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갓길에 세워놓고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반대편에 또 다른 작은 무지개가 선명히 그려져 있었다. 쌍무지개를 본 것이다. 지체없이 카메라를 들이대고 프레임속으로 들어온 무지개를 눈을 비비며 본다.
왜 이렇게 작게 보이는거지? 눈을 의심하며 프레임 바깥에 있는 무지개는 크게 보이는데 프레임 속으로 들어온 무지개는 하염없이 작게 투영되는게 아닌가? 인지적 거리, 그리고 프레임의 크기 차이를 생각지 않고 그저 크게만 담아내려는 내 욕심이 부끄럽게만 느껴졌던 순간이다.
그리고 몇 달전 난 또 다시 무지개를 보았다. 이번에는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말이다. 백두산을 오르기 위해 떠난 지난 6월의 어느날 길림에서 떠나 몇시간을 달리던 중 아주 우연하게 만난 무지개는 황혼이 질 무렵 짙게 내려앉은 붉은 노을빛과 구름 사이로 형체를 드러냈다. 몇 해 전에 보았던 한 여름의 무지개는 푸른 산 위 하늘에 곱게 내려 앉았던 것과 달리 이곳에서 본 무지개는 심지어 거친 느낌으로까지 여겨졌다. 색을 보고 느끼는 감정은 그때의 심리상태, 주변환경 등에 영향을 받는데 여지없이 내게 보이는 무지개는 상반된 느낌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무지개가 빛에 의한 자연 현상 중 하나임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역사 문헌을 보면 무지(물, 水)라는 단어와 ‘가이’ 오늘날에 ‘깔’로 변천된 단어와의 결합이라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빛깔, 색깔 등을 이야기 할때 ‘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는데 그 의미와 같다. 물이라는 것과 빛과의 결합을 통해 무지개라는 것이 만들어졌음을 언어에서도 알 수 있다. 여름날 소나기가 내린 후에 나타나는 이 아름다운 무지개는 빛의 굴절 현상에 의해 나타남을 이후 학자들에 의해 정의될 때까지는 많은 숨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미스테리한 현상이었던 것이다.
역사속 에피소드를 더 들여다보면 고대 사람들은 이 현상이 일어날 때 땅의 끝지점 즉 무지개와 땅이 만나는 지점에는 분명히 보물이 숨어 있을 것이라 해서 무지개가 뜨는 날엔 어김없이 보물을 찾기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니 그때나 지금이나 신기루에 대한 욕망은 끊임 없었음을 알 수 있는 듯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에서는 무지개가 연못에 있는 물을 모두 빨아 올려 생기는 현상으로 생각했고 이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도 있었다고 한다. 인디언들은 무지개가 뜨면 가뭄이 온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무지개를 보고 홍수를 예상하고 ‘서쪽에 무지개가 서면 소를 강가에 내매지 말라’는 속담도 있으니 민족마다 무지개를 보고 느끼는 감성은 각기 다름을 알 수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도 무지개의 여신이 등장하는데, 그녀는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사자(使者)로 나온다.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는 바다의 신 폰토스와 땅의 여신 가이아의 아들인 타우마스와 바다의 님프 엘렉트라 사이에서 태어난 신으로 자연현상을 의인화한 존재로 등장한다. 무지개는 마치 하늘과 땅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 헤라는 그녀에게 사자의 역할을 부여한 듯 하다.
무지개는 빛에 의한 현상이고 여기에 물방울이 빛을 통과시킬 때 입자 사이즈에 의해 굴절율의 차이로 인해 여러 색의 반사현상으로 기인한다. 결국 공기 중에 있는 빛과 물방울의 입자크기, 밀도 등이 무지개의 크기와 선명도를 결정한다.
13세기 폴란드의 비텔로는 무지개 현상을 처음으로 설명했다. 물방울과 빛의 굴절관계에 대한 이론 실험은 베이컨에 의해 계승됐고 여러 과학자를 거쳐 마지막 뉴턴에 이르러 프리즘 실험을 통한 굴절률의 차이가 무지개를 만든다라는 것으로 귀결된다.
영국의 천문학자인 G.B 에어리는 여러 종류의 무지개가 만들어지는 것은 물방울의 크기에 의해 차이가 있다는 것으로 마무리되고, 이렇게 정의된 무지개는 실제 색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고, 또 문화권에 따라 색의 개수가 다르게 인식되고 있다.
현재에 이르러 이런 자연현상을 사람의 기와 연결하여 기치료 및 심리치료에도 활용하곤 하는데 레인보우룸에 여러 가지 빛을 조사하고 그 빛을 통해 치료하는 방법 등이 사용되곤 한다. 원리는 색마다 고유의 파장이 있고 그 파장은 인간의 신체와 연결하여 각 부위에 맞는 색을 취하여 치유하는 방법으로 심리적 치료 효과라 볼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