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장에서 퇴출당한 기업에 4개월 동안 증권 발행을 제한한다? 허공에 발길질이요, 감옥 간 죄수에게 징역형을 선고한듯한 이런 어정쩡한 징계가 왜 지금에서야 나왔을까요.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골든브릿지저축은행은 지난 2012년 3월말, 분식회계로 당기순이익과 자기자본금을 94억원 가량 부풀렸습니다. 원래는 93억 8000만원 규모의 순손실을 냈는데 2500만원의 흑자를 낸 것으로, 자기자본금은 86억원에 불과한데 18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회계장부를 조작했던 것이지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요? 금융회사가 자주 쓰는 수법은 돈 빌린 사람이 갚을 능력이 없는데도 갚을 능력이 있는 것처럼 속이는 것입니다. 빌려준 돈이 여러 달 동안 연체되면 아예 떼일 것을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쌓아둬야 하는데요, 이렇게 쌓은 돈은 당기순이익에서 고스란히 사라집니다. 골든브릿지저축은행도 대손충당금을 51억원 가량 쌓아야 했지만, 이를 간단히 무시했습니다.
이 저축은행은 또 당시 동양저축은행과의 약정금 지급과 관련한 민사소송이 있었는데요, 소송에서 지면 변제공탁금 18억 7500만원을 손실로 처리해야 하지만, 이것도 그냥 넘겼습니다. 이런 식으로 손실로 처리하지 않은 돈이 총 94억여원에 달했던 것이지요.
2012년은 자본금이 바닥난 부실 저축은행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져가던 시절이었습니다. 골든브릿지저축은행이 정직하게 회계처리를 했다면 회사를 빨리 건전하게 만들라는 금융당국의 주문인 적기시정조치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지만, 분식회계를 하면서 이런 조치를 면하게 됩니다. 거짓으로 부풀린 금액을 뺀 자기자본비율(자기자본/총자산)을 단순 계산하면 2.53%인데요, 금융당국은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5%가 안 되는 곳은 강제력을 동원해 경영개선을 명령할 수 있습니다.
금융감독원은 당시 골든브릿지저축은행의 분식회계 혐의를 적발했고, 이를 수정토록 했습니다. 하지만 증선위에 상정해 ‘증권발행제한 4개월’이라는 최종 징계가 내려지기까지는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만약 혐의가 발견된 즉시 분식회계 조사가 이뤄지고 증권발행제한 조치가 내려졌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이렇게 했더라도 비상장사인 골든브릿지저축은행에는 ‘하나마나한 징계’가 됐을 것입니다. 금융당국의 증권발행제한 조치는 주식시장에서 공모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행위만 제한할 뿐 사모로 조달하는 것은 제한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주식시장에 상장되지 않은 비상장사들은 공모로 자금을 조달할 일도 없기 때문에 마치 야채가게에 ‘소고기 판매 금지’와 같은 조치를 내린 겁니다.
골든브릿지저축은행은 2012년 한 해에만 최대주주 골든브릿지를 대상으로 세 차례 유상증자를 해 총 80억원을 수혈받았습니다. 가까스로 산소호흡기를 달고 2년여를 버텨오는 동안 대주주는 물론 계열사들의 재무구조까지 나빠진 것입니다. 분식회계 관련 조치를 조속히 했더라도 이런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미뤄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효성 없는 제재와 함께 분식회계 조사에 2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은 우리나라 회계감독 시스템의 취약성을 보여줍니다. 금감원은 발 빠르게 분식회계 조사가 이뤄지기 어려운 원인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력을 꼽습니다. 분식회계 조사를 담당하는 금감원 회계감독국 인원 30여명으로는 1900개가 넘는 상장사와 금융회사의 회계분식을 실시간 감시하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법을 위반한 금융회사의 제재 안건을 상정하는 제재심의위원회는 금감원 산하에 있지만, 분식회계 조치 안건을 상정하는 감리위원회는 금융위 산하에 있기 때문에 금감원보다 더 적은 인원에 업무 부담도 만만찮은 금융위가 신경을 쓰지 못하면 분식회계 제재는 더욱 후순위로 미뤄지게 됩니다.
정부가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것도 경계해야 하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원을 두고서 금융범죄를 척결하겠다고 큰소리치는 것도 공허한 메아리일 것입니다. 3년 전 분식회계를 저지르고 시장에서 사리진 곳을 이제야 징계한 골든브릿지저축은행의 증선위 조치는 우리나라의 회계 투명성이 왜 세계 꼴찌 수준을 면하지 못하는지를 보여주는 표본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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