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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 케너 "정경화는 파트너…조성진에선 겸손함 배워"

김미경 기자I 2016.08.02 06:16:00

5년째 평창대관령음악제 찾은 美 피아니스트
"나를 버리고 음악만 남기는 게 좋은 연주"
2011년 정 자매와 트리오 인연후 음악 동반 관계
조성진 레슨, 음악 해석 보며 감동 얻는다
3일 정경화와 협연, 6일 아티스트의 대화 참여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는 “연주가로서 듀오를 할 때는 귀가 민감해야 한다. 특별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반면 독주는 내면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좋은 연주는 내 개성을 돋보이는 게 아니라 나를 버리고 음악만 남아 있게 하는 상태”라고 말했다(사진=평창대관령음악제).


[평창(강원)=이데일리 김미경 기자] 2011년 7월 29일 폭우가 내리던 밤.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리조트 콘서트홀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평창대관령음악제의 주축이라 할 ‘저명연주가 시리즈’ 무대에서 음악제 공동예술감독인 정명화(첼리스트)·경화(바이올리니스트) 자매가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브람스의 ‘피아노 삼중주 1번’ 협연을 끝낸 직후였다. 관객은 참았던 갈채를 쏟아냈고, 네 차례의 커튼콜로 연주자를 불러냈다. 이날 연주에서 화제에 오른 인물은 협연을 함께한 미국인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53)였다. 정명훈을 포함한 정트리오 외에는 좀처럼 삼중주를 하지 않던 두 자매를 긴밀한 호흡으로 이끈 케너의 연주는 많은 이들의 뇌리에 박혔다.

케너가 올해도 평창대관령음악제를 찾았다. 2011년 첫 인연 이후 5년 연속 방문이다. 그는 지난달 28일부터 오는 7일까지 열리는 음악제 저명연주가 시리즈에서 3일 알펜시아리조트 콘서트홀에 올라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을 들려준다.

지난달 31일 평창에서 기자와 만난 케너는 “2011년 당시 정명화(72)·경화(68)가 나를 초대해 놀랐다. 한국 방문은 처음이었다”면서 “이후 계속 음악제에 참여하면서 음악적 예술적으로 내 인생이 바뀌었다”고 웃었다. 이어 “음악제별로 독특한 개성이 있는데 평창대관령음악제만의 특징은 보다 친밀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라며 “여러 연주자와 만나면서 관계를 맺으며 음악적 풍부함이 생겼다. 실내악의 특별함이 아닌가 싶다”고 귀띔했다.

◇정경화와의 인연…평생 파트너 찾다

평창대관령음악제는 그에게 의미가 각별하다. 평창에서 첫 인연을 맺은 후 정경화와는 줄곧 파트너로 지내고 있다. 2014년 명동성당에서의 치유음악회나 세월호 참사 추모연주, 2013년, 2015년 리사이틀에도 함께했다. 정경화 하면 이제 그가 떠오를 정도다.

이에 정경화는 “음악적 파트너를 찾는 건 천생연분을 만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라며 “케너와는 하늘이 내린 선물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호흡이 잘 맞는다. 새로운 음악인생을 열어준 완벽한 음악적 동반자”라고 극찬했다. 케너는 “이제 정경화와는 5년을 함께했다. 소리는 영혼을 반영한다고 생각하는데 5년간 협연하면서 하나의 소리를 이루는 과정을 느꼈다. 예술적 관계의 발전은 늘 보람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지속적인 파트너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은 무엇일까. “2011년 정경화가 있는 뉴욕 스튜디오에 자주 놀러가 함께 음반을 들었는데 바이올리니스트 폴 마카노비츠키와 피아니스트 노엘리 연주에 매료된 적이 있다. 우리가 찾던 사운드였다. 20년이 걸려도 이런 소리를 한번 내보자고 이야기했다. 공동의 지향점이 생겼다.”

다만 두 사람이 목표에 어느 정도에까지 왔는지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 대답할 수 있는 건 5년 전보다 나아졌다는 거다. 듀오를 하면서 서로 이해가 깊어지고 대화하듯이 자연스럽게 반응하게 된다.”

◇쇼팽스페셜리스트가 본 조성진

케너는 1990년 클래식콩쿠르의 양대 산맥인 쇼팽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상과 폴로네즈상을, 같은 해 차이콥스키국제콩쿠르에서 동메달을 동시에 차지하며 세계 음악계 큰 주목을 받았다. 미국인으로서 게릭 올슨 이후 20년 만에 등장한 쇼팽콩쿠르 입상자이자 쇼팽과 차이콥스키에서 동시에 입상한 유일한 미국인 피아니스트다. 쇼팽스페셜리스트란 수식어가 붙었다. 나아가 그는 라벨·슈만·베토벤·피아졸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녹음했고 BBC심포니, 베를린심포니, 할레오케스트라 등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연해왔다.

지난해 제12회 평창대관령음악제 ‘저명연주가 시리즈3’ 무대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와 케빈 케너(사진=평창대관령음악제).
지난해 한국 최초로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과도 인연이 깊다. 조성진은 대회를 앞두고 정경화의 소개로 케너의 레슨을 받았다. 지난 달 15일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조성진과 서울시립교향악단 협연에도 정경화와 함께 참석했다. 케너는 “조성진도 2011년 음악제에서 처음 만났다. 18살이었는데도 쇼팽 연주의 예민함과 테크닉이 특출나더라”고 회상했다. 이어 “조성진이 개인적으로 발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서 좋았다. 한편으론 음악을 이렇게 재해석해 발전할 수도 있구나 하는 겸손함이 생겼다. 조성진은 이 세대서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진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라고 칭찬했다.

클래식 꿈나무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탐구하고 실험하고 연구하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험은 매우 중요한 자산이다. 곡을 내 음악으로 만드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정경화와의 브람스 연주·내년엔 첫 독주회도

케너는 지난달 31일 음악제에서 호른연주자 윌리엄 퍼비스, 바이올리니스트 이유라와 함께 브람스의 ‘호른 3중주’를 연주했다. 이어 3일에는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정경화와 함께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6일에는 평창홀에서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아티스트와의 대화에 참여해 진솔한 이야기를 나눌 참이다. “너무 계획적인 건 싫더라. 손열음과는 먼저 만나 얘기해볼 생각이다. 주제는 열려 있을 것 같다. 흘러가는 대로 해볼 생각이다.”

케너의 독주회를 볼 기회도 생긴다. 2017년 3월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한국 첫 리사이틀을 연다. 최근 관심이 많은 쇼팽 후기작품과 내년 초 워너클래식을 통해 발매할 예정인 음반 수록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연주회는 늘 바뀌어도 철학은 항상 분명하다. “연주에서 중요한 건 곡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태어났던 그대로를 부활시키되 재해석하는 신선함도 있어야 한다. 좋은 연주란 내 개성을 돋보이는 게 아니라 나를 버리고 음악만 남기는 상태라고 생각한다.”

케너는 평창대관령음악제의 강점으로 청중은 물론 연주자 간 친밀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정경화, 조성진도 음악제를 통해 만났다. 관계는 음악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풍부하게 만든다”고 말했다(사진=평창대관령음악제).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사진=평창대관령음악제).
지난달 31일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콘서트홀에서 열린 평창대관령음악제 저명연주가 시리즈 다섯번째 무대에 올라 브람스의 ‘호른 트리오 E플랫 장조, op.40’를 연주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바이올리니스트 이유라, 호른 연주자 윌리엄 퍼비스(사진=평창대관령음악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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