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임일곤 기자] 대지진 여파에서 이제 막 회복하나 싶던 일본 경제가 이번엔 `엔고 쓰나미`에 휘청이고 있다. 엔화 가치가 달러당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면서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수출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것. 엔화값 초강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란 우려에 "더 이상 일본 내에서 사업을 못하겠다"고 선언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29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달러-엔 환율은 한때 76.72엔까지 내리면서(엔화 가치 상승) 지난 3월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이후 4개월만에 76엔대를 기록했다. 달러-엔 환율이 최저치를 기록했던 지난 3월17일 76.25엔 이후 최저 수준이다.
증시도 하락세다. 이날 닛케이225지수는 전일대비 0.69% 밀린 9833.03으로 마감하며 사흘 연속 밀렸다. 엔화 강세로 캐논과 닛산 등 수출주들 주가가 연일 하락하고 있다.
문제는 엔화 강세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것. 미국의 경기둔화와 디폴트(채무불이행) 불안에다 유럽의 재정위기까지 겹치면서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자 경상수지 흑자국인 일본 통화가 안전자산으로 떠오르면서 글로벌 자금이 엔화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 연방 채무한도 증액 문제는 합의 시한이 다가오고 있지만 여야가 좀처럼 해결점을 찾지 못하면서 미국 국채 강등이 현실화될 것이란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도 전문가 예상치(1.8% 증가)에 크게 못 미친 1.3% 증가로 나타나 미국 경기침체 우려가 다시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에서도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신용등급 강등 위기가 고조되면서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
엔화 강세가 계속되면서 일본 경제를 지탱하고 있는 수출 기업들이 비상이다. 일본 수출을 견인하고 있는 자동차와 전자제조사들은 달러-엔 환율이 80엔 내외로 상정하고 사업 계획을 짜왔으나 이보다 더 떨어질 경우 실적 악화가 불가피하다.
이러자 자국내 생산 설비를 해외로 이전할 수 밖에 없다는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28일 일본 주요 전자업체인 파나소닉과 도시바, 소니는 일제히 `탈 일본`을 언급했다.
우에노 야마 미노루 파나소닉 상무는 이날 실적발표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엔고와 전력부족 영향으로 일본에서 제품을 생산하는 것은 어렵다"며 "해외 생산 거점을 가지지 않을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구보 마코토 도시바 부사장도 "일부 사업부문은 과연 일본에서 생산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고, 가토 마사루 소니 최고재무책임자(CFO) 역시 해외 이전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주요 기업들이 한목소리로 엔고를 지적하는 것은 실적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들은 엔화 가치가 달러 대비 1엔씩 오를 경우 8억엔 가까이 손해를 입게 된다.
실제로 이들 기업은 2011 회계연도 1분기(4~6월) 실적이 엔고 및 지진 여파에 크게 악화됐다. 파나소닉은 303억엔 영업손실에 매출액은 11% 줄어든 1조9295억엔을 기록했고, 소니는 지진 여파와 함께 유럽 시장에서 TV 사업 부진으로 155억엔 적자를 냈다. 샤프도 492억엔 적자다.
이외 세계적인 비디오 게임사 닌텐도는 이 기간 순손실 255억엔을 기록했고, 후지쯔와 NEC 등도 각각 204억엔, 297억엔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대부분 전자업체들이 부진한 실적을 내놨다.
일본 재계 대표단체인 게이단렌의 요네쿠라 히로마사 회장은 지난 25일 기자회견에서 "엔화 강세가 원자재 등을 수입하는 면에서 봤을 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일본의 수출기업들을 위해 진정돼야 한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