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2년 03월 05일자 8면에 게재됐습니다. |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국내 기름값이 사상최고치로 치솟으면서 서민들의 고통을 줄이려면 유류세를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류세를 낮추면 서민들은 혜택을 볼 수 있을까.
현재 휘발유를 기준으로 유류세가 기름값의 절반인 930원 정도다. 유류세를 10% 정도 덜 걷으면 당장은 리터당 100원 가까이 아낄 수 있다. 그렇다 해도 모든 국민이 같은 혜택을 보는 것은 아니다.
실제 기름값이 오르면서 서민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차를 잘 쓰지 않는다. 반면 형편이 넉넉한 사람은 기름값에 상대적으로 둔감한데다 기름을 많이 먹는 큰 차를 탈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차를 자주 쓰는 고소득층이 유류세 인하정책의 가장 큰 수혜를 받게 된다. 이런 점 때문에 일부에서는 유류세 인하를 서민들의 세금으로 부자들의 기름값을 지원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또 하나 생각해봐야 할 게 구멍 나는 세수다. 유류세를 10% 정도 낮추면 2조원 가량이 세금이 비게 된다. 어디에선가 더 걷어 2조원을 메우거나, 유류세를 걷어 지원하던 교육 예산 등을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2조원을 채우려면 근로자나 자영업자에게서 더 걷는 수밖에 없다"면서 "결국 오른쪽 주머니에서 돈을 빼 왼쪽 주머니로 옮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정유사나 주유소 입장에서도 유류세 인하는 남는 장사다. 기름값이 급하게 오르면서 정유 4사 과점체계나 불투명한 기름 유통구조에 쏠린 이목을 잠시 돌릴 수 있다. 기름값이 낮아지면 아무래도 국민의 관심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은 기름값 고공 행진에 따른 논란이 가열될 때마다 기름값을 낮추려면 유류세를 내려야 한다고 거듭 주장해왔다.
주유소 입장에서는 유류세 인하분을 시차를 두고 기름값에 반영해 이득을 극대화할 수 있다. 지난 2008년 유류세를 인하했을 때나 지난해 정유사가 기름값을 100원 낮췄을 때 실제 소비자에게 돌아간 혜택은 인하분의 60~70% 정도였고, 나머지는 유통 과정에서 사라져버렸다.
결국 유류세를 일률적으로 낮추는 것은 서민보다는 고소득층이나 정유사·주유소 지원책에 가깝다. 따라서 유류세 인하 보다 생계형 운전자를 포함한 취약계층의 유가 부담을 줄이는 정책에 먼저 초점을 맞추는 게 효과적이다.
정부도 기름 소비를 가급적 줄이도록 유도하면서 유가 인상 탓에 어려움을 겪는 계층에 에너지바우처나 에너지보조금 같은 맞춤식 지원을 내놓는 게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