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신촌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하는 박모(46)씨는 최근 한 중고거래 모바일 앱에 노래방 반주기를 100원에 판매한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6개월 이상 계속된 집합금지로 영업을 못 한 탓에 기계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수리비를 내고 고쳐야 하는데, 장사를 계속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 결국 폐업 후 헐값에라도 기기를 처분하기 위해서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며 폐업을 하거나 준비 중인 자영업자들이 처분할 수 없는 기기와 주방도구, 소품들을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거래하고 있다. 이들은 “단돈 1000원도 아까워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물건들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
◇‘수세미·물컵 팝니다’…당근마켓에서 폐업 세일하는 자영업자들
성동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이모(49)씨도 최근 퇴근 후 매장에 있는 키보드를 닦는 게 일상이 됐다. 이씨는 코로나19로 계속되는 정부의 영업규제에 지쳐 20여년 간 운영한 매장을 올해 상반기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이씨는 올해 초부터 매장에 있는 기계식 키보드를 개당 1만원에서 1만 5000원 사이 가격으로 중고마켓에 올려 팔기 시작했다. 키보드뿐 아니라 3만원 짜리 헤드셋은 3000원에, 마우스는 7000원꼴에 판매했다.
이씨는 “하루 10만원도 벌지 못하다 보니 만원에라도 키보드를 파는 게 매출을 메우는 데 보탬이 된다”며 “전문 업체에서는 무겁고 번거로워서 잘 가져가지 않으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중고 플랫폼에 물건을 팔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중고장터에 ‘폐업’, ‘업소’ 등의 키워드로 검색하니 ‘코로나19로 가게를 정리하게 돼서 물건들을 싸게 내놓는다’는 게시글이 여럿 있었다. 업소용 국자, 스테인리스 수세미, 식당용 물컵 등 주방용품들이 1000~5000원 사이에 거래되고 있었다.
주방 집기를 판매한다는 글을 올린 한 판매자는 “큰 물품뿐 아니라 집게, 저울 등 작은 물건들을 팔아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중고 거래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
◇“매출 마이너스인데 물건도 안 팔려 속상”…휴업·폐업 지원책 촉구
이미 폐업한 업체들이 너무 많아 전문 처리 업체에서도 물건을 잘 사려고 하지 않아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중고 장터를 찾게 됐다. 박씨는 “업체에서 스피커나 반주기는 아예 받지도 않는다고 해서 앰프만 20개 넘게 보냈는데 그중에서도 10개만 하나에 만원씩 쳐 주더라”라며 “살 때는 백만원 넘게 주고 산 것들을 만원씩 팔아서 결국 16만원만 주머니에 남았다”고 토로했다.
3년 동안 운영하던 카페를 정리하고 폐업하기로 결정한 김모(30)씨도 “코로나로 생계가 어려워져 폐업하는 분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며 “처리 업체에서도 물건을 가져가지 않으려고 하거나 정말 고철 값만 준다고 하니 속상해서 차라리 조금씩이라도 중고거래를 통해 팔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 이후 폐업이 속출하며 국내 자영업자 숫자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많이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1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연평균 자영업자 수는 총 554만 1000명으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전인 1994년 537만 6000명 이후 가장 작은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3년 간 자영업자 감소폭 역시 작년(7만 5000명)이 가장 컸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로 인한 생계 어려움으로 폐업까지 하게 돼 울분을 토했다. 박씨는 “집합금지를 당하면서 영업을 하지 못한 채 고정지출이 나가게 된 것도 속상한데, 제값도 받지 못하고 물품들을 팔면서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났다”며 “논의되고 있는 손실보상에 폐업 업체도 포함시키는 등 적절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김씨 역시 “대출 때문에 폐업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휴업한 자영업자나 폐업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를 살릴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줬으면 좋겠다”고 털어놓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