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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국방부에 따르면 올해 7월 현재 여군의 수는 9783명이다. 장군 2명, 영관급 731명, 위관급 3867명, 원사 23명, 상사 416명, 중사 2085명, 하사 2659명 등이다. 군 당국은 올해 말 여군 수가 1만 120여명선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2020년이면 전체 인력대비 여군 비율이 장교의 7%, 부사관의 5%를 넘어서는 1만 2100여명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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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 초 남군 지원 임무에 치중
여군이 군내에서 남군과 동등한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지는 불과 20년 밖에 되지 않는다. 여군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9월 여자 의용군교육대 창설로 군의 공식적인 일원이 됐다. 창설 초 여군들은 정훈 대대, 전투 중인 군단·사단, 첩보부대, 예술대에서 활동했다.
전쟁이 멈추고 여군이 하나의 병과로 통합되면서 역할은 더욱 축소됐다. 주로 행정지원 분야에서 근무했다. 전쟁 이후로도 제대하지 않은 여군들은 기초군사훈련만 받았기 때문에 숙달된 주특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한글 타자기가 개발되면서 여군은 행정기술 분야에 더욱 많이 기용됐다. 군의 입장에서는 더 많은 남군을 전투분야에 투입하면서 여군의 장기 복무도 보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6.25전쟁 이후부터 1990년대까지는 여군의 암흑기였다. 타자병으로 행정업무를 지원하거나 부상자에 대한 간호 임무만을 수행했다. 군내에서도 주류가 되지 못했다. 커피심부름에 동원되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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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여군의 제2창군기는 1990년 여군병과가 해체되면서 시작됐다. 보병, 정보 등 7개 병과가 여군에게도 개방됐으며, 1993년에는 첫 여성 육군 야전부대 신병교육대대 소대장이 탄생했다. 1997년에는 공군사관학교가 여생도의 입교를 허용하기 시작해 1998년 육군사관학교, 1999년 해군사관학교가 첫 여생도를 받았다.
1990년대는 전세계적으로도 여군의 군내 진출은 활발해지던 시기였다. 원래 미군도 여군의 군내 진출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았다. 여성의 전투 부대 근무는 부대의 전투준비 태세를 약화시키고 유사시 인명손실을 초래할 가능성이 큰데다, 별도의 물질적·정신적 배려를 필요로 하는 등 지휘관의 부담이 가중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1994년 미군은 보병, 기갑, 특전사, 포병 부대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여군 진출을 허용했다.
여군 창설 65주년을 맞는 현재 우리 여군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복무 중이다. 육군에서는 지난해 여성 포병장교 9명과 방공장교 2명이 탄생했다. 해군에서는 2012년 최초의 여성 고속정 정장이, 지난해는 최초의 여성 해상작전헬기 정조종사가 탄생했다. 공군은 2002년 최초의 여성 전투기 조종사, 2004년 첫 여성 헬기조종사가 나오는 등 거의 전 분야로 여군의 활동 범위를 넓히는 중이다.
다만 남성 위주의 조직 내에서 여군이 겪어야 하는 고충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성추행·성희롱 등 성폭력 문제와 주거, 임신, 육아와 관련된 고충이 가장 크다. 특히 성범죄와 관련해서는 여군이 사각지대에 높여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백군기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방부로부터 제출받은 ‘여군이 피해자인 사건 현황’을 보면 2011년부터 2015년 상반기까지 강간, 강간미수, 몰카촬영 등 재판이 끝난 여군 대상 성범죄 94건에 중 단 8건(8.5%)이 인신구속이 가능한 실형 판결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