다고 해도, 그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워 많은 시간을 낭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보이스피싱에 당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먼저 은행권에서 시행하고 있는 ‘지연이체서비스’에 가입해 둬야 합니다. 특히 정보 부족으로 보이스피싱에 취약한 노년층 혹은 부모님이 가입할 수 있도록 권유하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지연이체서비스는 인터넷이나 모바일뱅킹을 이용해 송금할 경우 이체 버튼을 눌렀더라도 3시간 내에 취소 버튼을 누르면 이체 거래가 무효가 되는 제도입니다. 은행 지점이나 인터넷뱅킹을 통해 신청하면 됩니다. 사기범의 말대로 송금을 했더라도 사기인 것을 확인한 뒤 취소할 수 있다는 뜻이죠.

또 하나 간단한 방법은 은행에서 제공하는 입출금 휴대폰 알림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의외로 이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으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본인 계좌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요즘엔 스마트폰을 활용해 입출금 알림 메시지를 받으면 비용도 들이 않기 때문에 아직 활용하지 않고 계신 분들은 지금이라도 신청하시기 바랍니다.

이런 만반의 준비를 하더라도 보이스피싱의 덫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지연이체서비스로도 ATM 이체는 보호해 주지 못하죠. 결국 중요한 건 마음의 준비입니다.

현금지급기를 이용해 세금·보험료 등을 환급해 준다거나 계좌 안전조치를 취해주겠다면서 현금지급기로 유인하는 경우는 거의 100% 사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현금지급기를 이용한 입금을 유도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죠. 은행이나 정부 어떤 기관도 현금지급기를 통해 입금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을 주지하셔야 합니다. 열심히 번 돈, 사기범 따위에게 흘러들어 가는 일이 없도록 모두 미리미리 대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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