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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성곤 기자]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한국 정치의 아픈 손가락이다. 여전히 우리 정치가 풀어야 할 숙제다. 대선 승리의 기쁨은 잠시였다. 대통령 5년 임기 내내 “과격하고 불안한 아마추어 대통령”이라는 비아냥에 시달렸다. 실용적인 접근으로 볼 수도 있었지만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 결과는 혹독했다. 한나라당은 물론 민주노동당까지 진보·보수의 융단폭격이 그칠 날이 없었다.
무늬만 대통령이었다. 의아스러운 점은 어느 순간 여권 내부가 ‘대통령 방어’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점이다. 과반이 무너진 후 열린우리당 상황은 걷잡을 수 없었다. 선상반란이 끝없이 이어졌다. 대통령은 결국 열린우리당 탈당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2007년 대선 참패는 오롯이 ‘노무현’의 책임이었다. 드라마틱한 반전은 퇴임 이후 일어났다.
현실은 정말 극적이었다. 대통령 노무현은 한때 경멸과 조롱의 대상이었다. 뭘 해도 노무현 탓이었다. “야 기분좋다”고 외치며 고향 봉하마을로 내려온 이후 모든 게 변했다. ‘고집 불통의 독선적인 대통령’은 어느새 ‘친근한 이웃집 할아버지’로 이미지가 달라졌다. 대통령 노무현은 모든 게 그대로였지만 국민적 인식은 180도 달라졌다.
을이었던 대통령이었다. 물론 대통령은 정치권력의 ‘갑 오브 갑’이다. 다만 노무현의 현실은 을이었다. 무엇보다 권력에 대한 집착이 덜했다. 대연정 제안이 대표적이다. 지역주의 타파를 명분으로 권력 절반을 통째로 넘기겠다는 각오였다. 곧바로 거부당했다. 지나친 이상론이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돌이켜보면 힘들지라도 가야만 했던 길이었다.
다다익선. 무릇 의석수는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은 최상의 성적표를 얻었다. 애초 원내 1당마저 힘들다는 건 기우였다. 과반을 넘어 패스트트랙 무력화가 가능한 180석을 얻었다. 단독 개헌을 제외하고 모든 게 가능한 의석이다. 민주당의 국정책임은 더 커졌다. 야당의 발목잡기 때문이라는 핑계는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
시간이 적잖게 흘렀다. 참여정부의 마지막과 문재인정부의 시작은 1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는다. 한때 폐족으로 불렸던 ‘친노’는 한국정치의 주류인 ‘친문’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진보·보수 이념지형도 뒤바뀌었다. 문재인정부의 조건은 최상이다. 행정·의회·지방권력을 모두 장악했다. 문재인정부는 참여정부 시즌2다. 무엇보다 성과를 내야 한다.
추억이 늘 아름다운 건 아니다. 대통령 노무현은 새시대의 첫차를 희망했지만 구시대의 막차에 머물렀다며 아쉬워했다. 11년 전의 현실은 살벌했다. 비극적인 최후에 많은 이들이 죄책감에 시달렸다.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는 해마다 5월이 되면 크고작은 소란이 일었다. 초대받지 못한 손님들 때문이었다. 다행히 올해는 예외였다.
억수같은 장대비가 내렸다. 2009년 5월 24일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노무현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한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길고 긴 조문행렬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일부 조문객들은 성난 사자였다. 분노와 울분이 메아리치는 가운데 몇몇 정치인들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현직 대통령이 보낸 조화마저도 훼손될 정도였다.
한국 정치사의 한 페이지에는 ‘노무현’이라는 이름이 뚜렷하게 각인돼 있다. 어쩌면 ‘대통령 노무현’보다 더 빛나던 시절은 ‘바보 노무현’ 때였다. 지역주의 타파와 권위주의 청산이라는 프레임으로만 그를 가둬놓을 수는 없다. “이의 있습니다”라고 외치던 순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 순간은 두려움 없이 갈 길을 갔던 정치인 노무현의 ‘화양연화’다.
다시 노무현이다. 그리고 노무현은 곧 문재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5월 23일 8주기 추도사에서 “현직 대통령으로서 참석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이어 “반드시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다시 찾아뵙겠다”고 다짐했다. 약속을 이행하면 문 대통령은 2022년 5월 23일 봉하마을을 찾는다. 두 사람은 과연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