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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 하는 것처럼 애교를 부려달라는 심사위원의 요청에 정혜승(30·사법연수원 41기) 창원지법 통영지원 판사가 귀여운 손짓과 함께 보여준 모습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양재동 서울가정법원에서는 연극 ‘여보 고마워’ 출연해 판사 연기를 할 법관을 뽑기 위한 오디션이 열렸다. 현직 판사들이 연극 출연을 위해 단체 오디션을 본 것은 사법부 사상 처음이다.
이날 오디션에는 서울, 인천, 의정부, 평택, 통영 등 전국 각지에서 온 현직 판사 8명이 참가했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공통과제로 주어진 10줄 가량의 짧은 대사를 중간에 잊어버려 대본을 다시 보는 등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부 참가자는 대사 중간 심사위원이 “이만 됐다”고 끊자 탈락을 예상한 듯 표정이 어두워지기도 했다.
8명의 참가자 중 단연 돋보인 이는 다수의 연극과 영화에 출연한 배우 출신 김용희(37·34기) 수원지법 평택지원 판사였다. 김 판사는 군법무관 시절인 2006년에도 ‘미라클’이라는 연극에 출연해 23회 강원연극제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날 김 판사는 뛰어난 발성과 무대 활용, 춤 실력 등으로 심사위원을 사로잡았다. 고혜정 작가는 “판사가 아니라 나와 함께 작품을 하셔야 할 분이다. 마치 찰리 채플린 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김 판사는 오디션 인터뷰에서 “전업배우로 살아가는 것을 고민해 본 적이 있었는데 연극무대에 서는 배우들이 너무 어렵게 사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접었다”며 “함께 연기했던 선후배들에게 술 한잔 하자고 연락하면 가끔은 술값이 아닌 차비가 없어서 못 나가겠다고 하는 분도 있다”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는 “판사라는 직업이 생각보다 재미있다. 즐겁게 일하고 있다. 하지만 일이 너무 많고 판결에 온전히 몰입할 시간을 주지 않는 것은 문제다. 더 재밌게 일할 수 있도록 시간을 줬으면 좋겠다”고 은근한 항의를 해 좌중을 폭소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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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를 맡은 고혜정 작가, 노준성 감독, 신주선 대표, 정승원 부장판사(부모교육연구회장), 신순영 판사 등은 오디션 직후 곧바로 출연자를 선정할 예정이었으나 심사위원간에 의견이 갈려 결정하지 못했다. 법원은 심사를 거쳐 추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연극 ‘여보 고마워’는 경제력 없는 만년 고시생 남편 때문에 생계를 책임져온 아내가 이혼위기를 맞지만 결국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관계를 회복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대법원 산하 부모교육연구회는 가족해체를 줄이고 협의 이혼하는 부부를 대상으로 효과적인 부모교육 방법을 고민하다 현직 법관을 직접 연극 무대에 올리는 아이디어를 냈다. ‘여보 고마워’는 5월 20일부터 7월 2일까지 서울 문화일보홀에서 상연된다. 법원은 협의 이혼을 앞둔 부부에게 관람 기회를 제공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