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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거리는 하늘나라 옷 저하고 잘 어울리나요?”

조선일보 기자I 2006.10.18 12:20:00

김태희, 액션 판타지 ‘중천’으로 스크린 첫 나들이

[조선일보 제공] 모델이 워킹하듯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들어오는 것이 도도하게만 보였다. 촬영장에선 ‘먹보’로 통한다는데 군살 하나 없으니 여성들에겐 ‘공공의 적’인 셈이다.

사실 그동안 이 여배우를 볼 때마다 뭔가 아쉬웠다. 빈틈없이 꽉 짜인 얼굴에, 완벽한 이미지는 배우 김태희보다 CF모델 이미지로 기억시켰다. 활달한 억척 여성, 액션, 악역까지 두루 거쳤지만 연기 폭이 넓지 않다는 지적도 많았다. 사실 ‘연기’라기보다는 큰 눈을 부라리며(?) 째려보는 장면이 우선 떠오르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까진 그런 역할들이 그녀에게 잘 맞지 않는 옷이었는지도 모른다. 12월 21일 개봉 예정인 액션 판타지 영화 ‘중천’에서 스크린 첫 주연을 맡은 그녀는 “정말 나를 위한 역할”이라며 들떠있었다. 첫 작품이라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촬영 내내 편안하고 행복해 힘든 줄 몰랐다고 했다. 중천은 불교의 49재(四十九齋)에서 착안한 상상의 공간. 영화 ‘비트’, ‘무사’ 등에서 조연출을 맡았던 조동오 감독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이승에서 정우성(‘이곽’ 역)의 연인인 ‘연화’였던 김태희는 중천에선 천인(天人)인 ‘소화’로 살아간다. “사람들은 절 그렇게 안보는데, 제가 사실은 되게 미성숙하고 철없는 부분이 많거든요. ‘소화’는 인간을 다스리는 게 아니라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갖고 있는 캐릭터예요.”

아무리 ‘애 같다’지만 소화는 하늘의 사람. 날아갈 듯한 의상만 봐도 영화 ‘천녀유혼’ 같은 몽환적 판타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전 왕조현처럼 요염하지 않잖아요. 편집되긴 했는데, 옷을 벗고 있는 정우성씨를 향해 ‘걱정 마, 천인은 정욕을 못 느껴’라고 말하는 대사도 있었어요.”

차갑고 도도하게만 보였던 그녀가 어느새 아이처럼 시원하게 웃었다.

완벽주의자일 것 같지만, 그녀 스스로는 ‘둔하고 감정이 무디다’고 한다. “원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연기자가 되기엔 감정이 풍부하거나 예민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이제 그렇게 살아보려고 노력 중이에요.”

▲ 영화 중천, 김태희와 의상을 맡은 일본인 에미 와다.

그녀는 ‘진짜’ 배우가 되고 싶다. 전형적인 미인형 얼굴과, 작게만 보이는 키 때문에 고민해보기도 했지만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보겠다’는 각오다.

“배우를 제 업(業)으로 택한 만큼 평생 해나갈 거예요. 연기는 절 인간적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매개체거든요.” 제 옷을 입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번 옷을 ‘딱 내 스타일’이라고 즐거워하고 있었다.

“일본에선 볼 수 없는 기품있는 배우”
영화의상 담당한 와다 에미씨가 본 김태희


“예전 같으면 기품 있고 아름다우면서도 명석한 배우들이 있었습니다만, 지금은 그런 존재를 찾기 힘듭니다. 일본에도 그런 배우는 없습니다. 하지만 김태희는 모두를 갖췄습니다.”

영화 ‘중천’의 의상을 담당한 와다 에미(70·사진)는 이렇게 말했다. 와다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난(亂)’으로 아카데미 의상상을 수상했으며 ‘영웅’, ‘연인’ 등을 통해 화려하고 우아한 의상으로 시선을 끈 거장이다. 50년 넘게 작업을 하면서 장쯔이(연인), 장만옥(영웅) 등 쟁쟁한 여배우와 일해 봤다지만 그녀의 김태희 사랑은 남달랐다. “김태희씨는 인내심이 강한데다 겸손하기도 합니다. 또 인간과 천인의 감정변화를 표현하는 고난도 연기를 아주 잘 해냈죠.”

와다는 1년간 170여명의 스태프와 함께 영화 의상 1000여벌을 손수 제작했다. “대본이 신선해 선뜻 응했습니다. 예전에 본 듯한 건 던져버리거든요.”

감독 못지않은 철학을 갖고 있는 그녀는 의상을 통해 영화를 단번에 설명해 냈다. 김태희의 천인 의상은 시간성이 배제됐기 때문에 흰색 직물을 쓴 대신 그물형 디테일을 덧대 하늘거림을 표현했고, 복숭아꽃잎 색의 결혼의상을 통해 연화와 소화의 마음이 합쳐지는 순간을 연출해냈다. 중천 의상 몇 점과 의상 제작과정을 담은 영상은 16일부터 12월 27일까지 서울 N남산타워에서 전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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