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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중소기업계에선 코로나19로 인해 경영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유보금에 세금까지 부과한다는 데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정부는 개인 유사법인을 겨냥한다고 하지만, 오너 지분율이 높은 상당수 비상장 중소기업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올해 조세특례법 개정안에 ‘개인 유사법인의 초과 유보소득 배당 간주’를 신설,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80% 이상인 법인을 사실상 개인사업자로 보고 세법상 ‘개인 유사법인’으로 정의했다. 개인 유사법인을 일반적인 주주 구성을 갖춘 법인으로 보기 어렵고, 조세 회피 목적이 있다고 본 기재부는 이들 개인 유사법인이 적정 유보소득 이상을 쌓아두면 여기에 배당소득세를 매기기로 했다.
이는 법인세율(현재 최고 25%)과 소득세율(최고 42%) 간 차이에 따라 소득세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최근 1인 주주 법인, 가족법인 등 개인사업자와 다를 게 없는 법인이 증가하는 데 따른 조치다. 이를 통해 개인사업자와의 세 부담 형평성을 제고하는 한편, 조세 회피를 방지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문제는 비상장 중소기업 중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80% 이상인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비상장 중소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법인의 초과 유보소득 과세에 대한 중소기업 의견’을 조사한 결과,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회사 지분이 80% 이상인 기업은 49.3%에 달했다. 비상장 중소기업 절반이 이에 해당하는 셈이다. 유보금을 적립하는 이유로는 ‘미래투자 및 연구개발, 신사업 진출을 위해서’라는 응답이 48.4%로 가장 많았다. 이어 ‘경기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해’(27.5%), ‘최저임금, 임대료 등 사업비용 상승에 대비하기 위해’(22.0%) 등 응답이 이어졌다.
특히 초과 유보소득 과세가 기업 경영에 악영향을 미치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그렇다’는 응답이 71.4%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아니다’라는 응답이 22.0%,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6.6%였다. 초과 유보소득 과세를 반대하는 이유로는 ‘기업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다’(45.1%), ‘유보금을 활용한 투자와 연구개발, 신사업 진출 등이 위축될 수 있다’(34.2%) 등의 답변이 많았다.
중소기업들은 정부가 현금유동성이 아닌, 투자자산과 재고자산 등을 포함하는 유보금을 기준으로 하는 것도 문제로 꼽았다. 설비 등에 투자하느라 당장 돈이 없는데도 소득금액이 많다는 이유로 세금을 강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충남에서 금속부품업체를 운영하는 B씨는 “기계를 바꾸는데 투자한 금액도 유보금이다. 외상 매출 역시 포함된다”며 “이러한 이유로 유보금이 큰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실상 현금은 적다. 유보금 전체는 10% 미만이다. 설비를 현금화해서 세금으로 내라는 말인가”라고 말했다.
법망을 피하기 위한 편법도 예상된다. 비상장 중소기업들은 유보소득 과세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유보금을 줄일 것(23.2%) △배당을 늘릴 것(15.4%) △최대주주 지분율을 낮출 것(12.1%) 등 응답이 있었다. 이러한 폐단을 막기 위해 관련 법 시행 이전에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들은 관련 제도 개선점을 묻는 질문에 ‘편법이나 탈세 등 문제가 되는 기업에 과징금 등을 부과하는 사후규제로 전환돼야 한다’는 의견이 54.3%로 가장 많았다. 이어 ‘과세 걱정 없이 유보금을 적립할 수 있도록 적정 유보소득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34.0%), ‘법 적용 대상을 축소해야 한다’(11.7%) 등 의견이 이어졌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중소기업에게 사내유보금은 투자 기회나 예상치 못한 경영위기가 찾아올 때 활용할 수 있는 일종의 ‘비상금’ 역할을 한다”며 “사내유보금을 많이 쌓아두었다는 이유만으로 과세를 한다면 기업이 미래를 준비하고 대응하는 것이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당장은 세금을 더 걷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업의 연구개발이나 설비투자, 일자리 창출 여력이 줄어들어 실익보다는 부작용이 우려되는 초과유보소득 배당 간주 방침은 충분한 논의를 통해 도입 여부를 신중히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