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문정현 기자] 2011년 3월24일 오후 2시20분.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공무원 5명이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급습했다. 휴대폰을 공급하는 과정에서 보조금을 감안해 일부러 가격을 높게 책정한 것은 아닌지 조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조사는 출입구에서부터 막혔다. 조사 공문을 내밀었지만 보안직원은 “내부 규정상 사전 약속을 하지 않으면 담당자가 나와야 출입이 허용된다”며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조사 공무원들이 진입을 시도하자 직원들이 저지했고 결국 옥신각신 몸싸움이 벌어졌다.
같은 시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박 모 지원팀장은 공정위가 불시에 방문했다는 연락을 받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서둘러 직원들에게 자료를 폐기하라고 지시하고 관련 자료가 저장돼 있는 컴퓨터 3대를 다른 컴퓨터로 바꿨다.
조사 대상이던 김 모 부서장은 조사 공무원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지만 서울 본사에 출장 중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자리를 떴다. 조사관의 의도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파악하기 전에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른 직원들도 삼삼오오 사무실을 비우기 시작했다.
오후 3시10분. 조사공무원들은 겨우 현장에 도착했지만 사무실에는 단 한 명의 직원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조사를 진행할 수 없었던 공정위 공무원들은 결국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장소로 피신해 있던 김 부서장은 슬그머니 자리로 돌아와 숨겨뒀던 PC를 꺼내 조사대상 자료를 지우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 미리 세워뒀던 시나리오대로 착착 이뤄졌다.
하지만 공정위의 집요한 조사로 이들의 조사방해 행위는 결국 들통 났다. 후에 김 부서장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윈도 검색기능에서 SK텔레콤 관련 검색을 해 관련 파일을 다 지웠다”고 실토했다.
공정위는 “나날이 교묘해지는 기업들의 조직적인 조사방해 행위를 엄중히 제재하기 위해 법상 최고 한도액의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이번 조치에 대해 “유감스러운 일로 생각하며 앞으로 공정거래법 등 관련 법 준수와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