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절을 꼬박 이어간 협상 끝에 남북은 다음달 11일 개성공업지구(개성공단)에서 남북 차관급 회담을 열기로 했다. 북한의 무력도발과 남북간 긴장고조에 따른 고위급 접촉의 성과물인 8·25 합의 첫번째 조항이 석달만에 이행되는 것이다.
이번 회담의 격(格), 장소, 의제 등 구체적인 사항들에 대해서는 다소 아쉽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지만 일단 8·25 합의를 일궈냈던 남북간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갔다는 면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남북간에 ‘대화-협상-합의-이행’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고리가 만들어졌고 남북관계의 정상적인 틀로 자리 잡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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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전문가들은 12월11일에 열릴 1차 남북당국간 회담을 비롯해 이어지는 회담이 ‘회담을 위한 회담’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회담의 격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르는 것도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우려에서다. 당장 우리측이 가장 시급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나 북측의 관심사인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같은 굵직한 현안들을 차관급 회담에서 ‘결단’을 내릴 수 있겠냐는 것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남북이 차관급 당국회담이라도 개최해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현안 문제를 논의하기로 한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장관급에서 타결할 수 있는 것과 차관급에서 타결할 수 있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이는 남북 당국의 유연성과 강력한 대화 의지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실장은 “한국정부가 이산가족 문제의 획기적인 해결을 원한다면 장관급 회담을 추진하거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통일부장관, 북한의 총정치국장과 대남 비서가 참가하는 고위급 접촉(2+2)을 재개해 남측이 희망하는 이산가족 생사 전면 확인과 상봉 정례화 및 북한이 희망하는 금강산관광 재개와 5.24 조치 해제를 가지고 빅딜을 추구하는 보다 대담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 정부 당국자는 “우리측에서는 처음부터 이번 당국회담의 수석대표를 차관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며 “8·25 합의의 후속조치로 추진되는 회담인 만큼 보다 실무적인 문제를 실질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틀을 생각했고 차관급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 남북 당국회담을 이끌 우리측 인사로는 주무부처인 통일부 차관을 맡고 있는 황부기 차관이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밖에도 청와대측 관련 차관급 인사로 김규현 외교안보수석과 조태용 국가안보실 1차장 등도 가능성이 있다 .
◇ “남북 모두 상부 지시 받아야”…형식 보다는 내용이 중요
앞으로 열리게 될 일련의 남북 당국회담에서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포괄적인 이슈를 다루기로 한만큼, 새로운 의제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사항을 협의하기 위해서도 장관급 이상의 고위급 회담이 열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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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남북 당국회담은 틀은 기본적으로 차관급 회담으로 가지만, 필요한 경우 장관급 이상의 회담을 열어서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열려 있다는 의미다.
한편, 회담의 급(級)에 연연하기 보다는 회담의 내용을 내실있게 가져갈 수 있도록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조언도 설득력이 있다.
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현 상황에서는 남북 회담의 급에 대한 의미가 없다. 장관이 나가든 차관이 나가든 청와대의 지시를 받는 것은 같은 입장”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북한에서도 고위급 회담을 할 만한 환경은 조성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8·25 합의 사항을 이행과 남북관계 개선 도모라는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차관급 대화도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면서 다양한 의제를 타진해 볼 수 있는 유효한 틀”이라며 “우선은 차관급에서 대화가 진행돼 가는 양상을 보면서 급(級)을 올리거나 장소를 평양 등으로 바꿔서 개최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열려 있는 것”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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