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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항로, 기후변화가 만든 상흔[최종수의 기후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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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수 기자I 2025.10.27 05:00:00

북극 얼음이 녹아 열린 뱃길, 지구 온난화 실체 직시해야
항로 단축·위험 지역 우회 등 물류효율화 이점 누리는만큼
기후위기 대응 노력 병행 필요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1859년 프랑스 외교관 페르디낭 드 레셉스(Ferdinand de Lesseps)가 이집트 사막을 관통해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바닷길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코웃음을 쳤다. 사막 한가운데 운하를 판다는 발상은 당시로서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그러나 그는 끈질긴 설득으로 투자자들을 모았고 불볕더위와 모래폭풍을 견디며 10년에 걸쳐 사막을 파냈다. 1869년 마침내 지중해와 홍해는 하나로 이어졌고 수에즈 운하가 탄생했다. 이 운하 덕분에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항로는 1만㎞나 단축됐고 세계 물류의 흐름은 완전히 바뀌었다. 인류의 불굴의 의지와 기술이 사막에 바닷길을 낸 것이다.

중국·유럽 잇는 북극항로 개통 행사(사진=중국 저장성 해양경제개발청 제공/연합뉴스)
그로부터 150여 년이 흐른 지금, 또 하나의 바닷길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항로를 여는 데는 중장비도 막대한 자본도 필요하지 않았다. 바로 북극항로다. 이번에 길을 낸 것은 인간의 땀과 기술이 아닌 인간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였다. 기후변화로 북극의 얼음이 녹아내리며 새로운 뱃길이 열린 것이다. 수에즈 운하가 인간 의지로 뚫은 길이라면 북극항로는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가 ‘저절로’ 열어준 길이다.

최근 중국은 저장성 닝보·저우산항을 출발한 선박이 북극항로를 이용해 영국 펠릭스토우까지 단 20일 만에 도착했다는 뉴스를 발표했다. 40일 가까이 걸리는 수에즈 운하 항로보다 20일이나 짧아졌다. 북극항로의 경제적 효과는 수에즈 운하 개통에 견줄 만하다. 더욱이 최근 예멘의 후티 반군 공격으로 수에즈 항로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해적이나 테러 위험이 적은 북극항로는 안전한 대체 항로로서 그 전략적 가치가 더욱 부각되고 있다.

북극항로는 항로 단축, 연료비 절감, 위험 지역 우회 등 다양한 이점을 제공한다. 러시아와 중국은 이미 이 항로를 선점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러시아는 북극해 연안 항로 개발을 서두르고 중국은 이를 ‘빙상 실크로드’라고 부르며 유럽 진출의 새로운 통로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도 북극항로의 핵심 수혜국으로 손꼽힌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은 북극항로가 본격화하면 국내 경제성장률이 1%p 이상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조선·해운·물류·에너지 산업 전반에 걸쳐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특히 부산항은 북극항로 시대의 핵심 허브로 도약할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그간 북극은 오랫동안 얼음으로 덮여 있어 인간의 접근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줄어들면서 선박이 지나갈 수 있는 뱃길이 생겨났다. 기후변화가 가속화할수록 더 많은 얼음이 녹고 이 항로의 활용도는 더 증가할 것이다. 북극항로는 단지 빠른 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수에즈 운하가 ‘인간의 의지’로 만든 길이라면 북극항로는 ‘지구의 희생’을 대가로 열린 길이기 때문이다. 북극항로는 인류에게 분명 선물이지만 마냥 반가워할 수는 없다.

북극항로가 열렸다는 사실은 지구온난화로 북극의 얼음이 사라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인류가 불러온 환경 위기가 역설적으로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열어준 셈이다. 누군가는 이를 ‘경제의 기회’로 보지만 지구 입장에서 보면 ‘경고의 신호’일 수도 있다. 북극 얼음이 녹는 속도가 빨라져 항로 이용 기간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은 역설적으로 전 지구적 재앙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지금 북극에 열리는 길은 단순한 바닷길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가 걸린 ‘갈림길’이다. 이 길을 통해 물류를 효율화하면서도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책임 있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고 지름길보다 지속 가능한 길이 더 절실하다. 우리는 북극항로를 이용하며 얻는 단기적 이익에만 눈이 멀어서는 안 된다. 이 길이 열림으로써 확인된 지구 온난화의 실체를 직시해야 한다. 북극항로 시대는 경제적 기회와 함께 기후변화 대응과 해양 안보라는 숙제를 동시에 안기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이 역설적인 항로를 통해 물류비 절감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북극항로가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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